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타주의적 상영료 _ 최유진의 애니잡수다 15

최유진 사무국장 / 기사승인 : 2022-06-27 08: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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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독립애니메이션을 배급하다 보면 종종 혼란스러운 요청을 받기도 한다. 상영료 없이 작품을 상영하고 싶다는 게 대표적이다. 상영료를 주지 않는다는 설명에 붙는 얘기는 대부분 “작품의 상영 기회가 생기고 이를 통해 홍보할 수 있으니 좋지 않으냐” 는 것이다. 또 영리를 목적으로 작품을 상영하지 않는다는 말도 덧붙이곤 한다. 그들의 배려와 염려에 고마워해야 하는 걸까. 작품을 위해 이런 좋은 기회를 제공해주다니 얼마나 이타적인 제안이란 말인가. 그런데 마음속에 생겨나는 이 혼란의 정체는 무엇일까.

홍보가 된다? 허울 좋은 말뿐
식당에서 밥을 먹으면 돈을 낸다. 손님이 맛있게 먹고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릴 수도 있으니 식당 입장에서는 음식을 만들어 홍보할 기회가 생기는데 우린 왜 돈을 내는가.
유명 연예인이 나오는 광고 영상은 어떤가. 자신의 얼굴을 알리는 영상이 여기저기에서 나오니 그들은 돈을 받지 않고 출연하기라도 한다는 건가. 제작사도 이런 홍보 영상을 만들 수 있는 훌륭한 능력을 갖췄다는 점을 알릴 수 있으니 무료로 영상을 만드는 걸까.
행사안내를 위한 책자, 홍보물, 무대를 꾸미기 위해 투입되는 온갖 장비들도 홍보가 되니 돈을 받지 않고 제공하고 있다는 것일까.
그럴 리 없다. 오직 작품 상영료만 주지 않는 것이다. “홍보가 될 테니” 말이다.
그래서 “홍보가 될 것” 이라며 문의해오면 반문한다. “관객은 얼마나 오나요?” 그러면 “15∼20명” 이라고 말하는 곳이 대부분이다. 누구에게 무슨 홍보가 된다는 것인지 의문이다. 그저 상영회 규모가 작고 영세해 상영료를 줄 수 없다고 솔직하게 얘기하면 좋겠다.

비영리 사업은 없다
“비영리 목적의 상영입니다” 라고들 말한다. 독립애니메이션협회는 비영리법인이다. 그렇다고 손가락 빨면서 생활하지 않는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살아가려면 비용이 든다. 사무국을 운영하기 위한 인건비도 만만찮다. 하늘에서 돈이 떨어지면 좋겠지만 그저 희망사항일 뿐이다.
비영리법인도 설립목적을 수행하기 위해서라면 영리활동을 할 수 있다. 따라서 운영비 마련을 위해 영리사업을 한다. 이익을 취하지 않는 비영리라고 말할지라도 100% 순수한 비영리는 없다. 취하고자 하는 이익의 형태가 돈으로 한정되지 않을 뿐 다양한 형태의 가치를 취한다.
상영회에서 입장권을 받지 않는다 해도 누군가에게는 이익이 돌아간다. 그래야 행사가 지속될 수 있으니 말이다. 하다못해 이런 상영회의 성과들을 보여줘야 정부로부터 받는 지원금이나 사업비를 조금이라도 늘릴 수 있으니 이익이라면 이익이다. 때문에 완벽한 비영리는 이러한 이익이 의미가 없는 가족이나 친구 사이에서나 있을 법한 얘기다. 재차 얘기하지만 그냥 차라리 돈이 없다고 말하는 게 낫다.

상영료는 꼭 받아야 한다
상영료를 받지 않아도 상영을 원하는 감독들을 종종 만난다. 많이 보여지는 게 중요하다는 그들의 생각을 이해하고 힘들게 만든 만큼 더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이해한다. 그럼에도 상영료는 꼭 받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싶다. 단 한 명의 관객이 소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소중한 작품을 지키고 사회의 시선을 변화시켜나가기 위해서다.
상영료는 작품의 가치를 인정받고 존중받기 위한 기본 토대다. 물론 가격으로 모든 것의 가치를 평가할 수 없다. 심지어 예술작품인 애니메이션의 가치를 상영료로 평가한다는 건 더더욱 어불성설이다. 다만 이 사회에서 어떤 활동을 할 때 그에 맞는 적절한 가치를 지불하는 것은 일반적인 상식이자 사회적 합의다. 애니메이션 작품을 상영하고자 할 때도 예외일 순 없다.
입장료가 없는 상영회와 1,000원이라도 입장료가 있는 상영회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무료 상영회에 가보면 들락날락하는 관객들이 많다. 보다가 자신의 취향과 조금이라도 맞지 않으면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러나 1,000원이라도 상영료가 있다면 관객들은 지불한만큼의 가치를 돌려받기 위해 더욱 집중한다. 관객뿐이 아니다. 한 작품을 상영하기 위해 상영료를 지불한다면 최소한 상영료 만큼의 가치를 돌려받아야 할 필요가 생긴다. 그러면 한 명의 관객이라도 더 모아야 하고 이를 위해 더 열심히 홍보하고 발로 뛰게 된다. 즉, 상영료를 지불하면서 작품을 상영하고 싶다는 것은 작품에 대한 애정과 더 많은 관객에게 보여줄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이기도 하다.
상영료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변화는 앞으로 창작자들이 작품 활동을 지속할 수 있는 최소한의 버팀목이 될 수 있다. 10여 년 전에는 상영료를 얘기하면 놀라는 사람들이 많았다. 당연히 홍보 운운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당시 1회에 10만 원이라는 상영료에 부담을 느껴 대부분 협의를 요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달라졌다. 상영료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
이제는 대부분 상영료 지불을 전제로 연락하는 사례가 대부분이다. 애초 상영료를 준비하지 않았지만 얘기를 찬찬히 듣고 작은 액수라도 마련해보려는 곳이 많아졌다.
작품의 가치가 존중받고 보장받을수록 작품 창작의 선순환 구조를 마련하는 토대가 될 수 있다. 이러한 변화가 가능했던 건 이러한 문화를 만들기 위한 설득에 응해준 감독들 덕분이다. 때로는 자신에게 주어진 상영의 기회를 포기해야 할 때도 있었으니 말이다.

좋은 일은 셀프로 하자
기본적인 상영료 없이 상영회를 기획하는 많은 곳들의 공통점은 자신의 프로그램이 ‘누군가를 위해서’ 라는 점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관객일 수 있고 작품을 만든 감독일 수도 있다. 좋은 일? 그래 좋다. 다만 좋은 일을 하고 싶으면 자신이 만든 것으로 직접 했으면 좋겠다.
‘효도는 셀프’ 라는 말처럼 ‘좋은 일도 셀프’ 다. 사실 상영료는 10년 전과 비슷할 정도로 여전히 적다. 그래도 작품의 가치를 인정하는 최소한의 기준인 상영료 지불이 상식으로 자리 잡길 바란다.



최유진
· (사)한국독립애니메이션협회 사무국장
· 인디애니페스트 영화제 집행위원장
· 애니메이션페스티벌 심사위원·자문위원 활동

 

 

 

 

 

 

 

아이러브캐릭터 / 최유진 사무국장 master@ilovecharac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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