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만화영화의 역사를 연대순으로 살펴볼 때 가장 두드러지는 부분은 바로 하청에 대한 것이다. 한국 만화영화의 국내 창작 시장이 열린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도 해외 만화영화의 용역, 보세, 위탁, 하청(OEM) 제작은 지속되고 있다. 이번 칼럼에서는 하청의 역사를 특집으로 다룬 후 다시 각 연도별 연대기로 돌아갈 것이다.
초창기부터 국내 용역 OEM 산업의 발전에 기여한 인물들은 무수히 많다. 그들 중 일부를 열거해보면, 삼성물산 이병철 회장의 TBC-TV(동양방송) 동화부를 기점으로 국제 아트의 송정훈 대표, 미로동화의 이동영(이동현) 대표, 대원동화의 정욱 대표, 세영동화의 김대중 대표, 유니버셜 스튜디오의 정병권 대표, 교육동화의 유성웅 대표, 동서동 화의 한상호 대표, 루크필름의 김태익 대표, 에이콤의 신능 균(넬슨 신) 대표, 선우프로의 강한영 대표, 한호흥업의 김석기 대표, 플러스원의 이춘만 대표, 새롬애니메이션의 김길환 대표, 동우동화의 김영두 대표, 코코엔터프라이즈의 전명옥 대표, 라프드래프트의 박경숙 대표, 한신 코퍼레이 션의 최신묵 대표 등이 있다. 이 중 한호흥업의 김석기 대표와 한신 코퍼레이션 최신묵 대표는 애니메이션 작화와 직접 관련은 없지만 해외 마케팅 경험을 중심으로 업계를 이끌어왔다. 이 글에 열거한 인물들은 OEM 시장의 발전과 확장에 기여를 했을 뿐 아니라 국내 만화 창작에도 크게 기여했다.

또 일본 애니메이션 외주 용역에서 두드러지게 활동했던 이들도 있다. DR무비, 효인동화, 윤성, 삼흥, 한영, 희원, 동방, 금영, 창성, 문성, 신영, 창영, 태양, 석천, 인복, 대진, 한일, 우리, 지우, 은하, 두리, 박영, 혜명, 쌍진, 스타, 한양, 백구, 삼원, 성보, 한진, 금성, 유진, 대일, 대영, 연진, 성산, 신우, 중앙, 영우, 계성, 세경, 신원, 동기동화 등이 그들이다.
이 밖에도 수많은 애니메이션 예술인과 사업가들이 미국, 일본, 유럽을 포함하는 해외 용역 산업에서 함께 땀을 흘렸 다는 데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고 하겠다.
애니메이션 용역 하청과 관련해 혹자는 “하청은 공장에서 생산하듯이 그저 남의 요구를 맞춰주는 기계적인 작업” 이 라며 비하하기도 했다. 그러나 해외 도급제의 하청 작업도각 파트별로 이루어지는 엄연한 창작 작업이라는 것을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스토리보드 상의 장면과 동작 및 표정을 하청 작업할 경우, 의뢰를 받은 이들은 요청된 상황에 따라 창의적 으로 원화나 동화를 그려 나간다.
잊지 말아야 할 점은 모든 애니메이션 종사자가 기획자나 스토리텔러, 콘셉트 디자이너, 캐릭터 디자이너, 배경 디자 이너가 되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파트별로 자신에게 맞는 분야, 이를 테면 스토리보드, 애니메틱스, 레이아웃, 원화, 클린업, 동화, 선화, 채화, 디지털 잉크 앤페인트, 배경 채색, 색 지정, 편집디자인, 카메라 오퍼레이 터, 3D 모델링, 캐릭터 셋업, 프랍스, 세트 디자인, 텍스처 매핑, 리깅, 애니메이션(시뮬레이션 영상), 라이팅, 카메라 세팅, 렌더링, 디지털 콤포지팅, 컬러 코렉션, 뮤직과 폴리등 다양한 분야에서 창의력을 발휘해야만 하는 것이다.
즉 하청 제작이라고 해서 로봇처럼 원청회사가 요구한 대로만 일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하청 제작을 마치 애니메 이션을 기계로 찍어내는 공장식 작업인 양 취급하는 혹자 들의 왜곡된 편견은 재고의 가치도 없는 무의미한 비난인 것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하청 제작 역시 전적으로 창의적인 작업인 것이다!
