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서 재미있는 이색적인 영화제들 _ 최유진의 애니잡수다 14

최유진 사무국장 / 기사승인 : 2022-05-25 08: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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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봄이 오고 따뜻해지니 여기저기에서 다양한 축제 소식이 들려온다. 겨울보다 길었던 코로나 시대에 움츠려 있던 영화제들이 슬슬 코로나19 창궐 이전으로 돌아가기 위한 채비를 갖추며 관객들에게 문을 활짝 열고 있다는 소식이 반갑다.
얼마 전 끝난 전주국제영화제에는 예년보다 더 많은 관객과 해외 게스트들이 방문했다. 4월에는 울주산악영화제, 부산국제단편영화제가 열렸고 무주산골영화제, 서울환경영화제, 평창국제평화영화제가 차례로 이어질 것이다. 이처럼 한국에는 저마다의 콘셉트를 내세워 다양한 영화제가 열린다. 일반적으로 장르나 테마를 중심으로 나뉘지만 이보다 특이한 영화제들도 있다.

독특한 콘셉트의 애니메이션 영화제들
우리나라에서 열렸던 독특한 콘셉트의 애니메이션 영화제들이 있다. 영화제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에 따라 영화제라고 보기 힘들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일단 영화제라는 이름으로 진행됐던 독특한 콘셉트의 이벤트였던 것은 틀림없다. 재미있는 건 이 영화제를 기획한 사람들이 애니메이션 감독들이라는 사실이다.
산책가, City로 주목을 받았던 스튜디오 요그의 김영근, 김예영 감독은 어느 날 재미있는 영화제를 기획했다. 바로 QR코드 영화제와 텐트영화제다.
QR코드 영화제가 처음 열린 것은 2011년. 당시 QR코드 스캔에 애를 먹던 때여서 시대를 다소 앞서간 것이 조금 아쉽지만 기획 자체는 정말 기발했다. 작품들과 QR코드가 인쇄된 포스터만 있으면 어디서나 영화제가 열릴 수 있다.
내 방에서, 사무실이나 카페에서, 심지어 화장실에서도 포스터 한 장만 있으면 그곳이 영화관이 되고 자신은 관객이 된다.
텐트영화제는 텐트에 스크린을 설치해 영화를 본다는 콘셉트를 내걸었다. 콘셉트가 단순해 보이지만 이를 영화제로 만들겠다는 생각은 무척 신선했다.
넓은 잔디밭에 텐트가 나란히 놓여 있고 그 안에서는 다양한 작품이 상영되고 있다. 관객은 친구끼리, 가족끼리 들어가 작품을 보고 오붓하게 이야기를 나눈다. 야외 공간을 쓸 수 있는 영화제라면 누구나 한번쯤 탐낸 이 텐트영화제는 많은 곳에서 아이디어를 빌려갔다. 이번 기회에 확실히 말하자면 텐트영화제의 상표권은 스튜디오 요그에 있다.
이와 함께 병맛을 제대로 구현한 영화제가 있었으니 비슷한 시기에 시작한 10초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졸업한 친구들로 구성된 스튜디오 쉘터의 멤버 5명이 이 영화제를 준비했다.
고민금지, 오바금지, 과열금지, 반칙권장 등의 작품제작 요령은 이 영화제의 특징을 잘 설명해준다. 진지함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행사였고 작품을 만든 사람이나 관객 모두 이 병맛 영화제에 열광했다. 멋지게 디자인된 순금 트로피가 가까이서 봐야 보일 정도의 작은 크기였다거나 상금 10만 원을 스튜디오 멤버 5명이 각자 주머니에서 2만 원씩 꺼내 성의 없이 전달하는 순간까지도 완벽한 병맛을 보여줬다.
제대로 놀 줄 아는 감독들이 모여 만들었고 제대로 놀다가 더 이상 놀기 어려운 나이가 되자 결국 영화제는 막을 내렸다. 하지만 많은 이들에게는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았으리라 생각한다.

이색장소의 맛을 살린 영화제들
한국뿐 아니라 해외에도 독특한 영화제들이 많다. 특히 독특한 공간에서 진행하면서 장소의 맛을 살린 영화제들이 있다. 지난 칼럼에서도 소개한 적 있는 크록애니메이션페스티벌은 강을 따라 운항하는 크루즈에서 열린다. 영화제가 열리는 동안 감독들은 배를 타고 이동하고 도시에 들러 상영하는 영화를 보러 온 관객들과 만난다. 배에서는 파티가 열리고 서로 친구가 된다. 어서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찾아와 누구나 한번쯤 가고 싶은 이 영화제가 꼭 다시 열리기를 기원한다.
일본 홋카이도 신치토세 공항에서도 애니메이션 영화제가 열린다. 공항에 도착하는 순간 영화제에 입장하는 셈이다.
공항에 영화관과 호텔이 있기에 영화제를 방문한 감독들은 영화제 기간 동안 공항에서 생활한다. 공항에는 테마파크처럼 초콜릿 공장, 박물관, 각종 기념품 가게, 지역의 유명 레스토랑들이 자리하고 영화관 맞은편에는 온천도 있다.
영화 터미널을 연상케 하는 이 영화제를 즐기다 보면 어느 순간 하늘이 그리워진다. 그러나 작은 공간에 모두가 모여 있으니 친해지지 않을 수 없다.
지금은 장소를 옮겼지만 체코의 작은 마을 트레본에서는 애니필름이라는 영화제가 열린다. 10분이면 동네를 한 바퀴 돌 수 있을 만큼 이 작은 마을의 상징은 호수다. 영화제에는 이 호수의 이미지와 이야기가 가득 찬다.
폐막식 진행자는 호숫가에 앉아 수영을 즐기는 관광객 콘셉트로 수영복을 입고 나오고, 수상자들에게 전달된 투명한 공 형태의 트로피에는 물이 들어 있으며 물 안에 튜브를 탄 사람이 보인다. 그 물은 놀랍게도 트레본 호수에서 떠왔다. 트로피에 물이 들어 있는 바람에 기내에 들고 타지 못해 노심초사했다는 뒷이야기도 전해진다.


영화제의 계절이 시작된다
많은 영화제에 참여하다 보면 영화제들이 각자의 콘셉트를 내걸고 지켜가기 위해 고민한 흔적들을 발견하게 된다. 어쩌면 영화제에 필요한 것은 형식적인 권위만은 아닌 것 같다. 감독과 관객들이 작품이라는 매개체와 어떻게 관계를 맺고 소통하게 할지를 촘촘하게 고민하는 것이 영화제의 역할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제부터 시작되는 저마다의 개성과 색깔을 가진 영화제에서 어떤 독특한 즐거움을 발견하게 될지 벌써 기대된다. 영화제가 궁금하다면 당장 떠나라.



최유진
· (사)한국독립애니메이션협회 사무국장
· 인디애니페스트 영화제 집행위원장
· 애니메이션페스티벌 심사위원·자문위원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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