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르몽페랑 단편 필름마켓을 다녀와서 _ 최유진의 애니잡수다 12

최유진 사무국장 / 기사승인 : 2022-03-28 08: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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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우리나라의 설 연휴 기간 동안 프랑스에서 열린 클레르몽페랑 단편 필름마켓에 다녀왔다.
지난 2020년 코로나19 창궐로 해외 입출국이 어려워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간 해외 출장이 클레르몽페랑이었던 것을 돌이켜보면 2년 만의 첫 해외 출장지로 가장 잘 어울리는 곳이기도 했다.
그러나 프랑스의 코로나19 감염 상황이 날로 악화돼 하루에 50만 명이 넘는 확진자가 나오던 때라 비행기를 탈 때 두려움이 엄습했다. 인천공항에서 짐을 부치는 순간 ‘ 잘못된 결정을 내리지 않았나 ’ 하고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됐지만 다행히 , 그리고 운 좋게도 무사히 출장을 마치고 귀국했다.

미슐랭의 도시 클레르몽페랑에서 탄생한 영화제
클레르몽페랑은 프랑스 중부 퓌드돔이라는 휴화산 옆에 자리 잡은 소도시다. 고스트버스터즈에 나오는 몬스터가 연상되는 캐릭터의 주인공 미쉐린 타이어 제조 회사인 미슐랭 본사가 바로 여기에 있다. 어쩌면 미슐랭 가이드가 더 친숙한 사람들도 있겠다.
아무튼 이 도시에서 세계 최초이자 지금은 3대 단편영화제 중 하나로 꼽히는 클레르몽페랑 단편영화제가 시작됐다.
재미있는 사실은 1979년 이 영화제를 만든 주체가 바로 클레르몽페랑 대학교의 영화과 학생들이라는 것이다.
처음 영화제를 만든 학생들은 영화제와 함께 나이를 먹었고 몇 년 전부터 차례로 은퇴하면서 다음 세대에게 자리를 넘겼다. 그래도 매년 영화제에 가면 그들을 만날 수 있으니 영화제에 대한 그들의 애정은 결코 식지 않았으리라.

유일한 단편 필름마켓
클레르몽페랑 단편영화제는 영화 상영만 하지 않는다. 영화제 기간 동안 단편필름을 거래하는 마켓이 함께 열린다.
다양한 필름 마켓이 있지만 단편을 위한 마켓은 이곳이 유일하다.
단편 마켓이어서인지 다른 마켓보다 따뜻하고 친근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각 나라의 작품들을 홍보하고 세일즈하기 위한 국가별 부스들이 주를 이루는데 간혹 영화제나 제작 스튜디오의 부스들도 눈에 띈다.
우리나라도 영화진흥위원회가 공동 부스를 만들어 참여했지만 올해는 코로나19 탓에 한국독립애니메이션협회의 배급사 씨앗과 인디스토리 2곳이 공동으로 부스를 운영했다.
코로나19 여파로 참석을 취소한 부스들도 있었고 담당자가 확진 판정을 받아 빈 부스도 더러 있었다. 그래서 여느해보다 한산한 모습이었지만 참가자가 줄어든 만큼 방문한 사람에게는 이목이 집중되는 느낌이었다. 사실 가장 먼 곳에서 마켓에 참가한 , 유일한 비유럽 국가였으니 더 그랬으리라.
오랜만에 얼굴을 보는 각 부스 담당자들은 서로의 생존을 확인하며 코로나19로 어려워진 각국의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어떤 이는 영화관이 코로나19 감염으로부터 가장 안전한 곳인데도 각종 규제로 인해 제대로 운영되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다.

 

마켓을 찾는 사람들: 단편 필름의 바이어, 유럽 영화제들 그리고…
마켓 부스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다양하다. 클레르몽페랑 필름마켓에서 가장 주목받는 바이어는 프랑스 TV 바이어인 아르떼 프랑스와 카날 플러스다. 가장 비싼 값에 필름을 사가기 때문이다.
또한 최근에는 유럽 국가 작품의 비중이 점점 높아지는 가운데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채널의 바이어들은 물론 VOD 서비스 플랫폼들이 주요 바이어로 참석해 부스를 찾았고 각 회사의 계약 조건을 수록한 자료는 바이어에게 매우 유용했다.
바이어들 외에도 프랑스와 유럽에서 열리는 각종 영화제의 프로그래머나 관계자들도 이곳을 찾는다. 자신의 영화제를 홍보하고 영화제에서 상영할 작품을 찾기 위해서다.
단편 작품들이 모이는 가장 전통적인 플랫폼이기에 다른 영화제의 성격이나 조건을 잘 들어보고 그에 맞는 작품을 추천하는 일도 클레르몽페랑 필름마켓의 주요 임무다. 그들을 만나면 전쟁 , 사랑 , 무용 , 첫 영화 등 다양한 테마의 영화제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밖에 부스를 찾는 이들이 있다면 바로 학생들과 제작자다. 학생들은 마켓이 어떤 곳인지 , 어떤 일을 하는지 부스를 찾아다니며 인터뷰하고 제작자들은 자신이 기획하고 있는 작품을 함께 만들 제작사를 찾는다.


마켓에서 만난 애니메이션 관계자
필자는 씨앗에서 배급하는 작품을 홍보하고 세일즈하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 영화제도 함께 진행하고 있어 마켓에서 애니메이션 관계자들을 만나는 것은 특히 반가운 일이다.
이번 마켓 부스 중 가장 활기찼던 부스 중 하나가 애니메이션 네트워크의 부스였다. 자그레브 애니메이션영화제(크로아티아) , 애니필름(체코) , 페스트안차(슬로바키아) , 애니메스트(루마니아) , 아니마테카(슬로베니아) 등 동유럽에서 열리는 다섯 개의 영화제가 모여 하나의 공동부스를 만든 것이다.

모인 지 2년째라는 이 네트워크는 공동 지원을 받아 공동의 사업을 만들어가고 있는데 , 묘한 눈치 싸움이나 경쟁을 넘어 사이좋게 모여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애니메이션 배급사이자 제작사로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프랑스의 MIYU는 영화제 기간 배급 감독과 관계자들이 함께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또 오스카 레이스 홍보 마케팅을 전문으로 하는 애니메이션 쇼케이스 대표도 만났다. 한국 특별전으로 방문했던 네덜란드의 카붐 애니메이션 영화제 디렉터가 네덜란드 부스를 지키고 있었고 프랑스 스튜디오 폴리마쥬의 감독이나 인디애니페스트를 찾았던 감독과도 조우할 수 있었다. 큰 기대가 없었기에 뜻하지 않은 만남이 더욱 반가웠다.
단편영화제가 갖는 따뜻함 , 친근함 외에도 클레르몽페랑 단편영화제의 매력은 더 많다. 영화 상영 1시간 전부터 메인 상영관 건물인 라 메종 드 라 컬처(la maison de la culture)의 로비를 가득 메우는 사람들과 영화가 끝날 때마다 터지는 박수소리가 특히 그렇다.
길에서는 사람을 만나기 힘든 이 도시에서 영화관을 가득 메운 사람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어서 코로나19가 사라져 우리가 그리워하는 사람들과 풍경이 계속 이어져나갔으면 좋겠다.

 

 

 

최유진
· (사)한국독립애니메이션협회 사무국장
· 인디애니페스트 영화제 집행위원장
· 애니메이션페스티벌 심사위원·자문위원 활동


 

 

 

 

 

 

아이러브캐릭터 / 최유진 사무국장 master@ilovecharac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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