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업계를 떠나는 이들이 늘고 있다. 불투명한 비전, 강도 높은 노동량, 낮은 처우 탓에 애니메이션의 길을 선택하는 이들도 줄고 있다. 그럼에도 어디선가 오늘도 묵묵히 구슬땀을 흘리며 작품을 만들기 위해 열과 성을 다하는 PD들이 있기에 한국 애니메이션의 미래는 여전히 밝다. 현장의 PD들을 만나 애니메이션을 향한 그들의 꿈과 열정, 그리고 장인 정신의 의미를 되새겨본다.
간략한 소개를 부탁드린다
올해로 6년 차인 PD다. 경영학과를 나와서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있다.(웃음) 대학 시절 우연히 들은 애니메이션 교양 수업에서 출발해 여기까지 왔다. 수업을 들으면서 우리나라에서, 특히 모교가 출자한 자회사가 애니메이션을 직접 만들고 있다는 게 새삼스러워 호기심이 생겼다. 그래서 졸업을 앞두고 4학년 때 탁툰엔터프라이즈에 인턴으로 들어와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애니메이션을 제대로 배운 적이 없어 공부하면서 일도 익힐겸 대학원에 진학해 현재 애니메이션 콘텐츠 프로듀싱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애니메이션을 좋아했지만 일이 될 줄은 몰랐다.(웃음)
참여한 작품 중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은?
아무래도 가장 오랫동안 참여하고 있는 린다의 신기한 여행이 아닐까. 회사에 처음 들어왔을 때 여러 선배가 머리를 맞대고 시즌1의 시나리오를 수정하고 있던 게 기억난다. 이제는 내가 시즌3의 시나리오를 준비하고 바이블도 정리하고 있다. 린다는 워낙 귀엽고 따스한 캐릭터다. 개인적으로도 영화든 애니메이션이든 무섭고 잔혹하거나 마냥 웃기는 것보다 따뜻한 이야기를 선호하는데 린다는 너무 사랑스러워 마음에쏙 든다. 시즌2부터는 분량을 11분으로 늘려 이야기를 확장했다. 다양한 어른을 등장시키고 린다 친구들의 강점을 부각시켰다. 따뜻한 마음으로 주변을 변화시키는 린다의 역할도 잘 드러나도록 했다.
작품을 만들면서 뿌듯했던 순간, 그리고 아쉬웠던 순간은 언제였나?
시청자들이 보고 재미있다고 말할 때 기분이 가장 좋다. 2019년 캐릭터라이선싱페어에서 아이들이 모여 앉아 쉿! 내 친구는 빅파이브를 넋 놓고 보고 있는 걸 보며 가슴이 벅찼다. 올초에는 EBS가 뿡뿡빵빵 부부맨 방영에 맞춰 시청자 게시판에서 이벤트를 진행했는데 생각보다 참여율이 높아 깜짝 놀라기도 했다. SNS에서 시청자들의 호의적인 반응을 보면 그렇게 좋을 수 없다. 하지만 매번 빠듯한 제작 스케줄은 늘 아쉬움을 남긴다. ‘더 잘 만들 수 있었는데…’라는 후회는 스케줄이 넉넉하다 해도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애니메이션 제작 공정이 워낙 많지 않은가. 작품 하나만 하는 게 아니라서 여유가 없다. 한 공정에서 문제가 생기면 다른 공정이 도미노처럼 줄줄이 밀리기 일쑤다.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동력은 뭔가?
작품을 향한 애정이다. 우리가 만드는 작품을 보고 있자면 그저 사랑스럽다. 한 작품을 끝냈을 때 맛보는 후련함, 특히 시간이 흘러도 작품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는 게 애니메이션을 만들 때 느끼는 가장 큰 매력이다. 2017년 웹툰 원작의 2D 애니메이션 뾰족뾰족 포크가족이 그렇다. 비록 많은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마니아층은 여전히 있더라. 최근 일러스트페어에 나갔는데 단박에 알아보고 반갑게 맞아준 팬들이 신기하면서도 고마웠다.
요즘 애니메이션업계를 바라보는 개인적인 생각은?
젊은 친구들이 많이 유입되면 좋겠다. 꼭 애니메이션에 머무르지 말고 콘텐츠 기업으로서 더 재미있게 일하는 분위기와 환경을 만드는 데 모두 힘을 모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하지만 살아남아야 하는 냉혹한 현실에 내몰린 탓에 잘 안되는 게 안타깝다. 기성세대가 비효율적인 부분을 바꾸고, 낡은 고정관념을 버리고, 새로운 도전에 과감히 나서기 위한 고민과 용기를 내는 게 필요하다.
앞으로 해보고 싶은 장르나 이야기가 있다면?
뾰족뾰족 포크가족의 스핀오프작을 만들어보고 싶다. 호러나 그로테스크한 장르로 청소년 이상의 성인이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라면 괜찮지 않을까. 요즘 핫한 BL 장르의 작품도 꼭 해보고 싶다. 개인적으로는 술과 관련된 이야기를 담은 작품도 기획하고 있다. 고민을 털어놓는 사람에게 잘 어울리는 술을 권하며 걱정을 해소하고 상처를 치유한다는 내용이다.
아이러브캐릭터 / 장진구 기자 master@ilovecharac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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