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1년 7월 23일 세기상사가 일곱 번째로 제작한 번개아텀이 서울 세기극장과 세종로 시민회관에서 개봉됐다. 코뿔소 로보트, 거인 로보트, 우주선, 우주 로케트, 공룡 코끼리, 문어 로케트, 파란 헬멧과 빨간 망또의 번개아텀 등이 함께 넓은 우주 공간에서 갖가지 사건을 해결하는 내용이다.
총지휘에 국쾌남, 기획 및 감독에 용유수, 제작에 우기동, 각본에 이준영, 구성에 박천, 원화에 임정규, 검사에 박효석·이정자, 촬영에 조민철, 촬영보에 조복동, 편집에 장현수, 녹음에 한양스튜디오, 현상에 한국천연색현상소, 음악에 전정근이 참여했다. 1971년 7월 17일자 경향신문은 미국 유니버설 영화사가 번개아텀을 텔레비전과 극장 상영 조건으로 10만 달러에 수입한다는 기사를 보도했다. 1971년 8월 30일자 동아일보는 제6회 테헤란 영화제에 세기상사의 번개아톰이 출품된다는 소식을 보도했다.
1971년 9월 30일에는 동화 산업 종사자들이 단합해 만화영화 업계의 발전과 권익옹호를 위해 남산 어린이 회관에서 한국동화인협의회를 창설하고, 대한극장 인근인 중구 충무로4 가 126번지에 본부를 차렸다.
당시 고문단에는 신동헌, 조풍연, 김진영, 이성철, 양종해, 장병림. 회장단은 용유수, 박영일, 송관. 명예 회원은 정도빈, 신능파, 한성학, 박덕윤, 문학수, 이신복, 유달훈, 최효섭. 운영위원은 김청기, 이동현, 박효식, 유범웅, 조항리, 박부남, 윤충국, 임정규, 배영랑, 신윤철. 그리고 동화, 배경, 선화, 채화, 연출, 촬영에 각각 분과를 두고 운영했다.
당시에는 원화와 동화의 구분 없이 동화라는 명칭을 사용했음을 참고하기 바란다.
1971년 10월 1일 마침내 월트 디즈니 월드가 개장한다.
규모는 캘리포니아의 디즈니랜드보다 더 크고 방대했다.
디즈니 매직 킹덤(1971)을 최초 개장한 것을 시작으로 이후 월트 디즈니 랜드는 디즈니 앱콧(1982), 디즈니 타이푼 라군(1989), 디즈니 블리자드 비치(1995), 디즈니 할리우드 스튜디오(1998-이전 디즈니 MGM스튜디오), 디즈니 애니멀 킹덤(1998) 등 다양한 테마를 주제로 확장해가게 된다. 이는 서울시 면적의 6분의 1 크기로 안양, 증평, 과천, 구리, 부천, 목포보다 크며, 모나코의 3배, 바티칸의 13배 크기다. 평범한 유원지가 아니라 특별한 테마파크라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1971년 12월에는 1960년대에 활명수, 훼스탈, F킬러 모기향, 금성사 등 수많은 CF를 제작해온 정병권 감독이 김종기 사장과 함께 유니버셜 아트프로덕션을 설립했다. 유니버셜 아트프로덕션은 일본의 독수리 5형제, 미국의 헐크 호간, 프랑스의 인간의 태두 등 해외로부터 수주한 300여 편의 작품을 하청받아 제작했다.
1972년 1월 1일 월트 디즈니의 마술의 검(1963년)이 시민회관에서 개봉한다. 디즈니 스튜디오의 18번째 장편 애니메이션 마술의 검은 영국 아서왕의 전설을 모티브로 한 T.H 화이트의 소설을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한국에서는 아더왕의 검 혹은 아더왕 이야기, 마술의 검으로 알려졌다.
또한 같은 시기에 미국 유타 대학교에서 애드윈 켓멀은 세계 최초로 컴퓨터로 생성한 영상 방식(3-Dimension)을 스크립팅 언어를 사용해 개발했다. 이후 애드윈 켓멀은 스티브 잡스, 존 라세터와 함께 픽사의 설립자 중 한 명이 됐다.
