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원금 사라져도 잠잠한 캐릭터 업계

장진구 기자 / 기사승인 : 2026-02-05 08: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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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Report

올해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추진하는 캐릭터 분야 지원사업의 예산이 대폭 삭감돼 그 배경에 시선이 쏠린다. 삭감 폭이 역대급이어서 원성이 자자할 법도 한데 캐릭터 업계는 그저 잠잠하다. 왜 그럴까. 지원금은 예년 수준으로 다시 회복될 수 있을까.

 

 

지원사업 예산 30% 가까이 급감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2026년 캐릭터 분야 지원사업 예산은 지난해 83억 2,300만 원에서 30% 가까이 줄어든 59억 2,700만 원을 편성했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콘텐츠 IP 라이선싱 지원에 32억 6,700만 원, IP 라이선싱 빌드업에 7억 원, 콘텐츠 IP 라이선싱 해외 마켓 참가 지원에 10억 2,400만 원을 배정했다.

 

이 가운데 콘텐츠 IP 라이선싱 지원 부문의 경우 지난해 45억 원에서 32억 원으로 줄었고 지난해 5억 7,000만 원을 배정했던 신규 IP 개발 지원 부문은 아예 폐지했다.

 

캐릭터 분야 지원금이 전년보다 20억 원 이상 대폭 삭감된 건 2020년대 들어 이번이 처음이다. 연도별 예산을 보면 2020년 90억 원에서 2021년 84억 원, 2022년에는 다시 79억 원으로 줄었다. 그러다 2023년 84억 원, 2024년 90억 원으로 4년 만에 90억 원 수준을 회복했지만 지난해 캐릭터 IP 상품 유통 테스트베드 사업 중단과 함께 다시 83억 원으로 감소했다.

 

 

작가·소규모 기업 도전 기회 사라져
지난해 12월 열린 지원사업 설명회에서 이러한 내용을 공개하자 업계는 적잖이 충격받은 모습이다.


가장 뼈아픈 건 신규 캐릭터 IP 기획·개발 사업의 폐지다. 이는 자본력을 갖추지 못한 창작자와 스타트업의 시장 진입을 돕는 유일한 사다리였다.


여기에 캐릭터의 가치를 끌어올리고 수익 모델 다각화를 돕는 콘텐츠 IP 라이선싱 사업 예산도 쪼그라들면서 이제 막 자생력을 갖기 시작한 캐릭터들은 더욱 치열하게 경쟁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리게 됐다. 결국 일정 수준의 인지도와 실적을 갖추지 못하면 선정될 가능성이 낮아질 수밖에 없어 개인 작가나 소규모 기업의 타격은 불가피하다.


업계는 굿즈 판매를 넘어 이종 산업과의 협업으로 파급력이 커가는 캐릭터 시장의 성장세에 찬물을 끼얹는 처사라고 입을 모은다.


지난해 지원사업에 선정된 한 작가는 “신규 IP의 시장 진입을 돕고 육성하려는 정부의 의지가 크게 떨어진 걸로 볼 수밖에 없다”며 “신진 작가나 소규모 스튜디오가 직접 도전해 볼만한 지원사업은 사실상 사라졌다”고 비판했다.

 

업계 관계자는 “새로운 IP가 끊임없이 수혈돼야 산업이 유지되고 시장이 커질 수 있는데 기획 단계의 지원이 사라지면 결국 대형 자본을 가진 소수 기업만 살아남는 양극화가 더 심화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정된 예산, 선택과 집중 따른 불가피한 결정”
콘진원은“이번 예산 조정은 선택과 집중에 따른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항변했다. 예산은 한정돼 있고 중점 추진 사업에 투입 비중을 높이니 부문별·사업별로 지원금 배정에 편차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실제 콘진원이 문화체육관광부에 제출한 업무보고에 따르면 올해 중점 추진 과제는 AI 제작 생태계 구현에 방점이 찍혀 있다. 이에 따라 AI 신기술 개발, AI 활용 지원, AI 특화 창의 인재 양성 지원사업을 새로 추진하고 AI 콘텐츠 제작 지원 대상자도 17곳에서 50곳으로 늘린다.


IP를 활용한 콘텐츠 제작을 확대하고 라이선싱 지원도 강화하는 내용도 있다. 중요한 점은 기존에는 원천 스토리 발굴과 장르별 콘텐츠 제작, 신규 IP 기획·개발 등 우수 IP발굴·제작에 무게를 뒀다면 올해는 연관 산업 IP 활용을 확대하고 수요 맞춤형 해외 진출을 지원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꿨다는 것이다. 더욱이 글로벌 성과 창출을 위해 방송 영상, 게임, 애니메이션, 음악, 웹툰, 패션 등 K-콘텐츠 핵심 산업을 전략적으로 육성한다고 밝혔으나 캐릭터는 그 대상에서 빠졌다.


콘진원 관계자는 “우리도 예산을 늘려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고 싶지만 아무래도 콘텐츠 산업 전반에 나타난 트렌드나 시대를 이끌 화두에 돈이 집중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고 전했다.

 

 

“제대로 항변조차 하지 않는 업계가 자초한 결과”

업계는 지원금 삭감도 문제지만 사전에 현장의 의견을 묻거나 듣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결정한 콘진원의 태도에 격앙돼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예산이 깎인 사실을 지원사업 설명회 현장에 가서야 알았다”며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사태는 콘진원의 일방통행이 문제가 아니라, 무슨 이슈가 발생해도 무대응으로 일관했던 업계가 자초한 결과라는 비판이 내부에서 흘러나온다. 산업 또는 종사자의 권익이 침해받는 상황이 벌어지면 관련 협·단체가 들고 일어나 목소리를 높이기는커녕 이합집산하면서 내 몫 챙기기에만 바쁘다는 것이다.


이런 움직임의 기저에는 개인 작가와 중소 업체가 대부분인 캐릭터 업계를 아우를 만한 제대로 된 구심점이 없다는 문제가 깔려 있다. 영세 사업장이 많고, 각자도생해야 하는 현실에서 이들의 권리 증진에 힘써야 할 협·단체의 활동이나 영향력이 미미해 여론 형성은 둘째치고 정부에 제대로 항변조차 하지 않으니 결국 정책 순위에서도 밀려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런 사태가 벌어져도 누구 하나 나서서 얘기하지 않는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며 “영화나 애니메이션 쪽에서 예산이 깎였다면 진작에 머리띠 두르고 집단 항의에 나섰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이대로 침묵한다면 캐릭터는 더 이상 지원하지 않아도 문제없는 산업이라는 인식만 커질 것”이라고 했다.

 

기관 사정에 밝은 한 전문가는 “전체 예산은 기획재정부가 결정하더라도, 세부 집행 예산은 콘진원이 편성한다”며 “어느 분야건 지원금을 줄이면 불만이 터져 나올 게 뻔한데 그중에서 가장 반발이 적을 것 같은 분야를 골라 삭감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원사업 설명회를 여는 건 최종 확정한 내용을 공개한다는 의미보다 반응이 어떤지 알아보려는 목적이 크다”며 “지금이라도 업계가 강력히 요구하면 조정될 여지가 충분히 남아 있다”고 덧붙였다.

 

 

아이러브캐릭터 / 장진구 기자 master@ilovecharac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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