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도하지만 허술해 보이는 그녀의 은밀한 매력 _ 애니메이션 그 목소리 _ 성우 이명희

장진구 기자 / 기사승인 : 2022-05-06 11: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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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자신을 MBTI(마이어스-브릭스 성격 유형 지표) 유형으로 본다면 인프제(INFJ)에 속한다고 소개했다. 이런 성향의 사람은 타인에게 잘 공감하고 뛰어난 통찰력을 지닌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중저음의 목소리와 함께 상대를 지그시 바라보는 눈길이 마치 “네가 누군지 샅샅이 살펴보겠어” 라고 말하는 것 같다. 하지만 뭔가 꿰뚫어보는 신통한 능력을 지닌 것 같으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허술해 보이는 이유는 뭘까. 가방의 지퍼가 열린지도 모른채 도도한 걸음으로 거리를 누비는 차도녀 같은 은밀한 매력의 성우 이명희를 만났다.


간략한 소개를 부탁드린다 2008년 대원방송 공채 1기로 데뷔했다. 올해 성우생활 14년차인데 요즘 들어 내 자신을 무지갯빛 같은 성우라고 표현한다. 다양한 색깔을 보여주고 싶다는 의미다. 더 많은 도전으로 연기의 폭을 넓혀가고자 한다.

성우란 직업을 택한 계기가 있었나? 초등학생 시절 교회에서 연극을 했는데 어떤 분이 “목소리가 좋네. 기차 화통을 삶아 먹은 것 같아” 라고 말해준 적이 있었다. 낯선 사람으로부터 칭찬을 받은 건 이때가 처음인 것 같다. 칭찬을 받으니 연극이 더욱 신나고 재미있어졌다. 그래서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보고 싶었다. 이후 연극을 전공하고 대학로에서 공연을 이어가던 어느 날 ‘내가 좋아하는 연기를 오래 할 수 있는 방법이 뭘까’ 란 생각이 문득 들었다. 영화도 찍어보고 뮤지컬 무대에도 서봤지만 연기자로서의 생명력을 오래도록 이어가기란 쉽지 않아 보였다. 그때 성우이던 한 선배가 자신이 하는 일을 얘기해주면서 성우가 돼볼 것을 권유했다. 내 위시리스트에서 성우는 맨 마지막에 적혀 있었지만 연기를 오래할 수 있다는 매력에 끌려 시험에 응시했고 도전한 지 1년 반 만에 합격했다.


대표작을 소개해달라 많은 작품이 있지만 대원방송 전속 성우 시절 맡았던 이누야샤 완결편이 기억에 남는다. 카라라는 캐릭터였는데 감정이입이 상당했는지 그때의 대사와 감동이 여전히 생생하게 남아 있다. 또한 시크하고 인정이라곤 찾아 볼 수 없는 프라이드란 캐릭터를 연기했던 강철의 연금술사란 애니메이션은 세계관이 뚜렷할뿐더러 사람과 세상을 다른 관점으로 보게 된 계기를 만들어준 작품이다. 대중에게 많은 사랑을 받은 캐릭터라면 게임 리그오브레전드의 룰루다. 5∼6년 전에 맡은 캐릭터인데 지금도 어디 가면 룰루 목소리를 내달라는 팬들의 요구가 있어 내 분신처럼 느껴진다.
최근에는 반짝반짝 캐치! 티니핑의 다해핑, 갓오브하이스쿨의 새턴, 빠샤메카드의 초코 등의 역할을 소화했다.

자신의 목소리가 어떤 캐릭터를 가장 잘 표현한다고 생각하나? 내가 가장 편하게 낼 수 있는 목소리가 가장 잘하는 캐릭터라고 할 수 있겠다. 중저음의 부드러우면서도 섹시한 목소리를 지닌 캐릭터가 연기하기 편하다. 하지만 4차원 성격의 캐릭터도 연기하는 맛이 있다. 앞서 말한 리그오브레전드의 룰루처럼 독특한 캐릭터를 연기할 때는 톤과 텐션이 올라가 밝은 기운이 전해져서인지 듣는 사람도 무척 좋아하더라. 넷플릭스에서 방영한 추억의 마니라는 작품에서는 소극적이면서도 다정한 금발의 여자아이 마니를 맡기도 했다. 매우 여리고 순수한 감성의 소녀였는데 허스키한 목소리가 섞여 나올까 봐 몇 시간 동안 말도 하지 않고 배역에 몰입했던 기억이 난다.

가장 애착이 가는 캐릭터는? 못말리는 3공주에 나오는 둘째딸 스우란 캐릭터다. 전속 시절 연기했던 캐릭터인데 시크하고 무심하지만 속정은 깊은 츤데레 매력을 지닌 소녀였다. 4차원의 성격이지만 대사나 행동이 굉장히 재미있어서 보고만 있어도 그저 사랑스러웠다.

성우가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요소는? 애니메이션, 광고, 내레이션, 게임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드는 성우일수록 누군가 원하는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돕는 도화지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성우는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목소리를 연기해야 한다. 때문에 그들의 요구에 완벽히 부응하는 연기는 물론이거니와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섬세한 표현력도 갖춰야 한다. 스스로도 마치 어떤 색이 다른 색으로 변해가는 농도의 단계를 보여주는 그러데이션처럼 미세한 차이를 드러낼 수 있는 연기를 할 수 있는 성우가 되고자 나름 노력하고 있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궁금하다 에피소드라기보다 연기 할 때 가장 짜릿한 순간을 말하자면, 상대배우와 연기를 주고받고 스태프진과 함께 하나의 작품을 향한 마음과 에너지가 하나로 모여 일이 잘 풀려갈 때다. 이럴 때 큰 희열을 느끼곤 한다. 어느 오디오 드라마를 녹음할 당시 마이크 앞에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토해내고 감동적인 연기로 이어져 하나같이 몰입해 있는 광경을 보고 정말 짜릿한 감정을 느꼈다. 녹음을 마치고 부스를 나갔을 때 PD님이 엄지를 올려주면 ‘그래, 이 맛에 연기하는 거지’ 란 생각에 다음 작품을 갈망하는 것 같다.

이명희에게 성우란? 성우가 된 것이 살면서 가장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위시리스트의 항목을 하나씩 지워가며 ‘이 길로 갈까, 저 길로 갈까’ 고민하던 스물다섯 살 때 어느 교수님께서 “하고 싶은 것보다 잘할 수 있는 것을 먼저 하다 보면 자연스레 하고 싶은 것을 하게 된다” 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연기가 무엇인지 고심한 끝에 결론 내린 게 바로 성우였다. 이 길을 선택하길 참 잘했다. 지금도 후회가 없다. 오래도록 연기할 수 있어 더 만족스럽다.




아이러브캐릭터 / 장진구 기자 master@ilovecharac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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