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으로 전하는 밀도 높은 나의 이야기_독립영화관 (26) _ 김혜련 감독

/ 기사승인 : 2020-02-25 10:00:38
  • -
  • +
  • 인쇄
Interview


김혜련 감독의 작품은 먼저 모난 곳 없이 몽글몽글, 손으로 그려낸 따듯한 영상이 눈길을 끈다. 그다음에는 작은 존재들과 작은 감정들을 세심하게 어루만지는 이야기가 영상으로부터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 자신이 살고 있는 곳에 대해 궁금해할 줄 알고, 마음에 감지된 불편함을 제대로 살펴볼 줄 알며, 자기 안에 있는 이야기를 꺼낼 줄 아는 이야기꾼. <포레스트 치과>의 김혜련 감독을 만났다.



자기소개를 부탁드린다

독립 애니메이션 <워크맨>, <포레스트 치과>, <예술공원의 고양이> 등을 만든 김혜련이다.

또 ‘안양산책’ 전시의 영상을 제작하고 창작집단 ‘오픈극장 미밈’ 에서 프로젝트를 선보였다. 이 밖에 상업용 영상과 일러스트도 제작하고 있다.


 

애니메이션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원래는 미디어아트를 전공하고 그림, 일러스트 등 평면 이미지 작업을 주로 했다. 그러다 ‘안양산책’ 이라는 전시를 준비할 때 다량의 이미지를 단시간에 전달해야 할 부분이 있었다. 그래서 처음 으로 이미지를 영상화했다. 그런데 영상을 볼 때 관객들의 집중도가 놀라울 정도로 높아지는 것이었다. 평면 이미지를 감상할 때와는 아주 달랐다. 관객들은 영상을 보기 위해 멈춰 섰고, 새 시작점을 기다렸고, 끝날 때까지 그 앞을 떠나지 않았다. 평면 이미지는 관객들에게 감상의 자유를 주지만 영상은 관객들을 집중하게 만드는구나, 영상이란 참 매력적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지금은 영상 작업을 주로 하고 있다.



첫 독립 애니메이션 <워크맨>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어떤 작품인가?

사실 워크맨의 주인공은 친할아버지다. 어느 날동네 공원에서 홀로 섬처럼 앉아 있는 할아버지를 만난 적이 있었다. 우리는 살가운 사이는 아니었지만 할아버지는참 외로워 보였다. 그래서 잠시 할아버지의 옆에 앉았는데, 그날따라 할아버지는 자신의 젊었을 적 이야기 등 참 많은 것을 이야기하셨다. 할아버지는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역사적 사건을 경험했을 것이고, 맞서기보다 휩쓸릴 수밖에 없는 소시민이었을 것이다. 문득 할아버지와 같은 평범한 개인의 시선으로 역사를 돌아본다면 의미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워크맨은 한 할아버지의 삶과 그가 경험 했던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낸 작품이다.


 

작화의 스트로크가 매우 인상적인 작품이다.

작업 과정은 어땠는가? 첫 애니메이션이다 보니 잘 몰랐다. 그래서 마음껏이랄까, 마구잡이로 그렸고 또 질보다 양으로 승부할 셈으로 엄청나게 그렸던 것 같다. 오일 파스타와 색연필을 주재료로 작업했는데 수작업 느낌이 극대화되도록 하다 보니 스트로크가 강하게 나타나게 됐다. 또 영상 속의 모든 것이 멈춰 있지 않고 꾸물꾸물 움직이게 하고 싶었다. 보통 애니메이션을 만들 때는 배경을 멈춰 있는 그림으로 표현 하는데, 워크맨을 만들 때는 배경도 멈춰두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모두 새로 그렸다.


 

<포레스트 치과>는 치과 치료와 도시 개발이 서로 연결되며 독특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포레스트 치과는 치과 치료를 하러 간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다. 어느 날 치과 치료를 받게 됐는데, 멀쩡해 보이는 이를 갈고 그 위에 인공의 것을 덧씌우기를 권하는 치료의 과정이 조금 폭력적으로 느껴졌다. 그런데 당시는 내가 자라고 지내온 지역에 개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많은 것이 변하던 때였다. 오랫 동안 매일 봐온 풍경이 하루아침에 변하는 것을 보며 풍경과 함께 내 기억까지 사라지는 게 아닐까 하는 두려움을 느꼈다. 내게는 도시가 생겨나는 것과 생니를 갈아내는 것이 아주 비슷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그 뒤로 이 둘의 연결고리를 찾는 작업을 계속하며 포레스트 치과를 만들었다.


 

<예술공원의 고양이>는 이전작들보다 경쾌한 느낌의 작품인데?

