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속의 한국 애니메이션: 근현대사 - 32_이남국 교수의 애니메이션 아카이브 43

/ 기사승인 : 2021-03-29 09:2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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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감독은 초창기 시절을 회고하며 다음과 같이 기술 했다.



“한남동에 세기촬영소라고 세기상사 소유의 세트장이 있었는데 거기서 사람들을 모으기 시작했어요. ‘홍길동’ 이 끝나고 군대에 가면서 자연스럽게 신동헌 선생님과의 작업 에서 손을 놓게 됐습니다. 교직에 몸담을 생각에 미술교육을 전공하기도 했죠. 그러던 어느 날 정욱 회장님이 찾아왔어요. 일본 도에이 일을 해보지 않겠냐고요. 그 당시 일본 애니메이션 조합이 한창 시위하고 난리였어요. 도에이도 스케줄이 펑크 나게 생겼으니 우리한테 일을 주게 된 겁니 다. 처음에는 내가 ‘대우’ , 그리고 정욱 회장님이 ‘원프로’ 라는 회사를 각각 차려 도에이 일을 나눠서 했는데, 그러다가 두 회사를 합치자는 의견이 모아져 각각의 이름 첫 자를 따‘대원’을 설립하게 됐지요. 당시 도에이 동화가 한국에 애니메이션 하청을 맡기기 시작했을 때는 한국의 제작력을 신뢰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 시험대에 오르게 되었던 작품이 있었는데, 김대중 감독이 한국 측 작화를 총책임졌던 작품 <우주해적 캡틴 하록>이었죠.”



김대중 감독은 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국내에서 창작 TV 애니메이션 시대가 열리게 되자 국산 만화영화 2020년 우주의 원더키디를 직접 연출, 제작했다.


이후 김대중 감독은 대원동화를 퇴사하고 세영동화를 설립 했다. 바로 일본 장편 애니메이션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에 공동제작사로 크레딧을 올렸던 회사다. 김 감독은 1970년대부터 활동한 국내 1세대 애니메이션 제작자다. 세영동화를 이끌며 1988년 MBC에서 방송된 독고탁의 비둘기 합창 등을 제작했다. 1989년 KBS에서 방송된 2020 우주의 원더키디로도 완성도를 인정받았다. 김 감독은 일본 애니메이션 은하철도 999를 비롯해 나디아, 미국 애니메이션 형사 가제트 등의 하청 제작 작업을 하기도 했다. 그는 2017년 9월 14일, 암으로 만 71세에 영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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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병권 - 유니버셜 스튜디오 하청의 역사

정병권 감독은 유니버셜 아트를 설립하기 전인 1960년대 중반부터 국내 기업체의 CF 영상을 다수 제작하며 전문성을 키워 갔다. 그러다 1969년에는 내무부 치안국 (현 경찰청)의 5분짜리 방첩계몽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기도 했다.


1972년 정병권 감독은 유니버셜 아트를 설립하고 일본 공상과학 만화영화 독수리 오형제(원제: 과학닌자대 갓챠맨) 의 애니메이션 제작 사업을 시작했다. 1963년 최초의 TV 애니메이션 시리즈인 철완 아톰 제작을 계기로 일본은 애니메이션 산업이 크게 부흥했으나, 반면에 작품 제작에 참여할 인력이 부족해지면서 해외용역 제작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1970년대 초반, 정병권 감독은 일본의 만화영화 제작사업 권을 따내기 위해 CF 영상 필름을 독수리 오형제의 제작 사인 일본 타츠노코 프로덕션에 보내고 이것이 기술력을 인정받게 된다. 그러나 작품을 수주한 뒤 독수리 오형제 TV시리즈의 매 화 러닝타임이 30분으로 늘어나며 작화 분량이 큰 문제가 되었다. 정 감독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사재를 털고 여기저기서 끌어모은 사업 자금을 합쳐 수십 명의 애니메이터를 고용했다.


독수리 오형제는 한 회당 컷 수가 대략 4,500~6,000컷 정도였으므로 수십 명의 애니메이터가 참여해도 기한을 맞추기가 쉽지 않았다. 작업은 고됐지만 그 과정을 극복하면서 일본 업체와의 신뢰를 쌓아갔다.


