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한 움직임과 소품이 캐릭터를 ‘ 살아있게 ’ _ 독립영화관 _ 이주환 감독

남주영 / 기사승인 : 2021-06-21 08: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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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 침묵 007빵 >


 


정리된 듯 정리되지 않은 어느 날 저녁의 미술학원. 여고생 세 명이 지친 얼굴로 앉아 있다. 

언제든지 엎드려 잘 수 있도록 목에는 목베개를 걸쳤고 , 앞머리는 헤어롤로 감아 올렸다. 

그들의 소리 없는 게임을 보는 동안 관객은 잔잔한 웃음과 함께 자신들의 고등학생 시절을 떠올린다. 이주환 감독의 작품은 캐릭터의 작은 몸짓과 배경속 자잘한 물건에 숨겨둔 리얼함으로 관객을 몰입시킨다. < 침묵 007빵 > 의 이주환 감독을 만나보았다.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이주환이라고 한다. 감독이라는 명칭에는 무게가 느껴지는데 아직은 그 무게를 갖추지 못한 것 같아 그렇게 불리는 게 부끄럽다. 쉐리던 컬리지에서 애니메이션을 전공했고 , 애니메이션 학원 강사로 일하고 웹툰 연재를 하기도 했다. 현재는 오성윤 감독님과 이춘백 감독님이 제작 중인 극장판 애니메이션에 조감독으로 합류해 후반작업을 하고 있다.


애니메이션을 만들게 된 계기는? 외가 가족들이 미술에 관심이 많은 편인 데다 , 나 역시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해 초등학생 때부터 만화를 그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중학교 시절엔 각 반에 한 명쯤 있는 ‘ 만화 그리는 아이 ’ 였다. 반 친구들을 캐릭터화해 만화를 그렸는데 공책을 한 달에 한 권씩 갈아치울 정도로 많이 그리다 보니 조금 질리더라. 그래서 그림을 움직이게 만드는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시작했 다. 당시 ‘ 이지툰 ’ 이라는 프로그램으로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것이 일부 인터넷 게시판에서 유행했고 이때 애니메이팅을 처음 시도해봤다. 참 재미있었다. 이후 진로를 애니메이션 쪽으로 정하고 쉐리던으로 진학해 애니메이션을 배우고 , 지금은 즐겁게 만들고 있다.

 

 

 

< 초인전사 조선인민전대 >

 

 


인디애니페스트에서 상영했던 < 침묵 007빵 > 을 소개해달라

< 침묵 007빵 > 은 미대 입시를 준비하느라 학원에 모인 여고생 3명이 강사의 잔소리에도 포기하지 않고 침묵 007빵 게임을 하는 내용의 애니메이션이다. 여고생들은 모두 피로에 절어 다크서클이 뚜렷하지만 , 자기들끼리 몰래 하는 게임에서는 웃음을 참지 못한다. 사실 < 침묵 007빵 > 은 작품이라기보다 습작에 가깝다. 짧은 분량이지만 애니메이션 표현기법과 컬러링 , 다른 사람들과의 협업 같은 것들을 연습하기에 적합할 것이라 생각해 시도했다. 힘든 상황 속에서도 서로에게 기대고 응원하는 인물들의 모습이 내가 창작을 통해 보여주고 싶은 이야기들과 일맥상통한 덕분에 즐겁게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인디애니페스트에서 상영하고 상까지 받게 될 거라고 기대하지 않아서 지금도 놀랍기만 하다.

 

< 침묵 007빵 > 의 캐릭터가 매우 개성 있고 현실적이다. 캐릭터를 어떻게 기획하는지? 평소에 현실에서 보고 기억했던 것들을 자연스럽게 활용한다. 평소 만나는 사람들의 특징이라든가 , 기억에 남았던 것이라든지 , 누구나 척하면 아하 하고 알아보게 되는 행동들을 쏙쏙 가지고 와서 조립하는 것이다. 그렇게 때문에 특정 인물로부터 100% 모티브를 따온 캐릭터는 없다. < 침묵 007빵 > 캐릭터의 경우에는 학원강사로 일하면서 많은 학생들을 만났다 보니 자연스럽게 아이들이 어떤 물건들을 즐겨 쓰는지 알게 됐다. 목베개와 헤어롤 , 무선 이어폰 등 그런 소품을 쓰면 보다 리얼하게 느껴질 것이라 생각했다. 결국 애니메이션 같은 영상물의 목표는 보는 이들을 이야기로 몰입시키는 것이다. 그러려면 공감이 중요하지 않을까? 평소 생활하며 보던 것들을 작품 속에서 본다면 ‘ 아 , 저거 나도 알지 ’ 하면서 몰입할 수 밖에 없으니까. 그런 순간을 만들어줄 수 있는 소품이나 디테일 등을 표현하는 것을 좋아한다. 사람들이 재미있게 봐줄 거라고 기대하게 되기 때문이다.

