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 걸린 날>은 어떻게 탄생했나?
CJ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그림책을 토대로 만든 애니메이션이다. 수백 권의 그림책 중 하나를 골라 만들 수 있었는데 감기 걸린 날이란 책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엄마가 준 오리털 점퍼에 비죽 나온 깃털을 본 아이는 그날 밤 털이 없어 추운 오리들에게 옷 속 깃털을 하나씩 꺼내 심어주고 신나게 놀다가 갑자기 재채기가 나오는 바람에 잠에서 깬다.
엄마는 이불을 잘 덮지 않아서 그랬다고 생각하지만 아이는 깃털을 모두 오리에게 돌려줬기 때문이란 걸 안다. 아이들의 상상력을 잘 담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애니메이션을 하게 된 계기는?
어릴 때부터 지브리 스튜디오의 작품을 좋아했다. 표현의 경계가 없는 게 무척 마음에 들었다. 인간의 무한한 상상력을 탐구하는 고차원적인 장르란 점이 매력적이었다. 종합 예술에 가장 가까운 장르가 바로 애니메이션이라고 생각한다. 도전적인 장르이기에 그만큼 어렵다.
국내외에서 주목받은 <스탑>을 소개해달라
서스펜스 장르의 작품이다. 멈추고 싶은 순간이란 주제를 담았다. 치매를 앓는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을 향하던 중 역주행하던 트럭과 충돌한 직후 시간이 멈춘다. 어머니의 장난에 짜증이 가득했던 아들은 차에서 내려 선택의 기로에서고 아련한 옛 추억을 떠올린다. 시간은 흐르고 다친 어머니를 구출하는 게 쉽지 않은 긴장된 상황이 극을 이끌어 간다. 이 작품으로 2008년 제61회 칸 국제영화제 학생 경쟁 부문인 시네퐁다시옹 부문에서 3등 상, 제11회 TBS 디지콘6 어워즈에서 2등 상인 아웃스탠딩 퍼포먼스 어워드를 받았다. 대사보다 이미지와 연출만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려고 했다. 어머니에 대한 사랑은 만국 공통의 정서인 만큼 외국인들에게도 의도가 잘 전해진 것 같아 뿌듯했다.
<로망은 없다>는 자신의 경험에서 착안한 작품인가?
한국영화아카데미 장편 과정에 다닐 때 3명이 공동 연출한 작품으로 시나리오는 홍은지 감독이 맡았고 난 연출에 집중했다. 티격태격하는 부모를 보며 아이들은 엄마와 아빠가 어떻게 결혼했는지 궁금해하고 부모는 그제야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별 볼일 없고 시시하지만 평범한 가족의 탄생을 알린 그들의 사랑 이야기가 따스한 추억을 선사한다. 당시 홍 감독이 부모님의 연애담을 듣고 실제 있었던 사건을 기반으로 픽션을 가미해 이야기를 구성했다. 이상적인 로맨스보다 우리의 현실을 보여주고자 했다. 현실을 애써 포장하기 않고 있는 그대로 다뤘기에 공감을 얻은 듯하다.
<두 신사>란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건?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이미지의 배반(“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적힌 그림)을 앞에 두고 두 신사가 논쟁을 시작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서로 자신의 교양을 뽐내며 언쟁을 벌이던 이들은 갑자기 하늘로 떠오르지만 오로지 자신이 옳다는 걸 증명하려고 애쓴다. 당시에는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에 심취해 있을 정도로 사회 풍자적인 블랙코미디에 관심이 많았다. 자존심과 허세로 뒤덮인 쓸모없는 논쟁을 보여주면서 겉치레와 허영에 집착하다 우스꽝스러운 상황에 처하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꼬집었다.
작품에 담는 자신만의 세계관이 있나?
딱히 그렇진 않다. 작품을 만들 때마다 새로운 고민이 생긴다. 다만 기존의 성공했던 방식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작품마다 느낌은 전체적으로 비슷하지만 자세히 보면 장르나 스토리텔링 방식을 바꿔보려고 노력했다. 애니메이션이란 장르의 강점을 살려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다루는 작품을 꾸준히 만들어보려고 한다.
준비 중인 프로젝트가 있나?
지난해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애니메이션 부트캠프에서 우수상을 받은 잼잼스를 TV 시리즈로 만들 계획이다. 아이들에게 소리에 대한 감수성과 상상력을 일깨우는 영·유아 타깃의 음악 애니메이션이다. 도깨비가 등장하는 극장판 애니메이션 기획도 마쳤다. 지난해 선보인 단편 애니메이션 마음의 정원을 좀 더 다듬겠다. 제작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고 공개한 작품이어서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영상과 이야기를 더 짜임새 있게 만든 뒤 이를 그림책으로 출간할 예정이다.
스탑
감기 걸린 날
로망은 없다
두 신사
아이러브캐릭터 / 장진구 기자 master@ilovecharacter.com
[저작권자ⓒ 아이러브캐릭터.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