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방송/ TBC-TV의 하청의 역사
한국 최초로 해외에서 용역 일을 받아 만화영화를 공식적 으로 하청 제작한 회사는 1965년, 삼성그룹 산하의 동양 방송(TBC-TV)이다. 동양TV 사내 10층 전체에 한일 공동 합작을 위해 동화부(만화영화부)를 창설하고, 한국 최초의 외국-한국간 국제 협력사로서 일본 제일동화(기획, 제작) 와 제휴해 TV 연속물인 만화영화 황금박쥐(동양방송 /TBC-TV, 오후 6시20분 프로)와 일본 NHK방송국의 작품 요괴인간의 동화와 채색 그리고 배경까지의 공정을 전담 제작했다. 한국 최초로 보세가공인 국제 하청 제작 또는 용역 제작, 즉 주문자 상호부착방식(OEM)의 첫 물꼬를 튼다. 요괴인간의 감독은 이시구로 노보루였다.
. ..
일본 측 황금박쥐 스태프 사진을 보면, 동양방송(TBCTV)이 제작 협력 회사임을 밝히고 있다.
.


한국 측 요괴인간 스태프 단체사진에서 동양방송 스태프들을 볼 수 있다. 작업 중인 동양방송 동화부 스태프들 사진의 좌측 상단에 황금박쥐와 요괴인간의 한국 측 스태프 명단이 있다. 우측 상단에는 10층 전체가 동화부로 사용된 동양방송(TBC-TV) 사옥의 전경이 보인다.
.


요괴인간 벰, 베라, 베로 캐릭터 비교도는 제작 당시인 1968년의 인물 설정과 1982년의 인물 디자인 설정에 약간의 변화가 있음을 보여준다. 오히려 초기 디자인이 더 친숙해 보인다.
한국 국민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던 황금박쥐(요미우리TV 방영)는 1967년 4월 1일부터 1968년 3월 23일까지 매주 토요일 저녁 7시부터 30분간 총 52화 구성으로 방송됐다.
원작-나가마스 다케오/ 연재-소년 화보, 주간 소년 킹/ 감수-가다누룩, 신상옥/ 동화감독-모리카와 노부히데/ 미술 감독-키무라 카즈오/ 음악-다나카 마사시, 이·본죠/ 연출-이시구로 노보루·와카바야시 타다·이하라 카즈오/ 제작 협력-동양방송, 제일동화가 맡았다.
황금박쥐의 크레딧에는 한국의 동양방송이 제작 협력으로, 일본의 제일동화가 기획 제작으로, 그리고 동화감독에 모리카와 노부히데가 각각 표시돼 있다. 단체사진의 청색 원속 인물은 당시의 동화감독 모리카와 노부히데다.
.
동양방송 동화부에 파견된 일본 측 총감독 모리가와 노부히데는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상황을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동양방송 최상층인 10층 전체를 동화제작부로 사용했다. 이후 언론을 통해 공모한 정원 80명의 입사 채용 시험에 젊은 미대생이나 유명 만화가들이 무려 900명이 넘게 모였다.” 스토리와 시나리오는 일본에서 들여오고, 작화에서 촬영까지 일련의 작업은 한국에서 보세가공으로 2년 6개월간 진행됐다. 당시 미화 18만 달러를 벌어들였으나 결국 문을 닫게 된다. 자재를 항공기로 운송하는 과정에서 비용이 많이 들었고, 분실 사고가 발생해 처음부터 다시 그려야 했던 적도 있다. 요괴인간은 황금박쥐에 이어 일본의 제일동화와 한국의 동양방송이 합작해 만든 2번째 애니메이션이다.
제일동화는 원래 제일기획 소속의 실제작 담당 분야였는 데, 이 작품을 끝으로 해체됐다. 당시 한국 제작진으로 박영일, 한성학, 유범웅, 이준웅, 임정규, 이동영, 배정길, 김우영 등이 참여했다.
경향신문 1968년 7월 18일자에는 이런 기사가 실렸다.
1968년 7월 17일 국제극장에서 개봉된 일본 극장용 만화 영화 황금박쥐를 보기 위해 “이날 새벽부터 어린이들이 3 백 미터의 장사진을 이뤄, 첫 회 1천7백여 장의 입장권이 상오 8시 20분에 매진됐었다. 약삭빠른 암표 상인들은 1 백 원짜리 1장에 3백 원씩 팔아 톡톡히 재미를 보다 경찰 단속망에 걸리기도” 라고 보도하면서 당시로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만화영화의 대단한 인기를 소개하기도 했다.
동아일보 1968년 7월 16일자 만화영화 신문 광고에 따르 면, 그 당시 인기를 끌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폭력물로 낙인 찍혔던 황금박쥐를 감수(1968년)한 인물은 한국 영화 계의 거장 신상옥 감독이었다.(위 이미지 참조)
송정훈/ 송관-국제아트 하청의 역사
1968년, 김용환 화백의 동생 김태환 선생이 개미 프로덕션을 설립하고 미국에서 1919년부터 1940년까지 유행하던 흑백 고전 만화영화이자 조지 헤리만이 개발한 크레이지 캣(1913년) 40릴, 팻 설리번과 오토 메스머가 개발한 펠릭스 더 캣(1919년) 20릴, 플레이셔 스튜디오의 맥스플 레이셔가 개발한 베티붑(1930년) 80릴, 워너 브러더스의 프릿즈 프랠링과 텍스 에이버리, 척 존스 등이 개발한 루니 툰즈와 메리 멜로디즈 시리즈의 포키피그(1935년) 120릴등 총 170여 편(각 7분물)을 컬러로 채색 작업하는 보세가공 하청용역 제작을 시도했다. 그러나 1969년에 개인 사정으로 국제아트 프로덕션(을지로 6가, 서울운동장 건너 편)의 송정훈 대표와 송관 이사에게 제작 시스템을 인계하게 된다.
. .
국제아트의 송정훈 사장은 평균 약 7분짜리 흑백필름 260편을 컬러로 채색하는 작업만으로 미화 50만 달러라는 수출실적을 올렸다. 당시 1972년 11월 28일자 동아일 보는 ‘이색수출-만화영화 용역’ 이란 표제어 아래 1작품당 7분 길이이며, 연도별 수입은 1969년에 73,000달러, 1970년에 116,000달러, 1971년에 111,000달러, 1972년에 150,000달러의 외화를 획득했다고 보도했다. 당시 편당 가격은 미화 약 1,700달러 정도였 으며 한 달에 7편에서 10편 정도를 소화한 것이다.
이남국
·전 홍익대 조형대학디자인영상학부 애니메이션 전공교수
·전 월트 디즈니 & 워너 브라더스 스튜디오 감독 및 애니메이터
·국립공주대학교 영상예술대학원 게임멀티미디어학과 공학석사
·CANADA SENECA COLLEGE OF APPLIED ARTS & TECHNOLOGY
출처 : 월간 <아이러브캐릭터> 2020.12월호
출처 : <아이러브캐릭터 편집부> (master@ilovecharacter.com)
[저작권자ⓒ 아이러브캐릭터.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