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업계를 떠나는 이들이 늘고 있다. 불투명한 비전, 강도 높은 노동량, 낮은 처우 탓에 애니메이션의 길을 선택하는 이들도 줄고 있다. 그럼에도 어디선가 오늘도 묵묵히 구슬땀을 흘리며 작품을 만들기 위해 열성을 다하는 PD들이 있기에 한국 애니메이션의 미래는 여전히 밝다. 현장의 PD들을 만나 애니메이션을 향한 그들의 꿈과 열정, 그리고 장인 정신의 의미를 되새겨본다.
간략한 소개를 부탁드린다
애니메이션 쪽에서 일한 지 25년 됐다. 만화가 김지원 선생님의 문하생으로 들어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내 이야기를 표현하고 싶은 마음에 애니메이터로 자리를 옮겼고 콘셉트 디자인에 재미를 느껴 활동 분야를 넓혔다. 그런데 내가 짠 콘셉트와 세계관이 결과물을 보면 달라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작품의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다 해보자는 생각에 감독 일을 배워 크리쳐헌터스란 작품까지 만들게 됐다.
그간 참여한 작품 중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은?
작품 하나하나가 모두 소중하다. DC 코믹스의 저스티스 리그, 넷플릭스 시리즈 드래곤 에이지, 카툰네트워크에서 방영한 벤10 시즌2 등 수많은 작품이 있지만 2016년 방영한 고롤라즈란 작품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사실 세계관이 꽤 괜찮아서 재미있는 결과물이 나올 수 있었는데 끝내 어느 한계를 넘어서지 못해 아쉬움이 많이 남은 작품이었다. 내가 감독을 맡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만든 작품이기도 하다.
작품을 만들면서 가장 뿌듯했던 순간, 그리고 아쉬웠던 순간은?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사람이라면 모두 매한가지일 거다. 내가 만든 작품이 누군가에게 보여졌을 때 가장 뿌듯하지 않을까. 그리고 누구나 아는 작품이 됐을 때 큰 보람을 느낄 것이다. 반면 애니메이션 제작 공정을 거칠 때마다 내 의도와 다르게 내용이나 방향이 달라질 때 아쉬움이 크다. 스트레스도 많이 받는다.
상상하는 대로 표현해낼 수 있다는 게 매력이다. 어떤 이는 자신의 상상을 피아노 선율로 표현하고, 어떤 이는 글로, 춤으로 표현한다. 난 그림으로 생각과 상상을 표현하는 게 좋다. 그림은 직관적이다. 그래서 만들 때 무척 행복하다.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매우 고된 작업이지 않느냐고 묻지만 그림을 그리고 하나둘 완성돼가는 과정이 그저 재미있다.
요즘 애니메이션업계를 바라보는 개인적인 생각이 궁금하다
애니메이션은 보통 많은 사람이 모여 만들지 않나. 그런데 그게 좀 비효율적이다. 사공이 많으니 퀄리티가 다르게 나오는 경우가 있다. 이제는 적은 인원으로 좋은 퀄리티를 낼 수 있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메인 프로덕션보다 프리 프로덕션 역량이 더욱 높아져야 더 많은 시도를 해볼 수 있고 다양한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콘셉트 설정에 최대한 힘을 쏟는 대신 상대적으로 적은 인력으로 최상의 품질을 갖춘 작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 바로 크리쳐헌터스다.
앞으로 해보고 싶은 작품이 있다면?
AI 기술을 활용한 로봇물이다. 표현할 수 있는 게 매우 광범위하다. 오는 10월 KBS에서 스페셜 영상을 방영한 이후 내년 2월 크리쳐헌터스 시즌1, 6월에 시즌2를 선보일 예정인데 AI 기술을 십분 활용해 표현해보고자 했던 상상 속의 장면을 마음껏 보여주고 싶다. 시즌1에서도 누군가에게 맡기지 않고 그간 해보고 싶었던 걸 직접 만들었는데 시즌2에서는 더 나은 품질의 영상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 무협 장르도 선호한다. 그려야 할 등장인물이나 소재가 너무 많아 쉽지 않은데 AI 기술이 더 고도화되면 한층 수월해지지 않을까.
아이러브캐릭터 / 장진구 기자 master@ilovecharac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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