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만드는 타투이스트의 이야기 <호모 에렉타투스>_독립영화관 _ 김태우 감독

/ 기사승인 : 2020-09-21 16: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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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호모 에렉타투스>


김태우 감독은 애니메이터이자 타투이스트다. 점을 이어 선을 만들고, 선을 이어 만드는 타투로 다른 이의 삶을 피부에 새기던 그는 그럼에도 자신만의 이야기를 담아낼 도구를 찾다가 마침내 애니메이션을 만났다. 올해 자그레브 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를 비롯해 많은 영화제에 초청된 <호모 에렉타투스>는 절망 속에서 타투라는 희망을 발견하고 다시 일어난 자신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독자들에게 본인 소개를 부탁한다. 애니메이션을 만들게된 계기는?

김태우라고 한다. 애니메이터 겸 타투이스트로 최근에는 애니메이션 작업에 좀 더 몰두하고 있다. 어렸을때부터 그림으로 표현하기를 좋아했고 한예종 디자인과를 졸업한 이후에는 편집디자인, 음반 자켓 디자인이나 점묘화 여행화첩 아트북을 만드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해왔다. 특히 타투는 한 사람의 이야기를 디자인으로 응축시키고, 이를 새기는 동안 그 사람의 시간 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매력 있는 예술세계다. 그러나 이런 일들을 하면서도 스토리텔링에 대한 갈증이 해소되지 않았다. 좀 더 많은 사람들과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소통할 수 있는 영상 콘텐츠를 제작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그래서 3년 전 애니메이션을 전공하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했고, 지금은 즐겁게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있다.


작품 <호모 에렉타투스>를 소개해달라

호모 에렉타투스는 첫 애니메이션으로, 타투를 시작하게 된 계기를 담았다. 군대에서 전신화상을 입고 생사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와 타투를 시작했던 나 자신의 이야기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것이다. 제목인 호모 에렉타투스는 ‘직립한 사람’ 이라는 뜻의 호모에렉투스와 타투라는 단어를 합친 것이다. 타이틀이 나올 때 타이틀 가운데에 그려 넣은, 마치 바늘을 쥔사람 같은 손이 이 작품을 잘 상징하고 있다. 이 이야기는 타투를 통해 다시 일어선 한 사람의 이야기다.


아트워크가 돋보이는 작품인데 제작방식과 제작과정이 궁금하다

타투는 점이 모여 선이 되고 그것이 형태가 되는 것이다. 프레임 위에서도 이러한 방식으로 표현하면 어떨까 하다가 입자의 밀도로 형상을 표현해 몽환적 분위기를 내게 됐다. 다만 물리적으로 점을 찍어서 완성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기 때문에 디지털 브러시로 동일한 효과를 내는 방식으로 작업했다. 프로크리에이트라는 앱의 점묘 브러시를 주로 활용했다. 또 화려한 카메라 움직임이 적용된 몇몇 장면에서는 3D 기술로 그려놓은 캐릭터 소스와 합성해 하나의 샷으로 완성하기도 했다.


경계가 뭉그러진 흑백의 형체들, 죽음의 상징 등 영상에 강렬한 고통이 묻어난다. 고통을 집중적으로 표현한 이유는? 

화상 치료 과정의 고통과 길고 외로웠던 여정을 섬세하게 표현해야만 죽음까지 떠올렸던 내 감정을 관객들이 이해할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긴 터널의 끝에서 실낱같은 희망을 발견하고, 일상으로 돌아가 타투이스트로 하루하루 행복한 일상을 사는 희망의 순간은 마지막에 배치해 극적인 대비를 효과적으로 보여줬다. 고통의 순간이 강렬했기 때문에 그 후의 일상이 보는 이들에게 더욱 아름답게 느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시련을 극복하고 행복한 삶으로 돌아간 사연은 사람들에게 큰공감과 울림을 주기 때문이다.


작품 속에서 주인공은 절망을 상징하는 존재인 저승사자에 게 “넌 네가 왔던 곳으로 돌아가!” 라고 외친다. 그가 ‘왔던 곳’ 은 어디였을까?

영상 속 저승사자는 나 자신이 만들어낸 트라우마, 나를 스스로 가뒀던 감옥을 표현한 것이었다. 

