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깎이로 무궁화 꽃 활짝 피운 재야의 고수 _ 애니메이션 그 목소리 _ 성우 전영수

장진구 기자 / 기사승인 : 2022-03-04 11: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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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 이번 게임은 ‘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 입니다. ” 전 세계를 강타한 넷플릭스의 화제작 오징어 게임 속 안내요원의 목소리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지만 , 사실 그녀는 게이머들 사이에서는 이미 유명인사였다. 마흔 가까운 나이에 늦깎이로 정식 성우가 됐지만 , 사실 그녀는 이미 재야의 고수였다. 지난해 오징어 게임의 인기에 힘입어 로또 복권번호 추첨자 ‘ 오늘의 황금손 ’ 으로 나섰을 때가 그 어떤 녹음 작업보다 더 떨렸다는 성우 전영수 씨를 만났다.




간략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린다 2013년 KBS 공채 38기 출신으로 남들보다 늦은 나이에 성우 시험에 합격했다. 책을 열심히 읽는 편은 아니지만 서점에서 책 구경하는 것을 좋아했다. 마치 수목원에 온 것처럼 마음이 평온해지고 책을 구경만 해도 뭔가 읽었다는 기분을 즐겼던 것 같다. 요즘에는 강아지를 키우느라 예전처럼 서점에 자주 가지 못한다.


성우란 직업을 택한 계기가 있나? 스물일곱 살 때까지 한번도 연극을 본 적이 없을 정도로 연기의 연자도 모른 채 살았다. 그런데 대학생 시절 교수님의 소개로 우연히 하게 된 리포터 아르바이트를 시작으로 공중파 라디오나 광고에 출연하는 등 목소리를 쓰는 일이 이어지면서 서서히 흥미를 느꼈다. 녹음 부스 안에 있는 게 그저 행복했다. 내 목소리가 썩 좋진 않지만 감정 표현에 솔직했고 순발력이나 끼도 좀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스물여덟 살에 상경해 아카데미를 수료한 후 스터디 등을 통해 연기를 공부했다. 간간이 의뢰가 들어오는 녹음 작업도 병행했는데 현장에서 직접 부딪치며 많은 것을 배웠다. 그러다 GS홈쇼핑 공채 1기로 성우가 됐지만 방송국에서 진행하는 더빙작업을 해보고 싶은 갈증이 컸다. 나이 때문에 위축되기도 했으나 꿈을 이루고자 하는 열망이 컸기 때문에 뒤늦은 나이에 뒤늦게 KBS 성우로 합격했다.

 

 

 


대표작들을 소개해달라 사실 애니메이션보다 게임 출연작이 많은데 그중 정식 성우가 되기 전부터 했던 리그오브레전드의 소나 , 카타리나 , 누누 , 케넨이 있다. 게이머들에게 많이 알려져 팬층이 생긴 계기가 된 것이어서 내겐 조금 특별한 역할이었다. 또 프린세스메이커4 , 월드오브워 크래프트 , 아바타 스타 슈 등의 게임에도 출연했고 립체인저 , 몬스터탑 , 명탐정 코난 등의 애니메이션에서 여러 캐릭터를 연기했으며 라디오 CM이나 예능 , 영화 , VJ 프로그램의 내레이션도 진행하고 있다. 날 대중에게 널리 알린 작품을 꼽으라면 지난해 넷플릭스 화제작이었던 오징어 게임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극중 게임의 안내방송을 맡았을 뿐인데 많은 분들이 알아봐주셔서 감사한 작품이다. 

 

자신의 목소리가 어떤 캐릭터를 가장 잘 표현한다고 생각하나? 개성 있는 목소리는 아니지만 다양한 역할을 소화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아기 옹알이부터 죽음을 앞둔 노인까지 어떤 캐릭터가 주어지든 그에 맞는 소리를 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 가성비가 좋아 두루두루 잘 쓰일 수 있는 목소리라고나 할까.(웃음) 주위에서는 나이 많은 마녀처럼 약간 시니컬하고 카리스마가 있는 악역이나 4차원의 정신세계를 가진 여자 , 개구쟁이거나 개성 넘치는 성격의 꼬마가 나와 잘 어울린다고 한다. 우아하거나 차분한 분위기의 여신이나 예쁜 역할은 잘 들어오지 않더라.(웃음)

 

가장 애착이 가는 캐릭터는? 전속이 풀리고 프리랜서가 된 후 각 방송사에서 꼭 한 번씩은 녹음해 보리라는 목표를 세웠는데 마침 대교베이비TV에서 영유아를 타깃으로 한 애니메이션 보보의 주인공 역으로 날 캐스팅했다. 첫 주연을 맡게 돼 매우 기뻤는데 대본과 영상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귀엽게 생긴 주인공 생쥐가 별다른 대사 없이 “ 보보∼ ” 란 말로 모든 표현을 대신하는 것이었다. 억양이나 호흡 , 음의 장단으로 캐릭터의 감정을 표현해야 해 무척 난감했던 기억이 난다.


성우가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요소를 꼽는다면? 인간에 대한 애정과 사랑 , 관심이 없다면 성우를 하기 힘들다. 개개인의 사람을 관찰하지 않고서는 연기로 감정을 표현할 수 없다. 때문에 인간을 사랑하는 마음이 곧 연기라고 생각한다. 누군가를 대신해 그 사람의 감정을 간접적으로 표현해야 한다는 건 깊은 고찰이 필요한 일이다. 사람을 소리로 표현하는 직업이 성우다. 그래서 그들의 입장에서 마음과 상태를 표현할 수 있도록 많이 보고 느껴야 한다. 특히 요즘은 말보다 문자나 이모티콘으로 소통하는 경우가 많은데 성우를 꿈꾼다면 그럴수록 더 진심이 담긴 말과 표현으로 소통해야 한다.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나? 2009년이었나. 조폭처럼 보이는 고객으로부터 파친코 같은 사행성 게임기에 삽입되는 멘트를 녹음해 달라는 의뢰를 받은 적이 있었다. “ 아침입니다 , 점심입니다 , 더 하시겠습니까? , 축하드립니다 ” 등의 멘트를 녹음했는데 정말 만족스러웠는지 그분이 직접 팁을 주는 게 아닌가. 당시에는 협회에 정식으로 소속된 성우가 아니어서 수당이 적었는데 수당보다 훨씬 많은 액수의 팁을 받았다. 아마 녹음하면서 팁을 받은 성우는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이 아닐까 싶다.(웃음)


전영수에게 성우란? 성우는 연기의 연자도 몰랐던 나를 지금의 여기까지 오게 한 운명이라는 생각이 든다. “ 넌 이 길로 가야 돼 ” 라며 누군가 계속 던져주는 무언가의 힘에 나도 모르게 이끌려온 것 같다. 나이가 많아 성우를 못할 것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한 번도 없다. 끝까지 하면 된다라는 확신이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원동력이다. 힘들고 어려울수록 더 버티고 끝까지 가보려는 끈기가 있다면 그에 대한 보답이 꼭 있을 것이다. 늘 도전하시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아이러브캐릭터 / 장진구 기자 master@ilovecharac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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