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속의 한국 애니메이션: 근현대사-42 _ 이남국 교수의 애니메이션 아카이브 53

장진구 기자 / 기사승인 : 2022-01-24 08: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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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1973년 1월 13일 동아일보는 ‘ 지상천국 , 디즈니랜드 설립 50주년-40달러로 시작 , 영화산업 불황에도 건재 , 새로운 것보다 옛것 창조 , 장편만화 로빈 훗 제작 ’ 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 현재 디즈니는 작고하고 없지만 그의 왕국은 캘리포니아 버뱅크 스튜디오에 건재하다. 어린이들에게 ‘ 그들이 마치 작은 어린이이기나 한 것처럼 말로만 설명하려 하지말라. 그들의 상상 속에 파고들어가 그 상상을 이야기하라 ’ 는 디즈니의 원칙이 아직까지도 이곳 디즈니랜드의 지상원칙으로 되어 있다.…(중략)…디즈니랜드 설립 반세기가 되는 금년 73년에 기념으로 내놓는 디즈니 프로덕션의 작품은 장편만화 로빈 훗 ”

우리는 여기서 천재적인 엔터테이너 디즈니의 정신을 되새겨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단지 수익으로만 생각하지 않고 당시 세대와 후대의 사람들에게 꿈과 용기를 주는 데 그의 삶을 바쳐 주력해왔다는 점이다. 이는 우리 애니메이션 엔터테이너들도 되새기고 반드시 주목해야 할 점이다.

 

 

 

1973년 1월 31일 매일경제는 “ 재무부가 만화영화 개발 수출을 세제 면에서 적극 뒷받침하기 위해 소요 원자재에 대한 관세를 면제해주기로 했다. 31일 알려진 바에 의하면 재무부령으로 곧 관세를 면제 조처할 원자재는 만화영화용 특수 지류 등이라고 한다 ” 고 보도했다. 이처럼 관세를 면제한 정책은 애니메이션 보세(하청)에 커다란 도움이 되었으나 , 국내 창작은 여전히 갈 길이 너무 먼 상태였다.

 

 

 

1973년 2월 22일 대한극장과 세기극장에서 프랑스의 만화작가 겸 감독인 장 이마주(Jean Image)의 알라딘의 마술램프(Aladdin and His Magic Lamp-1970.1,28-프랑스 개봉/1975.7.1-미국 개봉)가 개봉했다. 이 작품은 알라딘이 마법 램프로 모든 것을 얻게 되어 행복해진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마술사가 마법 램프를 도둑질하지만 순진한 알라딘이 반지의 힘으로 램프를 되찾는다는 스토리를 담고있다. 1972년 8월 11일에 경향신문이 ‘ 앨러딘의 마법램프 ’ 로 소개한 이 작품은 1973년 7월 20일부터 세기극장에서 재개봉해 1972년 12월 23일에 개봉했던 세기상사 제작의 괴수대전쟁과 동시 상영됐다.
1973년 2월 28일 경향신문은 ‘ 시골 고교 축구부들 ’ 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 우리는 축구왕 새 만화영화. 105회를 끝을 맺는 레슬링 만화영화 타이거 마스크에 이어 그 후속 프로그램으로 28일부터 방영된다. 시골 고등학교 축구부를 모델로 하여 11명의 맹렬 선수들의 연습 과정과 경기의 하이라이트를 집중적으로 다루는 이 영화는 경기 못지않게 피나는 연습 과정 , 부원들의 단결과 협조 정신이 그려진다 ” 고 전했다. 수입원인 일본 동경 테레비 동화/도쿄TV영상)가 1970년에 제작한 ‘ 우리는 축구왕 ’ 의 원제는 ‘ 붉은 피의 일레븐 ’ 이다. 감독은 야마다 켄 , 오카사코 노부히로이며 소년 화보사의 잡지 주간소년 킹 1970년 제2호∼1971년 제21호까지 실린 카지와라 잇기의 만화가 원작이다. 전체 52화인 이 작품은 1973년 2월 28일부터 1974년 3월 6일까지 우리나라 TBC에서 방영됐다. 하나 덧붙이면 , 늦은 감은 있지만 다행히도 제작사가 일본-동경테레비동화라는 출처를 정직하게 밝혀줘 감사할 따름이다.

