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략하게 본인 소개를 부탁드린다 애니메이션 분야에서 일한 지 25년째다. 원래 경영학을 전공했는데 한겨레문화센터가 운영하던 35mm 애니메이션 필름반 강의를 듣고나서 애니메이션의 길로 들어섰다. 당시 대학 졸업반이었는데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 취직했다고 하니 교수님이 많이 혼냈다. 그러니까 더 하고 싶더라.(웃음) 이후 2D, 3D애니메이션 제작사를 거쳐 2016년 초이락컨텐츠팩토리에서 공룡메카드, 요괴메카드 시리즈, 2020년 모꼬지에 합류해 고고다이노, 상상꾸러기 꾸다 제작에 참여했다.
준비 중인 신작이 있나? 지난해 초 기획해 9월께 트레일러 영상을 완성한 배틀탑(가제)이란 팽이배틀 장르의 작품이다. 청룡, 백호, 봉황, 현무 등 동서남북을 지키는 수호신 사신수에 들어가고 싶은 해치의 꿈과 노력, 요괴들과 인간의 공존, 그리고 요괴를 이용해 세계를 정복하려는 거대한 악의 무리와의 대결을 보여주려고 한다. 영상에는 요괴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는 만큼 어두운 밤을 강조한 아트워크를 적용했다. 사실 애니메이션에서 도심의 야경을 매혹적으로 표현한 영상이 드물다. 그래서 조명의 화려함과 두려우면서도 설레는 감정을 표현해 밤이 주는 마력을 보여주고 싶었다. 시즌제로 만들고 있는 고고다이노는 해를 거듭할수록 이야기가 점차 익숙해지기에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대중이 원하는 흥미 요소나 캐릭터들을 넣으려고 고민하는데 쉽지 않다.(웃음) 상상꾸러기 꾸다는 시즌3 제작을 진행하고 있다. 처음 기획한 방향을 흔들지 않으면서 공감 포인트를 찾고 극적 재미를 만들어 내려 힘쓰고 있다.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동력은 무엇인가? 어릴 적 만화책을 좋아했는데 일본 애니메이션 마니아였던 친구를 통해 애니메이션에 빠져들었다. 대학생이 되고나서 더 깊게 들여다보니 작품의 철학이나 애니메이션이 주는 독특한 감성이 새롭게 다가왔다. 상상으로만 존재하는 걸 눈으로 볼 수 있게 표현하는 최적의 장르가 바로 애니메이션이다. 감독이 표현하고 싶은 모든 것을 조종해 만들어낼 수 있다. 가령 주인공이 손으로 머리를 쓸어넘길 때 손가락의 모양이나 속도, 움직임을 배우에게 요구하는 게 아니라 감독이 생각하는 걸 직접 정확하게 구현할 수 있다는 게 애니메이션의 매력이다. 애니메이션을 여전히 사랑하는 이유는 결과물을 봤을 때 같은 상황, 같은 연기라 할지라도 실사 영상과 다른 큰 감동을 받기 때문이다. 작품을 할 때마다 매번 힘들지만 결과를 보면 그간의 피로가 한꺼번에 씻기는 듯하다.
요즘 애니메이션업계를 바라보는 생각이 궁금하다 사람들이 많이 떠나고 있다. 처우가 나쁘고 비전이 없다고 생각하니 어쩔 수 없다. 그들의 선택을 존중한다. 이 분야가 굉장히 매력적인 곳이었으면 좋겠다. 애니메이션은 앞으로 꾸준히 만들어질 것이고 전망도 밝다고 본다. 상품 판매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 여전히 많지만 애니메이션이 지닌 본질적 의미와 이야기가 시장에서 인정받는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한다. 이를 위해선 브랜드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감독, 성우, 엔지니어, 아티스트, 제작사 등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모든 주체가 대중적으로 높은 인지도를 가졌으면 좋겠다. 또 라바처럼 대중이 선호하는 코드와 감독만의 독특한 색깔이 결합한 작품이 많이 나왔으면 한다. 작품성을 인정받고 상업적인 성공도 거두는 사례가 나온다면 후배들의 일하는 환경이나 여건이 한층 좋아지지 않을까.
앞으로 해보고 싶은 작품이 있다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작품을 좋아한다. 그의 세계관, 사람을 향한 시선, 그림, 움직임, 스토리 등 모든 게 좋았다. 나 역시 뭔가 생각하게 하고 감동과 재미를 줄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 엄마 찾아 삼만리처럼 슬프지만 공감과 감동, 희망의 감정을 전하는 작품을 선호하는 것 같다. 음악, 이야기, 그림 등 애니메이션을 구성하는 요소들과 감독, 성우, 아티스트 등 제작진 하나하나가 얘깃거리를 만들고 화제가 돼 사람들이 애니메이션에서 다양한 재미를 느끼게 하고 싶다.
아이러브캐릭터 / 장진구 기자 master@ilovecharacter.com
[저작권자ⓒ 아이러브캐릭터.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