아동용 애니메이션을 제외하면 청소년을 포함해 성인을 위한 국내 기획 창작의 수가 적은 편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2D 전통 애니메이션 시절 (1960~2000년)에는 많은 작품들이 매년 제작 및 개봉됐 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3D 시대에 접어든 이후 아동용을 제외하고는 눈에 띌 정도로 현저히 줄어들어 매우 애석 하다.
이러한 현상의 원인이 창작 애니메이션을 위한 기획력의 부족 내지는 청소년이나 성인을 위한 아이디어나 스토리 발굴 면에서 자신이 없어서인지, 아니면 수익이 안 나서인 지는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 아무튼 소수를 제외하고는 대중을 위한 애니메이션은 거의 제작을 안 하거나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비해 미국이나 일본에서도 애니메이션 제작에 있어 수익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지만, 수익을 떠나서 사회적 책임감을 갖고 아동, 청소년, 성인용 애니메 이션이 꾸준히 제작되고 있는 점을 본받아야 한다.
한 국가의 모든 애니메이션 제작자들에게는 ‘금전적인 수익(monetary proceeds/profits)’ 이 아닌 ‘사회적인 공익 (social benefits)’ 을 염두에 두는 ‘공적인 책임 정신(a spirit of social responsibility)’ 이 절실히 요구된다.
2D 하청의 발전과정을 보면 초기에는 동화나 채색 위주로 작업하다가 점차 원화, 동화로 발전하고 마침내 스토리보 드, 구성(레이아웃), 원화, 동화, 선화, 채화, 배경, 촬영, 특수효과 등 보다 다양한 영역에까지 확대된다. 또 3D 하청의 발전과정을 보면 초기에는 특수효과 위주로 시작해 현재는 모델링, 모델세팅, 키프레임, 매핑, 라이팅, 특수효과, 렌더링, 음향/영상 합성, 콤포지팅 등으로 확대, 발전되고 있다. 과거에 2D 하청을 비하하던 세대가 지금은 3D 하청을 하는 입장으로 전락한 것은 매우 아이러니한 점이다.
하청은 원청회사인 미국이나 일본이 한국에 직접 일을 주는 하청, 미국이 일본에 하청을 주고 이를 일본이 다시 한국에 맡기는 재하청, 또는 한국 회사가 처음 하청을 받아또 다른 한국 회사에 재하청을 주고 다시 다른 한국 제작사에 재재하청을 하는 형태로 진행되기도 했다. 또한 직접 하청을 연결할 수 없는 경우를 교묘히 이용해 여러 회사를 거치면서 중간에서 고수익의 중계 경비나 진행 경비를 꿀꺽 챙기는 일들도 있었다. 또한 작품 수주를 받는 과정에서 여러 업체 간에 과당 경쟁(의도적으로 단가를 낮춤으로써 반드시 작품을 입찰 수주하려는 저급한 꼼수)으로 최종 단가를 떨어뜨리는 폐해들도 있었다.
한편 여기서 우리 모두가 하청 작업과 관련하여 매우 유의 해야 할 점은, “ 한국은 세계 최고의 첨단 기술을 가졌다” , “한국 애니메이션 제작 기술은 세계적으로 우수하다” 라는 원청 회사들의 칭찬은 고마워하되 멀리해야 한다는 점이 다. 해외 제작사들은 콧노래를 부르며 지적 기획 창작인 고급 두뇌 인력 운영에 주력하면서, 육체적으로 힘들고 고된 노동인 제작 부문은 하청을 준다. 그러면서 입에 침이 마르 도록 “참 잘한다, 최고다” , “ 세계적이다” 하며 갖은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그러나 이는 ‘지적인 창작’ 결과물에 대한 것이 아니라 노동에 가까운 ‘육체적 기술’ 작업을 대신해준 데 대한 고마움의 표시일 뿐이다. 우리는 우리만의 창작 세계를 넓혀 가야만 문화 예술적인 힘이 생긴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남국
·전 홍익대 조형대학디자인영상학부 애니메이션 전공교수
·전 월트 디즈니 & 워너 브라더스 스튜디오 감독 및 애니메이터
·국립공주대학교 영상예술대학원 게임멀티미디어학과 공학석사
·CANADA SENECA COLLEGE OF APPLIED ARTS & TECHNOLOG
출처 : 월간 <아이러브캐릭터> 2020.10월호
출처 : <아이러브캐릭터 편집부> (master@ilovecharac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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