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다뤘던 애니메이션 창작과 제작 흐름의 큰 변화에 이어, 이번에는 여전히 시장을 주도하고 커다란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 미국의 OTT 회사(SVOD 서비스를 제공하 는)의 관점에서 애니메이션 시장의 흐름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이는 이미 변화의 흐름을 주도하거나 따라가고 있는 해외 제작사는 물론 세계 애니메이션 시장의 큰 축을 이루고 있는 아시아와 한국의 창작, 제작사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
지난 몇 년간 대형 OTT 업체들 덕분에 (물론 넷플릭스가 가장 큰 기여를 했지만) 유명 브랜드, 콘셉트, 감독 중심으로 대형 예산을 들여(예를 들면 30분짜리 한 편 제작비가 100~200만 달러는 보통인) 만든 애니메이션이 많이 선보였다. 소비자들은 이제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다양한 콘텐츠를 골라서 보는 습관이 몸에 배고, 스튜디오(메이저) 와 VOD 제공사들은 급변하는 고객들의 요구에 맞추느라 새로운 콘텐츠 개발과 그에 따른 투자에 열을 올리게 된 것이다.
당연히 그러한 현상은 스토리텔러와 동시에 관객의 대환영을 받았다. 하지만 투자하는 입장에서는 과연 그러한 비즈니스 모델이 중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것인지 좀 더 두고 봐야 할 것이다. 전통적인 방식의 기존 TV와 극장 사업 모델을 제치고 현재 시장을 주도하는 듯한 OTT 방식의 모델이 미래의 애니메이션 업계에 어떤 파급효과를 가져다줄 것인가?
메이저 스튜디오와 대형 OTT 업체의 입장은 분명해 보인 다. OTT 방식이 전통적인 일방향 TV와는 다른 지향점을 보이는 것은 분명하나 근본적인 과제는 여전히 동일하다는 것이다. 즉 경력 유무를 떠나 뛰어난 인재를 통해 아이디어를 발굴하고, 그들이 창의적이고 도전적으로 자기들의 비전을 실현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원론적이고 그럴듯한 입장 말이다. 하지만 몇 년간 대형 예산을 지닌 이들이 신작의 제작에 투자를 결정하는 것을 지켜보면 대부분은 첫째 유명 감독, 둘째 기존 인지도 높은 브랜드-소위 프랜차이즈, 셋째 베스트셀러, 넷째 후속 시즌이나 리부트 기반의 작품인 것이 사실이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대형 투자 대비 리스크를 최소화하고자 하고 있으며, 한편으론 이미 자리 잡은 메이저 방송사와의 경쟁에 대응하려는 의도가 분명해 보인다.
우리 회사도 작년부터 모 OTT사와 5, 6개의 오리지널 작품에 대한 제작 투자 협의를 계속하고 있으나 그중에 유명 베스트셀러 기반의 오리지널 시리즈 한 편이 계약 추진됐고, 나머지 제안 협의 중인 작품의 반 이상이 알려진 스토리 또는 후속 시즌이다. 순수 오리지널 콘셉트 작품의 경우에는 중대형 감독이나 작가 등을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다.
물론 워낙 다양하고 많은 콘텐츠가 가능한 만큼 애니메이션 창작 개발자들도 전통적인 TV 기반의 접근 방법에서 벗어나 좀 더 실험적이고 자유로운 도전(지난 2월호에 간략 언급된 바 있는)이 가능해졌다. 즉 창작자들은 시간과 장소, 길이의 제한(극장이나 기존의 정형화된 TV)에서 벗어나는 작품 개발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올해 본격 서비스를 시작하는 퀴비(Quibi, 전 드림웍스 창업자인 제프리 카젠버그 설립)의 모바일 단편 서비스 플랫폼으로 인해 그러한 흐름이 더욱 탄력을 받을 듯하다.