그리고 ‘네가 왔던 곳’ 은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아가게 하고, 화상을 입은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다시 시작하자고 다짐했던 지점을 뜻한다. 다만 “사라져!” 라고 하지 않고 “돌아가!” 라고 한 이유는 그마저도 내 자신의 일부이며 받아들여야 하는 존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화상이 의도하지 않은 고통의 흔적이라면 타투는 의도된 고통을 통해 만들어내는 것이다. 화상의 흔적이 타투로 새로워지는 것은 단점을 포함해 나를 인정하고 새로운 모습으로 재탄생시키는 일이다. 그를 돌려보내고, 다시 타투를 만나는 것은 내 자신을 새롭게 인정한 희망의 전환점이었다.


자전적 내용을 담은 만큼 연출자의 생각이 깊게 반영된 작품인데, 관객들이 어떻게 감상하기를 바라는지?

앞에서도 말했듯 단점을 장점으로 승화시켜 새로운 원동력으로 만드는 것은 결국 본인 스스로가 결정하는 것이다. <호모 에렉타투스>는 화상의 트라우마를 피부 위의 예술인 타투로 극복함으로써 고통의 나날에서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올수 있었던 한 사람에 대한 진정성 있는 이야기를 담고자 했다. 누구나 살면서 힘든 순간들이 찾아올 것이다. 그때 나의 이야기를 통해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 사실 고통을 겪는 과정을 그리는 동안 과거가 생생히 떠올라서 힘들고 괴로웠다. 그러나 완성하고 나니큰 위로가 됐다. 내게는 큰 선물과도 같은 작품이다. 작품을 봐주는 관객들도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호모 에렉타투스>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일은 감독님께 어떤 의미인지?

이야기를 구성하고 영상으로 만드는 일은 참으로 재미있다. 그런 점에서 애니메이션, 영화 모두 다 좋아하지만 특히 애니메이션은 영상을 프레임 단위까지 컨트롤하고, 아주 작은 점까지도 자유롭게 표현이 가능하다. 작품 안에서 무엇이든 원하는 대로 자연스럽게 연출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매력이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까지도 전할 수 있다는게 신기하기도 하고. 그리고 내 작품이 관심과 사랑을 받으면 무척 감사하다. 결국 함께 보고 이야기하는 그 순간을 위해 달리는 것 같다. 애니메이션을 만들면 완성작을 보는첫 관객은 바로 나다. 반복해서 보곤 하는데, 그 시간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작품과 언제든 마주할 수 있다는 게 참좋다.


국내 독립 애니메이션 시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OTT 플랫폼이 활성화되고, 좋은 독립 애니메이션 작품들이 왓챠 등을 통해 배급되며 대중과의 접점이 늘어나고 있는 듯하다. 예전에는 영화제를 통해 상영하는 것 말고는 관객을 만날 기회도 없었다. 특히 단편은 개봉할 수도 없고 실질적인 수익으로 이어질 수도 없었는데, 이제는 오히려 짧은 콘텐츠들이 더 활약하는 시대가 온 것 같다. 또 코로나19 사태가 온라인을 더욱 활성화하기도 했다. 이러한 점은 독립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사람들에게는 득이 되는 것같다. 또 한콘진이나 영진위에서도 숏폼을 위한 지원들을 새롭게 마련하고 있는데, 앞으로 더욱 활성화되면 좋겠다. 

애니메이션 총량제 또한 산업의 중요한 보호장치인 만큼 지속적으로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향후 작품 계획은?

한국적인 흥을 힙합으로 풀어낸 뮤지컬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고 있다. 작품 제목은 <하회,허!>, 하회탈 탄생설화인 허 도령 이야기를 각색한 작품으로 한콘진 제작 지원사업으로 선정됐다. 이야기의 확장성이 충분해 보여서 단편 완성 후에 경쟁력이 확인이 되면 장편으로 만들고 싶다. 애니메이션을 조금 늦게 시작한 만큼 앞으로는 보다 분발할 생각이다. 1년에 한 편 이상은 제작하고 싶다. 내 작품을 누군가가 감상하게 되면 그 시간만큼은 그의 삶과 함께할 수 있다는 점이 정말 좋다. 생각해보면 나는 줄곧 내 이야기를 하고 싶어 했고, 그러기 위해 나와 맞는 도구를 찾아 헤맸던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애니메이션은 나와 잘 맞는다. 내가 만든 작품이 영상매체를 통해 공간적, 시간적 제약을 벗어나 다른 이들과 연결될 수 있다는 점이이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에너지를 만들어주는 것 같다. 앞으로도 계속 애니메이션을 만들 것이다.

 

 

김태우 감독 

·<호모 에렉타투스> 2019




출처 : 월간 <아이러브캐릭터> 2020.9월호
<아이러브캐릭터 편집부> (master@ilovecharac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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