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표현 제한 없는 나만의 언어”_독립영화관_강민지 감독

/ 기사승인 : 2020-10-23 14:12:30
  • -
  • +
  • 인쇄
Interview


강민지 감독은 지난 10여 년의 활동 기간 동안 10여 편의 작품을 끊임없이 작업해올 수 있었던 것은 “애니메이 션을 업으로 삼고, 쉼 없이 손을 움직인 덕분” 이라고 말한다. 우리 곁에 존재하는 모든 물건을 위한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물건들>, 성형에 대한 질문을 담은 드로잉 애니메이션 , 여행 그 자체가 작품이 된스톱모션 애니메이션 등 그의 작품은 면면마다 다채롭다. 시간과 공간 등 많은 것들의 표현에 제한이 없는 애니메이션이라는 세계를 만나 자신만의 언어를 다듬어온 강민지 감독을 만났다.



본인 소개를 부탁한다. 애니메이션을 만들게 된 계기는?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강민지다. 2006년 데뷔했고 이후 단편 애니메이션 작업을 쭉 하고 있다. 또 스튜디오 프레임바 이프레임을 운영하며 홍보 영상과 뮤직비디오, 광고 등 애니메이션 기법을 활용하는 커머셜 작업을 병행 중이다. 대학에서 애니메이션을 전공으로 택한 것이 애니메이션을 만들게 된 계기였다. 원래는 조각을 전공하고 싶었지만 입시에 실패하고 차선책으로 택한 것이었는데, 수업 중 캐나다와 유럽의 애니메이션을 접하고 반해버렸다. 그리고 졸업 작품을 만들기 위해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전 과정을 경험하면서 푹 빠졌다. 애니메이션은 재료나 시간, 공간 등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점이 좋다.


가장 최근작인 <물건들>을 소개해달라

제목 그대로 우리가 소유하는 물건들에 관한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다. 지금은내 물건이지만, 물체가 되기 전에 이 물건은 어떤 공간에서 어떤 시간을 영유하는 어떤 존재였을까 하는 호기심이 구상의 계기였다. 예를 들어 소가죽 지갑은 지갑이 되기 전에는 살아 있는 소였을 것이고, 가족과 함께 농장에서 살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물건들>에는 순환에 관한 이야기, 또 환경에 관한 이야기 등 다양한 것이 담겨 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어쩔 수 없는 소비를 계속 반복한다. 환경 이슈가 등장하며 소비에 죄책감을 느끼게 되기도 한다. 많은 것을 소비하고 소유하고 있지만 늘 새로운 것을 가지고 싶어 하고, 그러면서도 부족함과 고독을 느끼는 지금 세상의 촘촘히 짜여진 구조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물건이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는 장면이 다양하게 표현된 것이 인상적이다

다양한 물건들이 존재하는 만큼, 다양한 소재와 표현을 통해 보다 많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설치작업을 하는 남편 덕분에 작업실에 공구가 많은 편이라 작업이 더 풍요로워졌다. 그라인더를 써서 갈기도 하고, 열풍기를 써서 강하게 말리기도 하고, 잘게 자르거나 태우는 방법도 썼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장면은 노인의 가방 신이었다. 오래된 가방을 두고 물을 계속 뿌려 젖게 만들어서 촬영했는데, 가방이 물을 흡수하며 원래의 형상이 점차 일그러지고 부패하듯 껍질이 벗겨지며 노인의 죽음과 육신의 부패 등이 효과적으로 표현됐다. <물건들> 은 개인적으로 표현하고 싶은 것들을 실컷 표현할 수 있었 기에 더욱 애착이 가는 작품이다.


이전작인 <Before & After>는 어떤 작품인가?

한 여성이 성형수술을 받으며 일어나는 일들을 다룬 드로잉,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다. 주인공은 쉽게 열리지 않는 취업문을 뚫기 위해 성형수술을 선택하는데, 막상 수술이 시작되자 주인공의 얼굴을 마음대로 뜯어고치는 집도의 때문에 자기 뜻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고 갈등이 시작된다. 작품을 기획 하는 동안 수술을 받기 위해 수술대에 올라간 사람의 심리는 어떨까 생각해본 적이 있다. 그들에게 있어 수술을 집도 하는 의사는 거의 신적인 존재가 아닐까? 외모를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건 물론이고 앞으로의 인생마저 바꿀 수 있는 존재이니 말이다.


는 다른 작품들과 달리 내러티브가 강하게 느껴지는 작품이다. 생각의 변화가 있었는지?