최근 디즈니와 소니를 거쳐 넷플릭스의 성인 애니메이션 책임자가 된 마이크 문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전에 본 적 없는 전혀 새로운 콘셉트와 포맷의 애니메이션을 보게 될 것이며, 그것은 애니메이터들에게 다양한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우리는 창작자들이 최선을 다하도록 최대한의 지원과 환경을 제공하려고 하며, 그것은 가능한 아트 형식에 제한을 두지 않으려는 시도가 될 것이다.”
디즈니 같은 후발주자는 진입 초기인 만큼 당분간 자체 유명 작품인 스타워즈, 겨울왕국, 마블 같은 초대형 브랜드를 중심으로 경쟁에 대응하는 한편, 새로운 작품을 위해 보유한 엄청난 라이브러리 중에서 기존 형식에서 벗어난 후속 작품과 전혀 새로운 콘셉트의 작품을 개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디즈니만큼 애니메이션을 통한 스토리텔링에 강한 곳이 없어 다가오는 경쟁과 시장 흐름에 맞는 혁신적인 콘텐츠가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 다만 오리지널 콘셉트를 추구하고자 하는 외부 창작자들에게는 디즈니처럼 자체 소유 IP가 많은 경우 큰 기회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디즈니와 경쟁이 안 되는 다른 메이저 스튜디오는 해외시장에 많은 눈을 돌리고 있으니 그걸 눈여겨보는 것이 더 현실적일 수 있겠다. 예를 들면 HBO Max가 얼마 전에 일본 지브리 스튜디오의 라이브러리 작품에 대한 미국 상영 권리를 확보했는데, 이는 지금까지 디지털로는 작품을 선보인 적이 없는 지브리의 입장에서는 파격적인 딜이라 할 수 있다.
한편 넷플릭스의 장점은 거의 모든 작품이 다양한 언어로 동시에 전 세계 상영이 가능하다는 점이며, 북미 시장이 포화상태인 만큼 앞으로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한 해외시장에 서는 언어 장벽이 없는 애니메이션이야말로 최적의 공략 대상일 것이다. 해외 소싱 작품의 예를 들면, 지난해 말 엄청난 반응 속에 공개된 애니메이션 클라우스와 I lost my body는 각각 스페인과 프랑스에서 제작됐다. 또 최근 확보한 A Shaun the Ship은 프랑스, Farmageddon은 영국, Mighty Little Bheem은 인도였다. 조만간 아시아, 한국, 중국 소재의 작품을 선보일 날이 있을 것으로 기대하며 우리 회사도 아시아의 여러 제작자와 개발 협의 중인 작품이 여럿 있다.

Ghibli movies on Netflix
애니메이션의 전통적 타깃인 온 가족용(통상 12세 이하를둔 가족)에 이은 새로운 세력으로 떠오르고 있는 성인 지향용(15세 이상부터) 분야를 잠시 살펴보자. 이 또한 디즈니와 경쟁이 힘든 다른 OTT사의 주요 전략이라고 할 수있다. HBO Max는 엄청난 입찰 경쟁 끝에 South Park, 넷플릭스는 컬트 장르인 BoJack Horseman의 성공을 바탕으로 후속 성인용 작품군에 엄청난 투자 결정을 한 바 있다. 필 로드와 크리스 토퍼 밀러 감독의 야구 소재 작품은 물론 디즈니 출신의 감독들을 채용해 Willoughby’ s, Over the Moon 등의 작품에 큰 기대를 걸고 준비 중이다.
이 밖에도 올해는 Paradise PD, F Is for Family, Big Mouth 등이 선보이게 될 것이다.
애니메이션 창작자와 제작자들에게는 그간 제대로 개발되지 못했던 성인 지향적인 작품에서나 가능한 이야기와 디자인을 다양하고 새로운 분위기 속에서 도전해볼 수 있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물론 항상 새로이 시작하는 분야에는 항상 예상치 않은 시장과 작품성으로부터의 도전이 기다리고 있지만 말이다.


안홍주(프로듀서)
·미국 Astro-Nomical Entertainment 공동대표/프로듀서
·캐나다 툰박스 공동대표 역임
·한국 레드로버 고문 역임
·KT 콘텐츠 전략/IPTV 콘텐츠 수급 담당 전문 임원 역임
·홍익대/한양대 겸임교수 역임
·Walt Disney Korea
[저작권자ⓒ 아이러브캐릭터.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