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복궁 매점에서 친구와 함께 거나하게 술을 마시던 때였어. 이상한 눈초리로 우리를 지켜보던 한 녀석이 갑자기 나가라고 명령하는 거야. 시비 끝에 녀석을 쫓아내고선 다시 얘기를 나누는데 갑자기 총을 겨눈 군인이 나타나더니 다짜고짜 우리를 경계초소로 끌고 가더라고. 그때 장교가 심드렁하게 ‘뭐하는 놈들 이냐’ 라고 묻길래 ‘난 소년한국일보의 방첩 만화를 그리고 있고 친구는 육군본부의 전우일보에 만화를 연재하고 있다’ 고 했더니 갑자기 공손한 태도로 돌변해 깍듯이 모시겠다면서 군용 지프에 태워 제자리에 모셔다주는 게 아닌가.” (웃음) 서슬 퍼런 군부독재 시절 삼엄한 현실 속에서도 만화가로서의 자부심을 잃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었던 여영욱 감독. “고단한 노동의 연속이었지만 그만큼 값진 인생이었다” 며 애니메이터로서의 삶을 유쾌하게 돌아본 그를 만났다.

근황을 알려달라
은퇴까지는 아니지만 일선에서 물러났다.(웃음) 사는 곳이 경기도 화성이다. 아무래도 서울과 좀떨어져 있으니 동료들 만나기가 쉽지 않지만 모임이나 협회 행사가 있으면 꼭 참석하고 있다. 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혼자 기획 중인 프로젝트가 있다. 요즘 휴대전화 성능이 좋지 않은가. 쉽게 애니메이션을 찍어서 유튜브로 볼수 있도록 하는 여러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애니메이션을 처음 시작한 계기는?
만화를 먼저 시작했다. 고등학생 시절이었다. 만화책 뒤에 독자만화를 모집하는 코너가 있는데 그걸 보고 엽서에 만화를 그려서 보냈더니 출판사에서 한번 오라고 하더라. 방학 때 와서 일하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그때 제안했던 분이 유세종 선생님 이다. 하지만 학생 신분이어서 곧바로 서울로 올라올 수 없었다. 이후 졸업하고 나서 여기저기 찾아다니다 혼자 작품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당시 첫 작품의 제목이 ‘명동추장’ 이란 아동만화였다. 은유적 표현이었다. 명동은 서울의 상징이었고 추장은 부족들을 이끄는 대표 아닌가. 아이들이 라디오와 무전기 등을 갖고 방송을 하면서 악당을 물리친 다는 권선징악의 내용이었다. 그러나 5.16군사정변이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여서 심의가 매우 까다로웠다.
출판사에서 원고료까지 받았지만 결국 폐기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다시 조금 손본 후 재심의를 거쳐 1965년 마침내 출판에 성공했다. 이후 월간지에 4컷 만화를 기고했는데 반응이 좋아서 여기저기서 연재 요청을 받았고 많은 곳에서 내 만화를 실었다. 이후 1974년부터는 출판만화를 접고 애니메이터로서 40여 년간 활동했다.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다면?
에이콤이란 회사에서 일할 때였는데 당시 맡았던 심슨이란 만화영화가 제일 기억에 남는다. 심슨은 우리나라에서 외국 만화영화 중 가장 오랫동안 방영된 작품이다. 심슨 1화의 샘플을 만들었다. 미국 원청사에서 캐릭터 액션을 주면 그에 맞춰 그림으로 표현해 주는 작업인데 액션그림 3장 정도만 받고 나머지 그림을 모두 만들어야 했던 고단한 작업이었다. 특히 우리가 시도 해보지 않은 액션이 들어가 조금 어려웠던 기억이 난다. 보통 100명 정도가 3개월가량 작업했다. 공정별로 작업이 진행됐는데 액션, 배경, 컬러 모두 수작업으로 했다. 단계별 작업이 끝나는 대로 또 다른 작품에 착수하는 일이 반복돼 상당히 피곤했다. 그래도 일이 많아서 고급 숙련자들은 당시 400∼500만 원의 높은 임금을 받았다. 또 스머프, 코난, 엑스맨, 배트맨 등의 샘플도 제작했다. 당시 모든 효과의 패턴을 만들어냈는데 지금 생각해도 정말 뿌듯하다.

기억에 남는 동료가 있는가?
지금은 작고하셨는데 임정규 감독님이 가장 생각난다. 임 감독과 일을 많이 한 건 아니 었다. 만화에서 애니메이션으로 전환한 지 한참 후에 만난 분이다. 그분의 성품과 작품에 임하는 자세 등에서 배울 점이 아주 많았다. 후배 양성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셨다.
유달리 일찍 가셔서 더욱 아쉽다. 지금도 동료들끼리 모이면 아직도 그분의 얘기를 나눈다.
요즘 애니메이션들을 어떻게 보는가?
예전에는 넓은 곳에 모여서 그리고 칠하고 카메라로 찍어서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모든 작업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웃음) 지금은 모든 작업이 디지털화돼 있고 집합된 장소가 아닌 각자의 공간에서 개별로 작업한다. 그래서 어떤 작업이 어떻게 진행됐는지 단계별로 확인할 수 없지만 작품이 나오면 퀄리티가 아주 높다. 아무래도 수작업보다 높을 수밖에 없는데 내용과 수준은 그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다. 당시에는 액션 스타일을 디즈니 것을 따랐고 내용도 평이했다. 지금은 스피디하지 않은가. 스토리와 액션의 전개가 빠르다.
3D로도 많이 제작하는데 놀라울 따름이다.
후배들을 위한 조언 한 마디는?
예전에는 애니메이터들이 많이 모여서 의논도 하고 기술이나 정보를 공유했는데 지금은 디지털 작업이 일반화되다 보니 각자의 작업 영역에서만 머무르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세대별 수준 차이도 있어 선후배들 간의 접점을 찾기가 쉽지 않은 부분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작품도 작품이지만 서로 관계를 쌓으면서 커뮤니케이션을 원활하게 이루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올해 계획과 포부가 있다면?
그림을 잘 그리든 못 그리든 아무나 보고 따라 하면 애니메이션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유튜브 콘텐츠를 준비 중이다. 휴대전화로 사진을 쉽게 찍지 않나. 이처럼 쉽고 재미있고 별다른 어려움 없이 누구나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즐기도록 하려는 것이다. 또 그저 보여주기 위한 정적인 그림이 아닌 책장을 넘기면 움직이는 그림 형태의 학습용 출판물 콘텐츠도 기획 중이다.
출처 : 월간 <아이러브캐릭터> 2020.5월호
<아이러브캐릭터 편집부> (master@ilovecharac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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