그전에는 주로 현상이나 느낌을 애니메이션이라는 포맷 안에서 표현해 왔는데, 그러다 보니 문득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 이런 작업도 의미 있지만, 궁극적으로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질 수있는, 강한 목소리가 담긴 작품을 하는 것이 필요하진 않을 까? 내가 좋아하는 것만 보여주다 스스로 지쳐서 앞으로 작업을 이어가지 못하게 되면 어쩌나?’ 그래서 이야기의 기승전결이 있고 영화적인 구조로 흘러가는 작품을 해봐야겠 다고 마음먹고 만든 것이 였다. 여담이지만 이 작업이 끝난 뒤에 깨달았다. 내러티브가 강한 이야기를 억지로 할 필요는 없구나 하고. (웃음) 그 뒤로는 다시 나만의 방식을 찾아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작품마다 신선하고 파격적인 연출과 시도가 눈에 띄는데

애니메이션이라는 매체는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어릴 적부터 공상하기를 좋아했고, 꿈과 현실이 섞이는 듯한 경험도 종종하곤 했다. 데자뷰라는 것도 개인의 과거와 기억, 앞으로의 예감 같은 것이 섞어들어 몽롱한 상태에서 경험하는 것 아닐까. 그런 것들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고 싶다는 욕구를 많이 느낀다. 또 작업을 할 때 기법적인 재미를 추구하다 보니 보는 사람들이 실험적이라거나 새롭다고 느끼는 것 같다. 나 하나쯤은 이렇게 작업해도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오랫동안 꾸준히 작품을 만들어올 수 있었던 비결이 있다면?

돌이켜보면 애니메이션 작가를 하겠다고 했을 때 응원 하는 사람보다 말리는 사람이 훨씬 더 많았다. “ 돈은 어떻게 벌래?” “조금 하다가 취직한다고 할 걸?” 같은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더욱 나름의 결심을 했는데, 그중 하나가 중단 없이 쉬지 않고 작업해야겠다는 것이었다. 하나의 작품이 끝나고 나면 아무래도 퍼져버릴 수 있으니까. 그래서 작품을 마치고 다음 작품을 구상하는 기간에도 쉬지 않고 그림을 그리고 습작을 이어간다. 이 일을 지속하는 것이 쉽지 않지만 계속하고 싶다.


운영하고 있는 스튜디오의 소개를 부탁한다

스튜디오 프레임바이프레임은 올 2월에 문을 열었다. 계속 커머셜 작업을 개인이 외주로 받는 형태이다 보니 지속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렇게 단편 애니메이션 제작 지원사업에만 의존해 계속 혼자 작업을 이어갈 수 있을까. 나뿐 아니라 다른 동료 감독들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미비하지만 힘을 합쳐 일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작업실 겸 스튜 디오이다. 운영은 내가 담당하고 있고, 프로젝트가 들어오면 업무와 성격이 맞는 감독들이 함께 일을 맡는 형태다. 드로잉과 스톱모션이 전문이고, 최근 수요가 늘어나고 있는 인포그래픽과 모션그래픽 작업도 함께 하고 있다.


국내 독립 애니메이션 시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조금씩 줄어드는 느낌이 든다. 애니메이션 작가로 활동하는 사람의 수가 줄어들고 있고, 입문하는 사람의 수도 줄어드는 느낌. 왜 그럴까 생각해보면 결국 불안하고 고된 길이어 서일 것이다. 나는 미술 하는 친구들에게 애니메이션을 해보지 않겠느냐고 권하는 편이다. 애니메이션은 미술, 문학, 영화, 음악 등이 한데 섞여 있는 장르인 만큼 표현할 수 있는 것이 무궁무진하고, 관객에게 작품을 보여줄 수 있는 창구 또한 다양하다. 그런 매력을 사람들이 많이 알게 됐으면 좋겠다.


앞으로의 계획은?

차기작을 만들고 있다. 누드를 보여주는 작업이다. 누드라는 단어는 인간에게만 쓰이는 단어라는 점에서 착안한 추상 드로잉 애니메이션이다. 그리고 앞으 로는 질문을 던지는 작품뿐만 아니라 세상에 작은 변화를줄 수 있는 작업을 하고 싶다. 오래전부터 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그러기 위해 필요한 용기가 부족했 다. 아직도 큰 용기는 없지만, 그 대신 나만의 애니메이션 이라는 언어가 있다고 생각한다. 영상은 무형이라 실체는 없지만 힘이 있는 매체라고 생각한다. 나만의 방식, 나만의 언어로 계속 해나가고 싶다.

 



강민지 감독

·<물건들> 2020

·<평양냉면> 2019

· 2016

· 2012

· 2011

· 2011

· 2010

·<내 하루에 대한 기록> 2008

·<종이 한 장> 2008

· 2006

·<뾰루지> 2006




출처 : 월간 <아이러브캐릭터> 2020.10월호
<아이러브캐릭터 편집부> (master@ilovecharacter.com)


아러캐 사각로고

[저작권자ⓒ 아이러브캐릭터.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뉴스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