10년째 KTX 안내방송 하지만 한 번도 타보진 않았어요 _ 애니메이션 속 그 목소리 _ 성우 고구인

장진구 기자 / 기사승인 : 2021-06-04 11: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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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성우 고구인은 잘 몰라도 이 목소리를 모를 순 없다. “ 우리 열차는 잠시 후 ○○역에 도착하겠습니다. ○○역에 내리실 손님은 안녕히 가십시오. 고맙습니다. ” 10년째 한결같이 KTX 열차에서 품행 바른 신사 같은 목소리를 들려주지만 여태까지 KTX를 타보지 않았다는 그의 희망은 아이러니컬하게도 괴물이 아닌 사람을 , 그것도 평범한 일상의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이란다. 대체 그에게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일까.






 






간략한 자기소개 부탁드린다 지난 2010년 대원방송 2기 공채로 데뷔해 올해 11년 차를 맞았다. 

성우란 직업을 매우 사랑한다. 프리랜서로 활동하면서 겪는 불안감은 있지만 일감만 많으면 이보다 더 좋은 직업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웃음)



성우라는 직업을 택한 계기가 있나? 개인적인 사정으로 대학수학능력시험에 응시하지 못하면서 운명이 달라진 것 같다. 2001년쯤 수능시험을 준비하면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우연히 스타크래프트 게임을 온라인으로 중계하는 회사에 들어가면서 마이크를 처음 잡았다. 자꾸 하다 보니 말하는 데 재주가 있다고 느껴져 제대 후 본격적으로 성우가 되기 위해 학원을 다녔다. 하지만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4∼5년 정도 여러 시험에 도전했지만 한 번도 1차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다. 그래서 재능이나 자질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간 투자한 시간과 돈이 아까워 포기할 수 없었다. 그러다 대원방송 공채시험을 마지막이라 여기고 마음을 비우고 응시했는데 놀랍게도 4차까지 올라가게 됐다. 그때부터 절박한 심정으로 5차 테스트까지 치러 마침내 합격했다.




대표적인 작품들을 소개해달라 대중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을 꼽자면 KTX 열차 내 안내방송이다. 정식 성우로 데뷔하기 전에 내 목소리를 써줄 곳을 찾아 여기저기 오디션을 보러 다니던 중 어느 녹음실장님으로부터 제의를 받아 시작하게 된 일이었다. 벌써 10년째인데 이렇게 오래하게될 줄은 몰랐다. (웃음) KTX를 탄 후배들이 방송을 듣고 연락해오면 기분이 좋다. 하지만 난 한 번도 KTX를 타보지 않았다. (웃음) 애니메이션 원피스의 프랑키 , 드래곤볼의 미스터 사탄 , 게임 리그오브레전드의 우르곳 , 케인 등의 역할도 맡았다.



자신의 목소리가 어떤 캐릭터를 가장 잘 표현한다고 생각하는가? 강인한 외모를 가졌지만 바보 같은 역할을 주로 연기했다. (웃음) 거칠고 투박한 외모와 달리 여리고 겁이 많은 캐릭터다. 

인간세계에서는 챔피언이지만 허풍이 세고 겁쟁이이며 사이언인에게 얻어맞고 다니는 드래곤볼의 미스터 사탄이 바로 그렇다. 낮고 굵은 목소리의 괴물이나 겉으론 나쁘게 보이지만 위트 있고 착한 캐릭터도 많이 했다. 내 성품과 비슷하게 느껴지는 배역을 맡게 되는 것 같다. 사이코패스나 극악무도한 악역도 해보고 싶지만 아직 기회를 얻지 못했다. 괴물 역할만 맡아서 사람을 연기하면 어색할 정도다. (웃음) 

그래서 주인공이나 조연이 아니어도 좋으니 한 번만이라도 서정적이거나 평범한 이야기를 담은 작품에서 아빠나 회사원 같은 캐릭터를 연기하고 싶다. (웃음)

 

 

 



드래곤볼의 미스터 사탄



원피스의 프랑키





가장 애착이 가는 캐릭터가 있다면? 앞서 언급한 미스터 사탄이다. 전속 성우 시절 담당 PD에게 배역을 맡겨달라고 졸랐던 기억이 있다. 슬램덩크 등 출판만화를 좋아하던 세대로서 어릴 때 탐독했던 드래곤볼의 미스터 사탄이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드래곤볼을 비롯해 원피스 , 페어리 테일 등 10년 가까이 하고 있는 작품들이 모두 소중하다. 정말 운이 좋은 것 같아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성우가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요소를 꼽자면? 예전에는 연기력이나 좋은 목소리가 중요한 요소였다면 지금은 조금 달라졌다고 생각한다. 나이를 불문하고 생각이 젊고 참신 하면서 상상력과 동심이 가득하고 , 기존의 틀에 얽매이지 않는 용기와 창의성이 필요하다고 본다. 특히 연기만 잘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정체성이 뚜렷하고 자신만의 매력을 뽐낼 수 있어야 하며 도전을 즐겨야 기회가 빨리 찾아오는것 같다.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는가? 판관 포청천과 날아라 슈퍼보드의 저팔계를 연기했던 노민 선배의 목소리와 발성을 무척 좋아했다. 그래서 선배가 더빙할 때 밑에 웅크리고 앉아 녹음을 딴 적이 있다. 

영화 마지막 다이하드란 작품에서 브루스 윌리스 역할을 맡은 이정구 선배와 같이 녹음하며 내심 뿌듯했던 기억도 떠오른다. 그러고 보니 선배들과 한자리에서 작업하던 시절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선배들에게 혼나기도 하고 그들의 연기를 직접 보면서 실력이 늘기 마련인데 요즘은 그런 기회가 없어 아쉽다.




고구인에게 성우란? 유명세를 떨치고 싶은 생각이 없다. 그저 성우를 오래하고 싶을 뿐이다. 

예전에는 잘나가는 동기들을 보면 시샘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작품 하나하나가 소중하고 녹음실에서 연기하는 후배들을 보는 것만 봐도 즐겁고 행복하다. 매번 작업을 마치고 녹음실을 나올 때마다 속이 후련한 적이 없다. 항상 부족하다고 느껴지기 때문에 오히려 더욱 매력적인 직업이 아닐까 한다. 만족이란 끝을 알 수 없기 때문일까. 그래서 여전히 작품 앞에서 설렌다.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설레고 싶다.

 

 

 

 

 

 

 

아이러브캐릭터 / 장진구 기자 master@ilovecharac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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