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속의 한국 애니메이션: 근현대사 - 30_이남국 교수의 애니메이션 아카이브 41

/ 기사승인 : 2021-01-25 10:5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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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아트는 필름의 매 프레임을 투명 셀룰로이드를 이용해 선을 떴다. 또 매 프레임을 일정한 크기로 일일이 확대해서 현상한 인화지에 애니메이션용 펀치(페그용)로 구멍을 뚫고, 그 위에 작화지를 올리고 연필로 본을 떴다. 또 직접 셀위에 펜으로 트레이스(trace)를 한 후 비닐수지로 컬러를 입히는 작업을 했다. 그리고 움직이는 주인공 이외의 배경은 따로 그려서 그 위에 채화(원화)된 셀을 놓고 촬영하는 방식으로 대폭 개선했다. 국산 제품이 없었기 때문에 셀과 비닐칼라는 일본에서 수입하고 16mm 필름을 미국에서 100피트당 10달러씩 주고 구입했다. 

채색 작업이 끝난 뒤 국제아트는 정도빈 감독의 주도 아래 이동영, 임정규, 김태익, 하성출, 이남국, 최문안, 김수완, 임영부 등으로 제작진을 구성하고 일본에 보낼 장편용 삼국지 3분짜리 샘플을 기획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보세 가공을 뛰어넘어 펠릭스 더 캣의 창작을 한국에서 진행하기 위해 뉴욕의 오리올로 필름 스튜디오와 계약을 맺고 샘플을 기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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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영 감독은 1966년 동양TV 동화부에 입사하며 만화영화 분야의 일을 시작 했다. 1966년은 신동헌 감독, 신동우 화백의 극장용 장편 만화영화 홍길동이 세기상사에서 제작된 해였다. 또 동양방 송에서 일본 만화영화 황금박쥐와 요괴 인간의 하청 제작이 시작되던 해이기도 한데, 이 하청 작업은 이후 약 3년간 지속되다가 수익성이 맞지 않아 제작진 3기생 모집을 끝으로 더 이상 하지 않게 됐다. 1969년 이동영 감독은 미국 흑백 만화영화의 채색 작업을 하던 국제아트에 입사해 이곳이 문을 닫을 때까지 약 3년간 종사했다. 1972년에는 배정길 감독을 주축으로 강광 신, 이동영, 김윤대와 함께 설립한 미로동화에서, 일본 도에이의 만화영화 하청 제작을 했는데, 초기에는 일본 애니 메이션들의 동화와 채색을 담당했다. 미로동화 경영 당시 에는 회사 운영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제일기획의 CF 작업 (다시다, 마징가제트 신발 등)과 정부의 공익광고( '농촌의 벼멸구를 없애자’ 등), 계몽영화(김삿갓 북한 방랑기, 간첩 자수 권유 등) 제작에 전적으로 매달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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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경 일본의 도에이가 한국의 세경동화와 손잡고 하청 작업을 했다. 이 시기에 미로동화를 중심으로 대원동화와 세영동화로 나눠진 원프로(이후 대원동화), 교육동화 (이후 신원동화) 등의 하청 제작사들이 생겨났다. 

이동영 감독은 1992년 예림동화를 설립했고, 2002년 2월 8일에는 예림 프로덕션을 설립해 미국 만화영화의 하청 작업을 시작했다. 2003년 12월 10일에는 문화관광부로부터 만화와 애니메이션 분야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로 2003년 대한민국 만화-애니메이션-캐릭터 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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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8월 한국 최초의 애니메이션 단체인 박영일 감독의 한국동화인협의회는 1980년 4월 12일 정도빈 감독의 한국만화영화예술인협회라는 임의 단체를 거쳐 1999년 2 월 25일 문화관광부에 사단법인으로 등록됐다. 이후 한국 애니메이터협회(변강문)와 통합해 (사)한국애니메이션예 술인협회가 정식으로 탄생하였으며, 이동영 감독은 법인 체제 아래 초대 회장으로 활동했다. 

같은 해 3월 9일에는 임원진과 24명의 이사 중 21명이 협회 사무실에서 제2차 이사회를 열었다. 12개 분과위원회를 구성했고 정회원, 준회원, 특별회원 등 회원 분류건과 회비 책정건을 의결했다. 또한 주영 전 애니메이션예술인 협회(가칭) 회장과 변강문 전 애니메이터협회(가칭) 회장, 그리고 사단법인 제1대 회장인 이동영 회장이 서로 화해와 연합의 악수를 나누며 협회의 발전을 약속했다. 

당시 협회 사무실은 관악구 신림동에 있었는데, 한국산업 진흥재단이 1999년 5월 3일에 서울시 중구 예장동 8-145 번지에 애니메이션센터를 개관하면서 센터 내로 이전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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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제2대(2001년) 회장에 안영호, 제3대(2002년) 회장에 이춘만, 제4대(2003년) 회장에 김영두, 제5대(2005 년) 회장에 김영두 재임, 제6대(2007년) 회장에 넬슨 신, 제7대(2009년) 회장에 김영두, 제8대(2011년) 회장에 정창일, 제9대(2014년) 회장에 김인숙, 제10대(2015년) 회장에 이춘만, 제11대(2017년)회장에 최영균, 제12대 (2019년) 회장에 김재호가 취임했다. 

사단법인으로 등록된 이후 1999년 5월 1일 애니메이션 정보지를 발간하기 시작해 한국애니메이션계의 동정을 전하 다가 2002년 4월 23일 통권 제14호를 끝으로 발간을 중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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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 회장의 대원동화는 원 프로덕션 (1973~1974)으로 시작해 대원기획 (1974~1977), 대원동화(1977~ 2000), 대원 C&A 홀딩스(2000~ 2007), 대원미디어(2007~현재)로 회사명이 바뀌어왔다. 전반적으로 만화영 화의 제작 및 판매와 캐릭터 라이선싱 및 캐릭터 프랜차이즈 사업을 하고 있으며, 국내 미디어 믹스 사업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수입만이 아니라 1988년 처음으로 방송 애니메이션 달려라 하니를 제작했으며 붉은매, 무적 철인 람보트, 영심이, 버뮤다 5000년, 우주대장 애꾸눈, 두치와 뿌꾸, 동글동글 짝짝, 수호전사 맥스맨, 큐빅스, 아이 언키드, 환상의 별 매지네이션, 호환마마 비디오, 뚜바뚜바 눈보리, 신 암행어사, 은하 전설 테라, 독고탁-태양을 향해 던져라, 독고탁-다시 찾은 마운드, 내 이름은 독고탁, 각시 탈, 지구용사 벡터맨 I, II, 녹색전차 해모수, 사랑의 학교, 마법사의 아들 코리 등을 기획, 제작, 수출했다. 설립자인 정욱 회장은 우리나라 최초 극장용 만화영화 홍길동 제작에 참여한 애니메이터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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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에는 해외 만화영화 하도급 수출실적에서 호조를 보인 대원동화가 2백만불 수출의 탑을 수상했다. 

기타 수상 내용은 위에 첨부한 도표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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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국 

·전 홍익대 조형대학디자인영상학부 애니메이션 전공교수 

·전 월트 디즈니 & 워너 브라더스 스튜디오 감독 및 애니메이터 

·국립공주대학교 영상예술대학원 게임멀티미디어학과 공학석사 

·CANADA SENECA COLLEGE OF APPLIED ARTS & TECHNOLOGY




출처 : 월간 <아이러브캐릭터> 2021.1월호 

출처 : <아이러브캐릭터 편집부> (master@ilovecharac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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