이런 경우도 있었다. 타츠노코의 일본 내 외주제작 업체 중한 곳이 물량을 맞추지 못해 정 감독의 회사에 추가 의뢰를 했는데, 그 양이 소화해내기 불가능해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정 감독은 모든 분량을 거뜬히 소화해내면서 일본 측으로부터 역량을 재평가받기도 했다.


유니버셜 아트는 독수리 오형제만이 아니라 신조인간 캐산, 타임보칸 시리즈, 꿀벌 해치의 모험, 개구리 소년 왕눈이 등 수많은 작품에 참여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하청 제작 단가는 점점 낮아지고 빚만 늘어나는 상황이 되자 1980년 사업을 접었다. 이후에는 제일기획, 오리콤 등의 광고 대행사에서 스토리보드 작화를 맡아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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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에는 유아교육 프로그램인 KBS TV유치원 하나둘 셋의 ‘개구쟁이 고마 고미’ 를 제작했다. 30초 분량의 교육용 만화영화였던 개구쟁이 고마 고미는 1982년 9월 20일부터 2007년 4월 27일까지 장기간 방영되면서 어린이 시청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한때는 신동헌 선생 밑에서 CF 제작을 한 적도 있다. 당시는 신동헌 선생 외에도 엄도식, 신능파, 한성학, 정도빈 등이 애니메이션 기업의 PR광고(훽스트와 한독약품, 금성사, 한국화이자 등)와 CF를 만들었다.


정병권 감독은 신동헌 감독을 돕다가 독립해서 많은 CF 애니메이션을 본격적으로 제작했다. 제일모직의 ‘장미표 털실’ CF에 스톱모션 기법을 사용했고, 1968년 삼성제약의 ‘에프 킬러 에어졸’ CF에는 모기를 목각인형으로 제작한 스톱모션 기법을 처음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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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웅 감독은 신동헌 감독의 홍길동 원화 작업을 시작으로, 1970년대에는 교육 동화를 설립했고 이어서 1986년에는 신원동화를 설립했다. 이를 기반으로 한국 최초의 TV 애니메이션 시리즈인 떠돌이 까치를 제작했다. 이 밖에도 머털도사(1989년 방영 TV시 리즈-이두호 만화 원작), 콩딱쿵 이야기 주머니 등 유명 만화영화들을 제작했다. 이후 그리미 프로덕션으로 상호를 변경했다가 현재는 꽃다지라는 회사명을 사용하고 있다. 2000년에는 로보트 태권V를 제작했으며, 2001년 신 머털 도사 이후 제작한 기파이터 태랑은 일본 NHK와 대만, 홍콩, 동남아, 브라질 등에서 방영되는 성과를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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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4월 7일자 매일경제는 다음과 같이 보도하고 있다.



“태권도가 2000년 시드니올림픽 공식 종목으로 채택돼 120여 태권도 회원 가입국을 포함한 전 세계 안방 시청자 들이 지켜보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를 통해 태권도 종주국의 이미지를 세계 어린이들에게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제작 방향은 모든 공정을 컴퓨터로 처리하고 3D 제작 기법 중 셀 타입 전환 시스템을 통해 국내 애니메이터들이 구현하기 힘든 장면을 더욱 박진감 넘치게 그려낼 계획이다.…(중략)…추정 소요예산은 총 33억 9,000만 원이며 수익분배 방식은 투자비율에 따를 계획이다. 이 사업으로 예상되는 수입은 국외 방영권과 배급권, 캐릭터 판매 등으로 67억 4,500만 원, 프로젝트 파이낸싱 방식 으로 투자유치를 원하는 희망 금액은 33억 9,000만 원이 다. 투자회수 지점은 국외 판매가 완료되는 2000년 9월로 예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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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국


·전 홍익대 조형대학디자인영상학부 애니메이션 전공교수


·전 월트 디즈니 & 워너 브라더스 스튜디오 감독 및 애니메이터


·국립공주대학교 영상예술대학원 게임멀티미디어학과 공학석사


·CANADA SENECA COLLEGE OF APPLIED ARTS & TECHNOLOGY



출처 : 월간 <아이러브캐릭터> 2021.3월호


출처 : <아이러브캐릭터 편집부> (master@ilovecharac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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