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하는 평화 - 애니메이션 작가들의 반전운동 _ 최유진의 애니잡수다 13

최유진 사무국장 / 기사승인 : 2022-04-26 08: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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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유행으로 해외 영화제 참석이 어려워지기 직전인 2019년에 자그레브와 안시 애니메이션영화제에서를 만든 우크라이나인 감독 니키타 리스코브를 만났다.
현대 우크라이나 사회를 배경으로 풍자를 담은 이 작품이 많은 나라에서 상영되면서 자연스레 자주 만나 친해진 감독이었다.
그렇게 만난 친구가 살고 있는 나라 우크라이나에서 2월 24일 전쟁이 발발했다. 한국과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거기에도 친구가 살고 있고 사람들이 살고 있다. 코로나19가 끝나면 영화제에서 오랜만에 만나 서로의 안부를 묻고 싶은 마음뿐이었는데 이렇게 전쟁이 다시 사람들을 갈라놓는다고 생각하니 안타까움을 넘어 무엇을 해야 할까란 생각이 들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를 잇는 크록 애니메이션영화제
애니메이션 감독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참가해보고 싶어 하는 특이한 영화제 중 하나가 바로 크록 애니메이션영화제다. 영화제 기간 동안 게스트들은 크루즈를 타고 강을 따라 이동한다. 배가 정박했을 때 도시를 구경하거나 영화를 보는 경우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생활이 배에서 이뤄지니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이들은 친구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영화제의 단골 게스트가 애니메이션 관련 출판물에서나 보던 거장 유리 놀슈테인 감독이고, 게스트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출 수 있다니 더욱 매력적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크루즈가 다니는 강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를 잇는 강이라는 점이다. 매해 출발지를 다르게 해 양국을 오가며 열리는 만큼 이 영화제는 두 나라의 애니메이션 창작자들이 만나고 모이는 행사이기도 했다.
특히 최근 두 나라 사이의 갈등이 깊어지면서 크록 애니메이션영화제는 매번 평화를 이야기하고 나아가 다른 나라에서도 이 문제에 관심을 가져주길 호소해왔다. 그래서일까.
전쟁이 발발한 이후 어느 때보다 애니메이션 작가들의 반전 메시지와 목소리가 두드러진다.

러시아 애니메이션 작가들의 반전 행동
전쟁이 시작된 지 이틀이 지났을까. 지난 2월 26일 애니메이션 웹진 지피프레임에는 전쟁에 반대하는 러시아 애니메이션 아티스트(Russian Animation Artists Against the War)라는 제목의 기사가 올라왔다.
앞서 언급한 러시아의 거장 유리 놀슈테인을 비롯해 이고르 코발료프, 콘스탄틴 브론지트, 사샤 스비르스키와 장편 감독 안드레이 크르자노프스키 등 658명의 러시아 애니메이션 작가들이 전쟁반대 성명에 참여했다. 그리고 러시아 애니메이션 아티스트들은 ‘Animators against war’ 라는 유튜브 채널을 만들어 반전 애니메이션을 올리고 있다.
10초 내외의 짧은 영상으로 전쟁에 반대하는 메시지를 담은 이 애니메이션에는 반전을 외치는 작가들의 목소리와 절실한 의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러시아 경찰이 시위대 수천 명을 체포하는 등 반전 메시지를 검열하고 감시하고 있는 상황임에도 이들은 주저하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힘을 다해 반전 활동을 적극 전개하고 있는 것이다.

전쟁을 반대하는 세계의 애니메이션 작가들
전 세계 애니메이션 작가들의 반전 행동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다. 우선 애니메이션 작가들을 중심으로 후원금이 마련되고 있다. 기부하고 서명을 남긴 사람들 중에는 네덜란드의 거장 폴 드리센이나 호주의 데니스 투피코프, 에스토니아의 올가 파른을 비롯해 스펠라 카데즈 등 유명 작가들도 눈에 띄었다.
우리나라에서도 한국독립애니메이션협회와 인디애니페스트 영화제 집행위원회가 성명서를 발표하고 후원금을 모아 전달하기도 했다. 3일간 진행된 연명 요청에 무려 136명의 감독과 관계자들이 참여했는데 어떤 분은 “많은 분들이 함께할 수 있어 고맙다” 란 말을 남기기도 했다.
성명서 발표나 기부가 아닌 다른 형태의 반전 활동도 전개되고 있다.
폴란드 국경에는 피란길에 오른 수많은 우크라이나 출신 여성과 아이들이 머무르고 있다. 이에 폴란드 영화제 주관사들이 아이들을 위한 애니메이션 상영회를 마련했다고 한다. 어린이를 위한 작품들을 찾아 각국의 감독이나 배급사에 연락하고 상영에 동의한 작품들을 모아 선보였다.
아이들이 어떻게 관람했는지는 모르지만 잠깐이라도 마음의 위안을 얻는 시간이 됐기를 모두가 바랐을 것이다.
이처럼 세계의 수많은 애니메이션 관계자들이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들을 모아 반전이라는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모습을 보면서 놀랍기도 하면서 애니메이션이 지닌 힘을 다시금 확인했다.

애니메이션은 생명이고 평화다
애니메이션의 어원을 이야기할 때 꼭 나오는 ‘생명을 불어 넣는 작업’ 이라는 말이 있다. 애니메이션은 그림에, 사물에, 그리고 멈춰 있던 모든 것에 생명을 불어넣어 살아 움직이게 만드는 작업이다. 이러한 작업에 익숙한 애니메이션 작가들이 죽음을 부르는 전쟁에 반대하는 행동에 적극나선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반전의 목소리와 행동이 커다란 태풍이 돼 러시아가 하루 빨리 물러나고 다시 평화가 찾아왔으면 한다. 그리고 함께 지켜낸 평화를 기뻐하며 얼굴을 맞대고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애니메이션을 이야기했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러시아 애니메이션 작가들이 발표한 성명서에 나온 말을 옮겨본다.
‘애니메이션 예술은 사람들에게 인간을 느끼도록 돕는 예술입니다. 죽이기 위해서도, 파괴하기 위해서도 아닙니다.
하나가 되기 위해서입니다.’

 

 

 

최유진
· (사)한국독립애니메이션협회 사무국장
· 인디애니페스트 영화제 집행위원장
· 애니메이션페스티벌 심사위원·자문위원 활동

 

 

 

 

 

 

아이러브캐릭터 / 최유진 사무국장 master@ilovecharac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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