애플의 전 CEO이자 공동 창립자였던 스티브 잡스는 애니메이션 인크레더블과 토이 스토리 등을 제작한 컴퓨터 애니메이션 제작사인 픽사의 소유주이자 CEO였다. 디즈니는 2005년 74억 달러분의 주식으로 이 회사를 사들였다. 2006년 6월 거래가 완료됐고 잡스는 이 거래를 통해 디즈니 지분의 7%를 소유한 최대의 개인 주주이자 이사가 됐다.
에드윈 켓멀이 컴퓨터로 제작한 단편영화 컴퓨터 애니메이 티드 핸드는 1972년에 대학원 프로젝트로 제작된 것으로 3D 컴퓨터그래픽의 첫 번째 사례가 됐다. 최초로 와이어프레임 모델을 사용했으며 석고로 뜬 손 모형에 삼각형 폴리곤을 하나씩 그려 넣은 뒤 이를 토대로 3D 그래픽을 구현 했다. 이후 그는 와이어 프레임 표면에 평면 이미지를 입히는 텍스쳐 매핑 개념도 정립했다. 또한 렌더링과 애니메이션은 켓멀이 직접 작성한 프로그램으로 이루어졌다.
컴퓨터 애니메이티드 핸드는 컴퓨터 그래픽의 역사에서 매우 획기적인 사건으로 간주됐다. 픽사와 월트 디즈니의 사장이었던 켓멀이 컴퓨터그래픽의 기본 원칙이 될 개념을 이룩한 것이다.
1972년 2월 2일 서울 남산 어린이회관 앞 광장에서 ‘불량 만화는 사회악의 근본이다’라는 플래카드 아래 불량 만화 화형식이 열렸다.
2월 12일에는 국립영화제작소가 대한뉴스 제866호를 통해 불량 만화를 추방하자는 내용의 홍보용 만화영화를 발표했다. ‘ 나쁜 만화를 읽지 말자’는 학생들의 캠페인과 함께 불량으로 매도된 만화책들을 공개 화형하는 내용이다.
1972년 11월 27일자 매일경제는 이낙선 상공부 장관이 만화영화 용역수출을 위해 소모성 자재에 대한 관세 면제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이 문제는 실제로 집행돼 35mm 촬영기, 편집기, 애니메이션 스탠드, 필름, 셀, 작화지, 펀치기, 연필, 전동 연필깎이, 애니메이션 디스크, 페그 바 등 해외 용역 만화영화 제작자들에게 필요했던 여러 관련 기자재를 수입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1972년 10월경에는 상공부가 1973년 수출목표 100억 달러 달성을 위해 1973년부터 만화영화 보세가공 부분에도 막대한 국고 보조금의 지원을 약속했다. 그 조항의 첫째는 국내 제작 만화영화의 해외 알선은 물론이고, 외국과의 보세가공 계약이 성사됐을 때 그 계약 액수의 80%를 융자해 준다는 것이었다. 둘째는 그 보세가공에 사용될 카메라 및기재 일체는 세금을 매기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당시 상공 부가 만화영화 보세 분야에 신경 쓰던 까닭은 보세 가공 분야야말로 국내 자본을 들이지 않고도 외화를 벌어들일 수있는 황금 시장이었기 때문이다.
이남국
·전 홍익대 조형대학디자인영상학부 애니메이션 전공교수
·전 월트 디즈니 & 워너 브라더스 스튜디오 감독 및 애니메이터
·국립공주대학교 영상예술대학원 게임멀티미디어학과 공학석사
·CANADA SENECA COLLEGE OF APPLIED ARTS & TECHNOLOGY
출처 : 월간 <아이러브캐릭터> 2020.1월호
<아이러브캐릭터 편집부> (master@ilovecharacter.com)
[저작권자ⓒ 아이러브캐릭터.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