 

< 초인전사 조선인민전대 > 에 대해 소개해달라 < 초인전사 조선인민전대 > 는 쉐리던 컬리지의 졸업작품으로 만든 것이다. 북한을 배경으로 한 슈퍼히어로들의 이야기로 , 나중에 장편애니메이션을 만들 계획에 앞서 우선 예고편처럼 만든 것이었다. 이 작품으로 좋은 평 , 좋지 않은 평 양쪽 모두 많이 들었고 또 배운 것도 많다. 기술적인 부분이나 화면 연출 등에서는 내가 가진 재주를 한껏 보여줄 수 있었지만 내용에는 진심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지는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다. 흥미로운 것을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에 자극적으로 접근했던 부분도 있었음을 느꼈기에 이 작품을 더할 수는 없었다. 살아가고 있는 지금 이 세상에서 창작자로서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게 해줬던 작품이다.

 

< 초인전사 조선인민전대 > 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움직임이 매우 역동적이고 섬세한데 , 애니메이션을 만들 때 중시하는 부분인지? 그렇다. 앞서도 이야기했듯 창작물은 관객을 몰입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관객을 몰입시킬 수 있을까? 실제로 있음 직한 이야기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다면 캐릭터 역시 실제로 움직이는 듯한 움직임 , 했을 법한 행동을 보여줘야 한다. 

그래서 캐릭터의 움직임 연출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다. 그리고 사람들을 몰입시키는 또 하나의 요소는 소리다. 배경이 러프 하더라도 소리가 리얼하면 많은 이들이 현실적이라 느낀다. 이런 부분들을 애니메이션을 만들 때 중요하게 생각하고 , 재현하려고 한다. 결국 ‘ 살아있다 ’ 는 느낌을 주고 싶은 것이다. 한편으로 내가 그리는 그림은 카툰같다는 평을 듣는 편이다. 스타일이 단순하기 때문에 더욱 캐릭터의 움직임을 실제처럼 느껴지도록 노력하는 것 같다. 그 괴리감에서 재미가 오니까.

 

 

 

 

 

유튜브에 클립 애니메이션을 올리고 있다. 작업이 힘들지 않은지? 취미 겸 연습으로 만화를 그리거나 짧은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인터넷 게시판에 올리곤 한다. 내 유튜브 채널 ‘ 미스터리 ’ 에 올려둔 ‘ 비빔면 먹는 만와 ’ , ‘ 전역해서 기분 좋은 만화 ’ 같은 것이 그 예다. < 침묵 007빵 > 역시 그렇게 시작한 것이다. 물론 만드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 나는 이를 작업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모두 취미이고 , 연습이고 , 습작이다. 예를 들어서 축구가 취미인 사람이 하루 종일 축구를 하고 왔다고 해서 “ 운동량이 많아 힘들지 않냐 ” 고 묻지는 않지 않는가. 똑같은 것이다. 이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접근하기 때문에 유튜브에 만화를 올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정말로 유튜브 애니메이터가 되려면 또 다른 차원의 노력을 해야 하겠지. 한편 습작을 게시판에 올리는 이유는 내가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림도 좋아하지만 무언가 이야기하는 것도 정말 좋아한다. 이야기를 두 종류로 나눈다면 누군가를 만나서 늘어놓을 수 있는 이야기가 있고 , 창작을 통해 은유하고 전개시킴으로써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소통해야 하는 이야기가 있다. 나는 후자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서 이렇게 창작하고 다른 이들에게 선보이는 것이 아닌가 싶다.

 

앞으로의 계획은? 다음 작품은 웹툰으로 연재했던 < 유레카!! > 를 장편애니메이션으로 만드는 것이 목표다. < 유레카!! >는 지구 정복을 꿈꾸는 어린이들의 이야기이며 , 줄곧 작품을 통해 전하고 싶었던 테마들 , 그리고 왜 애니메이션을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담은 이야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못 해도 3년은 걸리지 않을까 싶지만 , 스스로 생각했을 때 부끄럽지 않은 데뷔작이 될 수 있도록 만들고 싶다.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원대한 꿈을 갖고 있진 않다. 그냥 애니메이션을 계속 만들면서 내가 해온 고민들에 대한 답을 찾아내길 바란다. 고민을 그만두고 스스로 완벽한 사람이 됐다고 여기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할 수 있는 일 ,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 , 애니메이션은 왜 만들어야 하는지 등등 계속 고민하며 나아가고 싶다. 그래야 더 나은 사람이될 수 있을 테니까.

 

 

 

 

 

 

 

 

아이러브캐릭터 / 남주영 기자 master@ilovecharac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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