 

 

 

1973년 3월 15일 매일경제는 ‘만화로 돈 버는 이 , 독 , 불 등에 다량 수출 ’ 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  이탈리아 출판 업계는 작년에 2백 종의 만화를 2억 3천 5백만 부나 발행하여 2천 6백만 달러의 판매고를 올렸다.…(중략)…이탈리아는 프랑스 만화의 70% , 독일은 네덜란드 만화의 20%를 인쇄하고 있다. 만화 중에도 미국의 월트 디즈니의 미키 마우스 격인 토플리노가 가장 인기 있어 어린이뿐 아니라 어른 , 특히 좌익 지식인들이 탐독하고 있다. 신문에 만화가 거의 연재되고 있지 않는 이 나라 사람들은 책을 사듯 수백 부를 사들인다 ” 고 보도했다. 만화가 불량 출판물이란 이유로 불태워지고 있던 한국에서 볼 때 이는 매우 부러운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1973년 5월 1일 경향신문은 ‘ 새싹공해-불량만화 , 장난감-동심 시들게 하는 어른들이 뿌린 혼탁-백지의 마음밭에 먹칠 ’ 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 만화와 장난감은 어린이들의 일생을 좌우하는 정서적 교육자료 , 만화 속 인물이 울면 어린이들은 거침없이 눈물을 흘린다.…(중략)…이 같은 만화 , 장난감도 일단 불량이란 팻말이 붙고 보면 백지 같은 어린이들의 마음밭에 검은 먹칠을 해대는 무서운 해독물이 된다.…(중략)…판잣집 만화가게 안에는 먼지가 푹푹 날리는 다 떨어진 만화책에 시선을 굳힌 어린이들의 초췌한 모습이 있다.…(중략)…혼탁한 환경 못지않게 만화의 내용물이 어린이들의 마음속에 독물을 뿜어대는 것이다 ” 고 전했다. 당시는 만화가게의 열악함이나 만화의 질적인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되던 시대였다.

 

 

1973년 5월 15일 경향신문은 ‘ 어린이 대공원 ’ 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 오랜만에 꿈꾸어오던 어린이 대공원의 문이 열려 어마어마한 인파가 모여들고 , 다음 날은 일요일이라 역시 30만이 넘는 인파가 모여들어 붐비었다고 한다.…(중략)…TV에 어린이 시간에 가끔 나오는 디즈니랜드를 아이들은 꿈의 나라 , 신비의 나라 , 만화의 나라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어린이의 꿈을 그릴 수 있는 곳이 있었으면 하던 것이 마침내 어린이 대공원으로 실현되었으며 , 어린이들은 디즈니랜드를 가자고 하여 나선 것이다. 집에 와서 신문을 보니 어마어마한 인파가 들끓는 사진이 실렸고 1백64명의 어린이가 부모를 잃었다고 한다 ” 고 소개했다.
서울시 광진구 능동에 소재한 이곳은 1929년 6월부터 일제 시절 경성골프구락부로 사용되다 광복 후 서울컨트리클럽 골프장으로 이용됐다. 그러다 특권층만을 위한 골프장이 국민 정서와 맞지 않는다는 판단하에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시로 서울 어린이대공원이 조성됐다.

 

 

1972년 11월 3일 착공에 들어가 1973년 5월 5일 개장한 서울 어린이대공원(Children’s Grand Park)은 가족 단위 휴식 공간이다. 면적은 약 53만여㎡로 개장 당시 동양 최대 규모를 자랑했다. 이곳은 동물원 , 식물원 , 놀이동산 , 다양한 공연시설과 체험공간이 가득해 가족 모두를 위한 테마공원으로 자리 잡았다.

 

 

 

 

 

아이러브캐릭터 / 장진구 기자 master@ilovecharac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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