예술공원의 고양이는 안양 공공예술 프로젝트 아카이브전에 참여하며 기획한 작품이다. 처음에는 지역 공공 예술 전시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해 아쉬움과 발전 방향 같은 걸 담고 싶었다. 그렇지만 불편한 이야기들을 거창하게 꺼내고 싶지는 않았다. 너무 큰 이야기는 보는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니까 말이다. 대신 작고 말랑말랑한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은 좀 더 편안하게 다가온다. 그래서 친근한 소재를 찾다 보니 우리 삶과 가까우면서도 하찮은 존재라고 할수 있는 길고양이에 눈길이 갔다. 예술공원에 사는 길고양 이에게 슈퍼파워가 생긴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렇게 고민을 말랑말랑하게 풀어나간 이야기다.



작품 모두 스토리텔링이 참신한데 평소에 이야기 구상을 위해 특별히 노력하는 점이 있다면?

특별히 노력한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일상에서 느끼는 감정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제대로 보려고 하는 편이다. 마음 안쪽에서 어떤 불편함 같은 것이 감지될 때, 하지만 어째서 불편한지는 쉽게 알수 없을 때 나는 내가 무엇을 불편하게 느끼는지, 이유는 무엇인지 제대로 들여다보려고 한다. 예를 들어 예전에 할아버지는 일제강점기 당시 경부선 건설 노동자로 일했는데, 덕분에 돈을 벌 수 있었으니 살기는 그때가 더 좋았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그건 친일이 아닌가 하는 불편함을 느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그 시대를 실제로 살아온 할아버지와 그 시대를 교과서로만 배워온 나 사이의 간극에서 기인한 불편함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실제로 시대를 살아온 사람의 눈을 통해 역사를 이야기해봐야겠다고 생각해 기획한 것이 워크맨이었다.


 

<워크맨>과 <예술공원의 고양이> 모두 안양이 배경인데?

나는 안양에서 태어나고 자란 토박이다. 내게 안양은 고향이면서 동시에 떠나고 싶었던 애증의 공간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오랫동안 해외여행을 하고 돌아온 뒤에야 문득 ‘안양에 대해 아는 게 참 없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뒤로 안양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안양산책’전을 기획하고 안양 곳곳을 걸어다니며 3년여 간 조사했다. 그다음에는 인물에 초점을 맞춰 안양의 역사를 집중해서 파고드는 워크맨을 작업했다. 이 밖에도 ‘오픈극장 미밈’이라는 대안영화제를 진행한 적도 있고, 예술공원의 길고양이들에게 밥을 챙겨주면서 예술공원의 고양이까지 작업하게 됐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얼마 전 안양을 떠나 서울로 이사했지만 앞으로도 살아가는 곳에 대한 관심은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국내 독립 애니메이션 업계에 바라는 점이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개인적으로는 독립 애니메이션이 꼭 독립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에만 묶여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모든 영상 작업이 장르를 넘어서고 있지 않은가. 나 역시 전시를 기획할 때가 있고 애니메이션을 상영할 때가 있는데, 각 장르의 장단점이 또렷하다. 애니메이션은 제작에 오랜 기간과 노력이 소요되지만 관객들의 높은 집중도가 무엇보다 매력적이다. 반면에 전시는 관객들에게 감상에 대한 자유를 주며 관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다양한 장치를 하는 것이 재미있다. 이 두 가지가 같은 공간에서 만난 다면? 전시와 애니메이션 모두 그 폭이 매우 넓어질 것이 다. 이미 이렇게 다양하게 활동하는 감독님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앞으로 더 많은 분들이 장르의 한계를 넘어 활동하며 분야를 넓혀나가면 좋겠다.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다

다음 작품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은 아직 없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작품마다 달라지기 때문에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을지도 알 수 없다. 다만 앞으로도 쭉 독립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작업을 할 때마다 매번 부족함을 절실히 느끼곤 한다. 풀리지 않는 지점에 도달하면 ‘창작자들은 모두 자기 이야기를 하는 거야. 나도 내 이야기를 하면 되는 거야’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달랜다. 그러면 욕심을 내려놓고 다시 찬찬히 풀어갈 수 있게 된다. 다음 작품은 더 잘할 거라고 믿으며 앞으로도 계속 독립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다.

 

 

김혜련 감독

·<워크맨> 2015

·<포레스트 치과> 2019

·<예술공원의 고양이> 2019




출처 : 월간 <아이러브캐릭터> 2020.2월호
<아이러브캐릭터 편집부> (master@ilovecharacter.com)


아러캐 사각로고

[저작권자ⓒ 아이러브캐릭터.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뉴스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