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략한 소개를 부탁드린다 KBS 40기 공채로 2015년부터 성우생활을 시작했다. 홀로 있는 시간을 좋아한다. 집에 있으면 할 게 많다. 전혀 심심하지 않다. 한 친구는 “네가 TV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 나오면 정말 재미있을 것” 이라고 말하더라.(웃음) 취미는 독서다. 우리나라 문학은 물론 일본문학 원서를 즐겨 보고 일어 전공 실력을 살려 번역일도 하고 있다.
성우라는 직업을 택한 계기가 있었나? 어린 시절 엄마가 비디오를 많이 빌려 왔다. 비디오를 틀어줘야 내가 울지 않고 조용히 있었기 때문이다.(웃음) 어느 날 플래시맨을 보고 있었는데 수차례 되돌려봐도 배우가 말하는 입 모양이 우리말을 하는 게 아닌 것 같아 이상했다. 그때 엄마의 설명을 듣고 성우의 존재를 알게 됐다. 중학생 때 국산 애니메이션 스피드왕 번개의 더빙과정을 담은 영상을 보고 성우가 멋있다고 생각했지만 군에 입대하기 전까지만 해도 프로게이머, 비보이, 번역작가 등 하고 싶은 게 정말 많았다. 그러다 제대할 즈음 “부대에서 방송할 때 목소리가 깔끔하던데 성우 해보면 좋겠다” 는 선임의 말에 그간 잊고 지냈던 성우의 꿈을 다시 떠올렸다. 공부를 시작한 지 4년만에 시험에 합격했다. 도중에 포기한 적도 있었다. 친구들은 성장하는 반면 내 실력은 늘지 않아 재능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어느 날 우연히 거리에서 공연을 펼치는 걸그룹 아이돌을 봤다. 자존심을 내려놓고 꿈을 위해 노력하는 그들의 열정적인 모습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래서 용기를 내 성우시험에 재도전한 끝에 꿈을 이뤘다.
대표작을 소개해달라 극장판 애니메이션 몬스터 하우스에서 리암 역을 맡았다. 소심하지만 호기심이 많고 필요할 때 용기를 내는 캐릭터인데 행동이나 말하는 모습이 어린 시절의 날 보는 것 같았다. 토마스와 친구들에서는 허풍쟁이 기차 멀린, TV시리즈 몬스터탑에서는 식탐이 많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하온, 조만간 공개될 코드네임X에서는 불독 국장을 연기했다. 게임 캐릭터로는 일곱 개의 대죄: Grand Cross의 알리오니 등이 있다.
자신의 목소리가 어떤 캐릭터를 가장 잘 표현한다고 생각하나? 짓궂지만 마음이 여리고 소심하면서도 용기를 내 불의에 맞서는 해맑은 캐릭터를 연기하는 게 편하다. 차분하며 잘생기고 여심을 흔드는 주인공 역은 어렵고 부담스럽다. 진지한 캐릭터를 원하면서도 막상 주어지면 좌불안석이다. 까불이 캐릭터가 딱인 것 같다.(웃음) 그렇다고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기회가 왔을 때 잘해야 한다. 그럴려면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맡겨주면 잘해낼 자신이 있다. 주로 약한 악역을 해왔는데 감정이 메마른 지독한 악역도 연기해보고 싶다. 항상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하는 건 모든 성우의 고민이자 열망이다.
가장 애착이 가는 캐릭터는? 지난 2017년 개봉한 프랑스 애니메이션 빅 배드 폭스에 나온 황새와 강아지다. 전속에서 풀린 후 맡은 첫 애니메이션 배역이었는데 성우가 된 이후 처음으로 큰 좌절감을 맛보게 한 캐릭터였다. 나름 철저히 분석하고 준비해 녹음에 들어갔지만 내가 생각한 것과 현장에서 요구하는 게 달라 시쳇말로 멘붕이 왔던 것이다.
연기의 포인트가 드라마와 달랐고 오랜만에 한 애니메이션 더빙이어서 그런지 낯설고 불편해 연기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어찌어찌해서 어렵게 녹음을 마쳤지만 실력 부족을 절감했다. 이후 대원방송 출신 선후배들에게 조언을 얻어가며 부족한 점을 하나둘 채워나갔다.
성우가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요소는? 존재에 대한 관심이다. 존재에 대한 관심은 상상력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한다. 성우가 표현하는 영역은 사람과 사물, 생물과 무생물을 가리지 않는다. 사물에도 우리는 알 수 없는 감정이 있지 않을까, 존재의 이유가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다 보면 여러 재미있는 상황들이 떠오르기 마련이다. 홀로 비좁은 부스의 마이크 앞에서 감정을 표현해야 하는 일을 지탱해주는 건 상상력이다. 머리에 떠오르는 그림을 목소리로 표현하는 직업이기에 존재에 대한 관심은 꼭 필요하다.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나? 어떤 작품의 오디션을 통과해 비중이 높은 역에 캐스팅된 적이 있었다. 녹음할 때 “다시 해주세요” 란 주문이 반복되더니 결국 다른 성우로 교체됐다.
그땐 정말 속상했다. 그런데 그 작품에서 단역 캐릭터도 맡았는데 갈수록 이야기의 중심인물로 떠오르고 분량도 많아지더라. 새로운 기회가 주어졌다는 생각에 이를 악물었고 성공적으로 녹음을 마쳐 구겨진 자존심을 다시 회복했다. 다른 성우로 교체됐던 주연급 캐릭터는 갈수록 대사가 줄어 비중도 낮아졌다.(웃음) 이걸 두고 전화위복이라고 하는 것 같다.
허성재에게 성우란? 다시 만난 세계다. 앞서 언급했지만 성우 공부를 중도에 포기하고 방황한 적이 있다. 다시 돌아 오기까지 많은 고민이 있었기에 쉽게 포기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이런 결기가 통했는지 여러 번 시험을 치렀지만 단 한 번도 1차에 붙은 적이 없던 내가 마지막에 치른 KBS 시험에서 단박에 최종까지 올라가 합격통지서를 받았다.
조금만 다른 생각을 했다면 지금의 삶이 없었을 것이다. 다시 만난 이 세계에 영원히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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