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이 건네는 오늘의 요리 _ 최유진의 애니잡수다 9

장진구 기자 / 기사승인 : 2021-12-28 08: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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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얼마 전 어느 영화제 개막식에서 한 영화를 봤다. 오후 7시에 시작한 개막식이어서 저녁식사를 미처 하지 못했다. 그래서 끝까지 앉아서 개막작을 볼 것인지 조금 고민했다.
그러나 스트로베리 멘션이라는 다소 궁금한 제목과 소개 영상에서 보여준 선명하고 강렬한 색 , 애니메이션 기법을 활용한 다양한 실험적인 접근에 끌려 결국 배고픔을 참고 영화를 보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영화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후회가 밀려왔다. 보는 내내 ‘ 맛있는 음식이 나오는 영화는 개막작으로 선정하지 말아야 한다 ’ 고 수없이 되뇌었다. 영화에서는 먹음직스러운 치킨이 쏟아져 나왔고 입안에서는 군침이 마구돌았다. 부리나케 숙소로 돌아가 ‘ 흡입 ’ 할 음식은 무조건 치킨이었음은 말해 무엇하리.

하루의 고단함을 풀어주는 요리
따뜻한 음식으로 하루의 고단함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가 있다. 시간에 쫓기며 수업을 듣고 ,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끊임없이 울리는 알람과 편의점에서 겪은 불편한 일들 , 내 안을 가득 채우는 불안을 하나하나 재료 삼아 요리를 한다. 휴대전화 알람을 칼로 잘라내고 , 나를 괴롭히던 이들을 칼로 자르고 계란으로 탁 터뜨려버리는 순간이 시원하다. 서지형 감독의 계란 카레라이스는 나의 고단함을 이렇게 날려버린다.
이혜리 감독의 나를 위한 요리도 이와 비슷하지만 조금 다르다. 학생이자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주인공은 자신의 고단함과 불안을 씻기 위해 요리를 한다.

계란 카레라이스가 불안을 재료로 요리했다면 나를 위한 요리는 무엇보다 좋은 재료와 정성을 담아 자신을 위해 요리한다. 맛깔스러운 재료의 이미지와 훈훈한 연기가 마치 내 눈앞에 요리가 준비돼가고 있는 느낌을 준다. 생생한 소리가 더해진 두 작품 속 요리는 그렇게 하루의 고단함을 풀어준다.

 

그리움이 더해진 요리
어릴 적 할머니 , 할아버지와 같이 살았다. 요리 솜씨가 좋은 할머니 덕에 매끼 식사는 대부분 진수성찬이었다. 국이나 찌개 , 생선이나 고기 요리가 늘 상에 올랐다. 그때 할머니가 해주시던 탕수어는 지금도 생각난다. 다시 먹어볼 날이 올까.
그런 할머니에게 음식을 배운 어머니의 솜씨는 내 생일 음식이 돼버린 구절판에서 빛난다. 어느 비싼 한정식 집에 가도 어머니의 구절판을 능가하는 요리를 먹어보지 못했다.
팔불출 같지만 온전히 날 위해 만들어주신 정성 가득한 요리이니 당연히 맛있을 수밖에 없다.
김준아 감독이 만든 할머니의 케이크가 그렇다. 건망증이 심한 할머니는 손녀의 생일을 위해 생크림 딸기 케이크를 사러 간다. 버스를 기다리던 할머니는 그만 케이크를 정류장에 놓고 돌아와버린다. 실망하고 누워 있는 손녀를 위해 할머니는 자신만의 특별한 케이크를 준비한다. 그 케이크는 우리가 아는 케이크와 전혀 다르지만 , 손녀에게는 다른 어떤 케이크보다 특별하다. 이제 손녀가 기다리는 건 생크림 케이크가 아니라 할머니의 케이크다.

 

마음이 전해지는 음식들
회사에서 커피 심부름은 언제나 이다의 몫이다. 동료들은 이다를 조롱하고 멸시한다. 그녀는 강인한 여성 캐릭터를 떠올려 그들에게 복수하는 통쾌한 상상을 하지만 그저 상상일 뿐이다. 현실은 그들을 위해 커피를 타고 있다. 그녀의 소심한 복수는 커피에 가래 한 덩이를 넣어보는 것이지만 , 행동으로 쉽게 옮겨지지 않는다.
그러나 커피에 들어간 것은 설탕과 프림뿐이 아니었다. 초라한 자신의 모습에 상처받고 흘리는 눈물 한 방울이 떨어진다. 그리고 그 커피를 마신 상사에게서도 눈물이 흐른다.
서동해 감독의 설탕 둘 , 프림 하나 , 가래 한 덩이는 커피에 떨어진 눈물 한 방울을 통해 그녀의 마음을 사람들에게 강하게 전하는 작품이다. 이다의 감정을 따라 흐르는 음악도 분위기를 한결 더한다. 공감과 위로를 전하는 또 다른 방법이 있다.
공지영 작가의 원작으로 한지원 감독이 제작한 딸에게 주는 레시피를 보면 알 수 있다. 현실에서 겪은 아픔은 다양한 레시피 속에서 요리된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 자신에게 위안을 준 음식이 딸에게도 위로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 각각의 레시피에 담겨 있다.
따뜻한 색감과 친근한 엄마의 목소리(실제 한 감독의 어머니가 내레이션에 참여했다고 한다) 덕분에 작품이 주는 위안은 배가된다. 이 모두가 언어가 아닌 음식으로 마음이 전해지기 때문이다.

 

먹으면 안 되는 음식도 있다
그러나 때로는 먹으면 안 되는 음식들도 있다. 안시애니메이션영화제 WTF 프로그램에서 선보인 달콤한 가족에서는 , 어느 날 집주인이 흘린 과자를 먹고 환각에 빠진 난쟁이들이 나온다. 사랑스러운 가족 , 귀여운 과자 , 어딘가 멍청해 보이는 느낌의 난쟁이들을 보면서 그저 귀여운 애니메이션을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달콤한 과자의 환각이 가져오는 유혹에 빠진 난쟁이들이 간 집 안에서 펼쳐지는 광경은 공포 그 자체다. 서새롬 감독의 육식콩나물은 어떤가.
그저 가늘고 비실거렸던 콩나물이 육식이었다니! 물론 육식콩나물보다 더 무서운 건 그 광경을 보면서 좋아하고 흥분하는 관객들이다. 별다른 고조가 없는 내레이션 , 그에 대비되는 관객들의 모습에 소름이 돋는다.


함께해서 더 즐거운 요리
음식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에너지를 제공하는 것 이상으로 굉장한 힘을 갖고 있다. 음식을 통해 위로를 얻기도 하고 따뜻함을 느끼기도 하고 누군가의 마음을 이어받기도 한다. 그 안에는 내가 있기도 하고 가족이 있기도 하고 사회가 있기도 하다. 오늘 먹은 밥이 더 맛있게 느껴졌다면 그건 분명 누군가와 함께하고 있거나 그 안에 누군가의 마음이 녹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도 즐거운 저녁시간이 되길 바란다.

 

 

 

 

아이러브캐릭터 / 장진구 기자 master@ilovecharac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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