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독립애니메이션이 걸어온 길 _ 최유진이 바라본 독립애니메이션 ❶

아이러브캐릭터 / 기사승인 : 2021-04-29 16:5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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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195-210수정



최유진


·(사)한국독립애니메이션협회


사무국장


·인디애니페스트 영화제 집행위원장


·애니메이션페스티벌 심사위원·자문위원 활동

 

 

 

 

 

코로나19로 많은 사람들이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세계의 풍경을 바꿨다. 사람을 만나는 것도 , 식당에 가는 것도 , 여행을 가는 것도 쉽지 않게 됐다. 이제는 혼자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에도 익숙해져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코로나19 이전의 삶이 그립다. 이렇게 달라진 삶의 모습을 코로나19 이전과 이후로 비교해 보여주는 카툰이나 이미지들은 SNS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그런데이 와중에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는 4컷 만화가 있었다. 바로 코로나19 펜데믹 시대의 특정 예술가들의 삶을 그린 것이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 코로나19 이전과 이후가 달라진 게 없었다. 그들은 늘 집에 박혀 그림만 그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애니메이터들이다.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애니메이션 회사들도 많이 있지만 특히 창작을 하고 있는 독립애니메이션 작가들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책상 앞에서 자신의 작품을 만드는데 여념이 없다. 비단 지금뿐일까. 언제 풍부한 환경 속에서 작업해본 적이 있을까.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묵묵한 인내와 창작의 열정으로 어려운 과정을 견뎌온 사람들이 바로 독립애니메이션 감독들이다. 그리고 그들이 걸어온 길이 바로 독립애니메이션이 걸어온 길이다.


< 와불 > 누워 있던 것이 깨어나다


독립애니메이션의 역사를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 이용배 감독의 와불이다. 이 작품은 여러모로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작품에 나오는 와불은 전남 화순군 운주사에 가면 만날 수 있다. 이곳에는 ‘ 와불이 일어나면 새 시대가 열린다 ’ 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온다. 1980년 5·18 민주화운동, 1987년 6·10 민주항쟁으로 민주화 열망이 높아지고 있었고 학내에서조차 사찰과 감시 , 학생운동 탄압이 공공연히 이뤄지던 시기를 살아온 이가 작품에 담은 새 시대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민중이 힘을 합쳐 와불을 일으키는 이 작품은 창작을 통해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책임을 다하는 것에 대한 메시 지이자 선언이었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민주화의 시대가 열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와불이 가져온 새 시대는 정치 · 사회적 변화뿐이 아니었다. 바로 독립애니메이션 창작자들이 지금까지 어딘가에 숨어있었던 것처럼 여기저기서 모습을 드러내고 자신의 작품을 만들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창작 애니메이터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독립애니메이션의 여명기


1991년 이용배 감독이 만든 와불이란 작품 이후부터 독립 애니메이션 작품들이 제작되고 알려지기 시작한다. 1990년대에는 당시 사회상을 바탕으로 한 명의 예술가가 자신의 목소리를 내려는 작품들이 두드러졌다. 방독면을 쓴 도시인의 모습을 통해 환경문제를 보여준 전승일 감독의 내일인간이 1994년에 제작됐고 , 1995년에는 지하철을 배경 으로 현대 도시의 비정한 모습을 담은 나기용 감독의 Subway가 발표됐다. 같은 해 이성강 감독은 인간의 이기적 생명관에 대한 메시지를 담은 넋을 선보였다. 당시에는 정식으로 애니메이션을 가르치는 기관이 없었다. 그래서 그때 활동했던 감독들은 동료들을 모아 그룹을 만들어 공부하고 함께 제작하며 전시나 상영회를 통해 작품을 소개하기도 했다. 전승일 , 나기용 감독은 1995년에 퓨처아트를 , 이성강 감독은 애니메이션 그룹 달을 결성했다. 특히 서울을 비롯해 지방에서도 독립애니메이션 제작이 시작됐다. 김상화 감독은 1994년 부산 지역 동료들과 함께 디지아트를 창립하고 1996년 역사적 굴곡을 영상화한 꿈꾸는 날을 발표했다. 1996년 사회적 구조의 굴레에 대해 이야기한 작품 욕망을 제작한 손영득 감독은 대구에서 모션 앤 픽처를 만들어 독립애니메이션 창작을 이어나갔다. 1990년대는 군사정권을 막 벗어나면서 민주화가 서서히 진행되고 있었지만 여전히 독재의 그늘이 드려져 있던 시대였다. 또 1997년은 IMF 외환위기에서 보듯 경제적으로도 어려움이 많다. 그럼에도 독립애니메이션 창작의 열정이 타오르는 것은 누구도 멈출 수 없었다.

 

창작은 멈출 수 없다


코로나19 때문에 많이 어렵냐는 질문을 받곤 한다. 그럴 때마다 좋았던 적이 있었냐고 반문해본다. 10년 전쯤 어느 회의 자리에서 만난 애니메이션 업계 관계자들이 위기를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어두운 이야기에 마음도 많이 어두워졌다. 그날 저녁 상영회가 끝나고 독립 애니메이션 감독들을 만났다. 누가 물었다. ‘ 다음 작품은 뭐하실 거예요? ’그러자 ‘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몇 개 있는데 무엇을 할지 고민하고 있어요 ’ 라는 대답에 살짝 멍해졌었던 기억이 난다. 창작이라는 것은 그런게 아닐까. 독립애니메이션은 격동의 시기에 시작됐다. 독립이란 단어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던 시기에는 정부의 지원정책이 없어질 수 있다는 위기감도 있었다. 또한 당연히 독립애니메이션을 만들며 생계를 이어가는 것에 대한 불안과 고민은 늘 존재했다. 지금 역시 애니메이터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19로 경제적 , 심리적으로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다. 그러나 독립애니메이션 감독들은 지금도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 사람들을 만나고 즐겁고 행복한 꿈을 꾸게 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그들의 창작의 샘을 마르게 하는 것은 오직 자신일 뿐 , 어떠한 것도 그들을 멈추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이 독립애니메이션이 걸어온 길이자 , 만들어갈 길이기 때문이다.


 


 


 


 


 


 


 


 



 



출처 : 월간 <아이러브캐릭터> 2021.4월호


출처 : <아이러브캐릭터 편집부> (master@ilovecharac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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