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닷없이 애니메이션 방송총량제(이하 총량제)를 폐지 또는 축소하려는 움직임에 업계가 발칵 뒤집혔다. 지상파와 종합편성채널 등 방송사들이 매년 전체 방송시간의 0.3~1% 이상을 국산 신규 애니메이션으로 의무 편성토록 한 제도를 손보겠다고 하자 업계가 즉각 반발에 나선 것이다.
경쟁 제한적 규제로 총량제 지목
관련 업계에 따르면 공정거래위원회는 국산 신규 애니메이션의 방송사 의무 편성 제도를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관한 법률 제3조 및 제63조에 따라 경쟁 제한적 규제개선 추진 과제로 결정하고 방송통신위원회에 의견 제출을 요청했다.
총량제는 2005년부터 국산 창작 애니메이션의 진흥을 목적으로 방송법 시행령 및 편성고시 개정을 통해 시행되고 있는데, 지난 2012년 방송법이 개정되면서 적용대상이 종편채널과 애니메이션 전문 케이블 채널로 확대됐다.
총량제는 방송채널 연간 전체 애니메이션 방송시간의 8~45% 이상 범위에서 국내 제작 애니메이션을 편성하는 내용(국산 애니메이션 의무 편성)과 방송채널 전체 방송시 간의 0.3%~1% 이상을 신규 제작한 국내 애니메이션으로 편성하는 내용(국산 신규 애니메이션 의무 편성)으로 구성돼 있다. 국산 애니메이션의 의무 편성은 1998년부터, 신규 제작 국산 애니메이션의 의무 편성은 2005년부터 시행돼왔다.
공정위가 총량제를 폐지 또는 축소하려는 이유는 VOD나 OTT 등의 발달로 애니메이션에 대한 접근성이 한층 높아졌고, 시청률도 그다지 높지 않아 업계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을뿐더러 자율적인 일반 어린이 프로그램 의무 편성 규제가 더 적절하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간 쌓인 분노에 기름 끼얹은 격
그러자 애니메이션 업계는 즉각 “공정위가 업계 현실을 도외시한 채 총량제를 방송사에 대한 규제로만 인식하고 있다” 며 강력 반발하고 나섰다.
업계는 지상파 3사가 중심이 돼 방송학계와 정부연구기관을 통해 경영 악화와 OTT 이용 증가에 따른 총량제 완화를 연구과제로 진행하고 있다는 소식에 여러 차례 강한 우려를 전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때문에 업계 안팎에서는 공정위의 총량제 폐지 시도가 그간 방송사의 횡포에 속수무책으로 당해왔던 업계의 쌓인 분노에 기름을 끼얹은 격이 됐다는 반응이다.
한국애니메이션발전연합은 성명을 내고 “국산 애니메이션의 지상파 방영은 가장 중요한 유통경로인데 총량제가 폐지 또는 축소되면 애니메이션산업의 존립 기반이 위협받게 된다”며 “방송사들이 경영 상태 악화나 방송 시장 위기로 인한 피해를 왜 애니메이션 업계에 떠넘기려 하느냐” 며 성토했다.
실제 시장규모가 작고 방송사의 어린이 프로그램 비율을 충족시키고자 유아용 위주로 제작되고 있는 국산 애니메이션은 다양한 플랫폼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지상파 노출을 통한 인지도 제고와 방영권료 매출에 어쩔 수 없이 의존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놓여 있다.
특히 순수 제작비의 10%에도 못 미치는 낮은 방영권료(지상파 기준)와 어린이들의 시청이 사실상 불가능한 시간대에 편성되는 등의 가혹한 현실 속에서도 총량제 덕분에 하청 제작 위주의 산업구조가 창작 기획 중심의 산업으로 발전하면서 캐릭터 상품, 완구, 게임 등의 부가사업이 활성화 됐다. 적극적인 방송 편성 유도를 통해 국내 창작이 활기를 띠면서 뽀롱뽀롱 뽀로로, 라바, 로보카폴리 등의 성공 사례가 탄생했다는 것이 업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이에 대해 애니메이션발전연합은 “총량제는 규제가 아니라 문화적 정체성 보호에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사회·문화적으로 중요한 함의를 지닌다”며 “해외에서는 자국산 애니메이션산업 활성화와 제작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다양한 제도적, 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총량제 폐지 또는 축소안은 협의할 사안이 아니며 방통위가 그간 외면해왔던 국산 창작 방송용 애니메이션의 보호와 진흥을 위해 제도적, 재정적 방법을 추가로 제시해야 한다” 고 촉구했다.
한편 한국애니메이션발전연합은 한국애니메이션제작자협회, 부산애니메이션협회, 한국독립애니메이션협회, 한국애니메이션산업협회. 한국만화애니메이션학회, 한국애니메이션학회, 한국애니메이션예술인협회, 애니메이션감독프로듀서조합 등 8개 단체로 구성됐다.
출처 : 월간 <아이러브캐릭터> 202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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