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호에서는 할리우드에서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흔히 기획 개발이라 부르는 애니메이션 초기 개발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우리 회사도 자체 제작하는 장편과 시리즈는 물론, 다양한 나라의 창작·제작·원작자로부터 작품 초기 개발 컨설팅 의뢰가 들어온 경우 이와 동일한 개발 과정을 최대한 적용 하고 있다. 또 장편 애니메이션뿐 아니라 극영화와 시리즈 작품에도 공통적으로 활용되는 부분이 많이 있어 실용적인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기획 개발의 범위: 콘셉트 디자인과 트리트먼트
애니메이션은 비주얼 스토리텔링이 중요한 만큼, 디자인과 기본 스토리(대본 이전 과정, 소위 줄거리 또는 트리트먼트(Treatment))가 초기 개발 단계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겠다.
디자인 개발 과정을 살펴보면, 주요 캐릭터(메인과 서브) 에 대한 초기 단계의 콘셉트를 흑백으로 스케치하는 수준 에서 시작해 내부·외부 반응 조사를 통해 선호하는 콘셉트 디자인으로 좁혀나간다. 캐릭터 외에 영화의 주요 배경, 세계관(Location)에 대한 기본 디자인 스케치도 포함돼야 하는데, 통상적으로 할리우드에서는 캐릭터와 배경 디자이 너를 따로 채용하며 액션, 판타지 등 장르별로 전문 아티스트를 모집한다. 물론 상황과 역량에 따라 캐릭터와 배경을한 사람이 커버하는 경우도 당연히 있을 수 있다. 극장용의 경우는 아무래도 시리즈보다 난도와 깊이가 있다 보니 분리 채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음 단계로, 좁혀진 캐릭터와 배경을 풀컬러링하고 스토리의 주요 장면(통상 10~20장면 정도 줄거리의 Key Moments)을 투자자와 배급사 등에게 비주얼만으로 큰 스토리를 이해시키고 감동시킬 수 있는 수준으로 제작한다.
이런 개발 디자인이 이후에 이야기할 피치 덱(Pitch Deck)에 핵심 내용으로 들어가야 함은 물론이다. 다음은 디자인 개발보다 더 중요한 과정인 스토리 개발 과정을 살펴보자. 작품의 기본 콘셉트는 달랑 한 장짜리 아이디어 수준의 창작물인 경우도 있고, 대본이 있지만 다시 개발할 필요가 있는 경우, 또는 이미 소설 원작이 있는 경우 등 다양할 것이다. 이 콘셉트를 바탕으로 도대체 무얼 이야기하 고자 하는 것인지, 이야기가 일어나는 장소와 시대는 어떤 지, 어떤 등장인물인지, 타깃이 구체적으로 어떤 층인지, 또시리즈인 경우에는 기승전결(arc)이나 3막이 있는 스토리인지, 주인공(protagonist)이 맞닥뜨리는 위험과 악당 (antagonist)은 누구인지 등에 대한 기본 탐색과 심층 논의가 몇 차례 이루어진다. 콘셉트 디자인과 기본 스토리 트리 트먼트에 추가로 주요 등장인물에 대한 내적·외적 갈등과 극복에 대한 요소가 더해져야 수준 있는 트리트먼트에 한발 가까워진다고 할 수 있겠다. 시리즈인 경우 당연히 파일럿에 대한 줄거리 또는 트리트먼트가 있어야 할 것이다.
장편의 경우 스토리텔링에 가장 핵심적인 개발 요소는 외적인 사건과 갈등 줄거리(A story 또는 Plot)는 기본이고 거기에 주인공의 내적 갈등이나 결점 등을 도전, 극복하는 과정(B story)과 주인공과 주변 인물과의 관계를 설정, 해소하는 과정(C story)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소위 말해 주인공이 성장하고 변화해가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보여주고 관객과 감정이입을 통한 공감대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핵심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장편이니만큼 악당을 더욱 사악한 존재로 만드는 과정도 중요한 요소다.


개발팀 구성, 개발 과정과 결과물(Pitch Deck)
이러한 디자인 개발과 스토리 개발에는 앞에서 언급한 디자이너(각각의 캐릭터 및 배경 전문)와 작가(또는 스토리 개발 전문), 그리고 스토리와 비주얼을 총괄하는 감독(개발 단계)이 전체를 지휘, 리드하는 프로듀서 그룹과 한 팀을 이룬다. 스토리와 디자인 개발 아이디에이션 시작 이전에 명확한 타깃 연령과 그룹에 대한 조사, 유사 경쟁 또는 참고 작품(Comparables)에 대한 조사가 선행돼야 함은 기본 중의 기본으로서 이는 프로듀서 그룹에서 주도하게 된다.
