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부터 76년 사이에 다수의 일본 TV 만화영화들이 미국이나 유럽 작품으로 소개됐고, 철완 아톰처럼 한국 작품으로 소개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러한 국적 불명, 국적 세탁으로 인해 미국과 일본에서 제작한 작품들이 주를 이루면서 어린이들은 유머나 영웅이라는 측면에서 외국의 편향된 시각을 갖게 됐다.
따라서 한국적인 작품들은 사라지고 외국 문화가 최고인 것처럼 착각하고 열광하게 됐다. 이는 한국의 문화적, 민족적 정체성의 상실을 낳았다. 외면적으로는 반일, 극일을 주장하면서 내면적으로는 친일을 하는 답답한 현실은 서글픈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일본 만화영화가 모두 폭력적인 것은 아니다. 매우 훌륭한 작품들이 많음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많은 작품들이 무분별한 폭력 성향을 보이고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해외 수입 만화영화와 국내 제작 만화영화의 단가를 비교 해보면 놀라운 차이를 보이고 있다. 물론 방송사 탓만 할수는 없겠으나, 굳이 따져보자면 합리적인 논평이 가능할것이다.
미국이나 일본 등 해외 방송사들이라고 해서 제작비를 쌓아두고 TV 만화영화를 제작했던 것이 아니다. 그들은 방송 본연의 의무와 책임이라는 측면에서 그리고 현 세대와 미래 세대를 위한 문화적, 예술적, 교육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출혈을 감수하고 아동용, 성인용 만화영화를 제작해 왔다.
왜 우리는 이 점을 잘 알면서도 수십 년 동안 실천하지 못했는가? 우리는 자라나는 세대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일은 투자로서 접근해야 하며, 이익을 남기는 것이 우선돼서는안 된다는 점을 철저히 무시해왔던 것이다. 곧 투자는 방송 사들의 의무이자 책임인 것이다.
여기서는 1970년대부터 90년대 사이에 국내 방송사들이 단지 저렴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해외의 TV 만화영화들을 무차별적으로 수입한 과정들을 잠시 살펴보고자 한다.


"수상기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TV의 경우, 어린이 프로는 철저한 흥미 위주의 외국제 만화영화가 판을 치고 있다.
외화 중 만화가 70%를 넘고 있다. 30분짜리 외화에 평균 15만 원을 투입하고 있는데 제작 태도만 갖춘다면 각종 자국 프로 제작이 불가능한 실정은 아니다.”
(1971년 5월 5일자 동아일보)


“30분짜리 영화 1편의 방영 비용은 수입 가격과 수수료를 합쳐 130달러(5만 2,000 원), 더빙(녹음) 비용 2만 7,000 원으로 1편 평균 8만 원대를 마크하고 있다.…(중략)…이들 영화 중…(중략)…어떤 것은 데생조차 조잡해 어린이의 정서에 좋은 거름이 되지 못하고 있는 형편.…(중략)…물론 이 점을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은 각 방송국 실무자들. 이들은 시정해야 할 필요가 절실함을 알면서도 스폰서의 압력과 시청률 때문에 개선에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1971년 9월 17일자 동아일보)


“만화영화 제작에 드는 비용과 인력은 엄청나다. 보통 1시간 반짜리 1편을 만드는 데 드는 제작비는 2시간짜리 일반 영화 제작비의 2배 이상이며 제작 기간도 반년 이상이나 걸린다. 1편의 만화영화는 최소한 5만~6만 장의 그림 으로 구성되는데, 그림 하나하나마다 선과 명암에 세심한 신경을 써야 하므로 한 명의 화가가 하루 종일 그려도 20장 정도밖에는 그릴 수가 없다고 한다. 그러므로 반년 동안 50~60명의 만화가가 주야로 매달려야 1편의 만화영화를 탄생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1977년 12월 7일자 경향신문)


"자체(국내)에서 제작할 경우, 30분짜리 1편에 1,500만원 정도가 드는데 비해 일본만화영화를 수입하면 500~1,000 달러(35만~70만 원)가 들기 때문”(1982년 5월 4일자 동아일보)


"TV용 만화영화를 만드는 데는 어려움이 많다. 30분용 기획물의 경우 보통 드라마 제작비의 4배 정도인 1,000여만 원의 경비가 든다. 여기서 기획과 구성을 포함하면 1,400~1,500만 원의 경비가 소요돼 선뜻 제작에 임할 수없는 형편다.”
(1982년 11월 29일자 매일경제)


“KBS가 기획하고 있는 TV 만화영화는 30분짜리인데, 편당 제작비는 4,000만~5,000만 원 정도. 이 같은 제작비는 현재 방영되고 있는 TV문학관(1시간 30분짜리)의 제작비 2,600만 원, 형사(50분짜리) 등 단막물의 제작비가 500만 원 정도인 점에 비추어볼 때 많은 액수이다.”
(1986년 10월 16일자 동아일보)


”30분짜리 만화영화 수입가는 1,000 달러(약 80만 원) 정도. KBS1에서 방영한 1시간 반짜리 만화영화 떠돌이 까치의 제작비는 1억 4,000여 만 원(약 17만 5,000 달러)이나 됐다. 이를 30분짜리로 환산하면 4,700만 원(약 5만 8,000 달러)으로 다른 만화영화 수입액의 근 60배나 된다.”(1987년 7월28일자 동아일보) “국산 TV만화영화 제작의 가장 큰 장애요인은 엄청난 제작비다. 30분짜리 만화영화의 수입비용이 1,500 달러 (120만 원)에 불과한 반면 이를 국내에서 제작할 경우 5,000여 만 원이나 든다.”(1988년 4월 29일자 동아일보)


“30분짜리 만화영화 1편의 제작비는 적게 잡아 5,000만원 안팎이다. 그러나 100만 원이면 같은 길이의 일본만화를 수입할 수 있다. 만화업계 한 관계자의 이러한 말은 외국만화, 특히 일본만화 대거 유입의 배경에 대한 경제적 설명이기도 하다. 따라서 상업자본에만 맡겨진 어린이들의 영상물에 대한 수요를 텔레비전과 같은 공공매체에서 창작 만화의 제작에 좀 더 과감한 투자로 충족해주어야 한다는 요구는 점점 더 커지고 있다.”(1990년 5월 20일자 한겨레 신문)


“우리 만화(영화)의 제작은 경비가 많이 들어 30분짜리 만화영화 제작에 6천만 원의 비용이 필요하다 보니, 수입 비용이 그 경비의 50분의 1에 불과한 외국만화를 그대로 들여오게 된다.” (1990년 9월 23일자 매일경제)
이남국
·전 홍익대 조형대학디자인영상학부 애니메이션 전공교수
·전 월트 디즈니 & 워너 브라더스 스튜디오 감독 및 애니메이터
·국립공주대학교 영상예술대학원 게임멀티미디어학과 공학석사
·CANADA SENECA COLLEGE OF APPLIED ARTS & TECHN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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