초기 개발에 필요한 디자이너, 작가, 감독을 구하는 방법은 딱히 정해진 바는 없지만 주변에서 추천을 받거나 자체 인력 데이터풀 활용 또는 좀 더 광범위한 조사가 필요한 경우는 Talent Agency 또는 Literary Agency를 통한다. 이를 통해 찾아낸 인재가 함께 일한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호흡을 맞춰나가는 시간도 줄어들 것이다. 아티스트나 작가조합(Union) 소속인 경우 계약에 약간 애로사항이 있기 때문에 인디 입장에서는 독립 프리랜서를 선호하는 편이다.
하지만 독립 프리랜서 역시 전담 에이전트와 변호사를 통해 때론 쉽지 않은 협상 과정을 거쳐 계약을 체결하고, 체결과 동시에 용역 대금의 상당 부분이 바로 지급돼야 일을 시작한다.
이번에는 개발 과정과 기간을 살펴보자. 첫 킥오프 미팅은 전체 팀원이 참가해 기존 자료 및 시장 조사를 공유하고 프로젝트에 대한 심층 이해를 높이기 위해 마련된다. 향후 진행 방식과 일정도 논의하지만 중요한 것은 작품의 비전, 원작자의 의도, 등장인물에 대한 정의, 세계관에 대한 공감대 형성이다. 아시아와 일을 많이 하는 자사의 경우는 다수의 팀이 한 장소에 모이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정기적으로 화상 회의를 통해 일하는 경우가 많고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 통역을 활용하기도 한다. 1~2주가 지난 뒤 두 번째 미팅이 열리는데 이때는 전체 스토리를 큰 줄거리(Beat Outline)로 나누는 작업을 시작 한다. 이른바 전체적인 스토리를 크게 3막(1막, 2막은 사실상 정중앙-mid point-기준으로 2개로 분류, 3막)으로 쪼개는 큰 과정이다.
가장 보편적인 줄거리 쪼개는 기법은 할리우드 대본 집필의 교본이라고 불리는 도서 (저자: Blake Snyder)에 나오는 Beat Outline 기법으로, 3막을 대략 15개의 큰 줄거리로 쪼갠 것이다. 이 과정이 올바른 스토리 방향이 정해지는 핵심 과정이므로 경우에 따라 해산 후 각자 연구 시간을 가지며 몇 차례 계속하는 경우가 많다.
Beat Outline을 작성하는 작가는 감독, 프로듀서, 디자이너와 항시 대화하며 전 팀원이 공감대 형성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상호간 매우 능동적인 교류와 협의가 필수라 하겠다.
다시 1, 2주 후 전체가 모여 초고로 정리된 Beat Outline 과 디자인 콘셉트를 올려놓고 심층 논의 과정을 거쳐 최종 Beat Sheet를 작성하는 것이 대본 작업 들어가기 전의 마지막 단계다. 이 Beat Outline과 아트워크를 최종 마무리 하면 외부에 공개 제안이 가능한 피치 덱이 나오는 것이다.
피치 덱에는 작품에 대한 콘셉트(줄거리, 디자인 요소)는 물론 개발팀에 대한 이력 소개, 작품 비전, 예상 제작비 등에 대한 정보도 들어가는 경우가 있다. 이 밖에 상황에 따라 주요 장면에 대한 추가 스토리보드를 삽입할 때도 있다.
배급 판매사와 투자자를 대상으로 하는 만큼 내용은 기본 적이다. 하지만 큰 내용을 담고 있는 그릇인 피치 덱을 인상적으로 제작하는 것에도 많은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안홍주(프로듀서)
·미국 Astro-Nomical Entertainment 공동대표/프로듀서
·캐나다 툰박스 공동대표 역임
·한국 레드로버 고문 역임
·KT 콘텐츠 전략/IPTV 콘텐츠 수급 담당 전문 임원 역임
·홍익대/한양대 겸임교수 역임
·Walt Disney Korea
출처 : 월간 <아이러브캐릭터> 2020.3월호
<아이러브캐릭터 편집부> (master@ilovecharac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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