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이슈로 돌아보는 2023년 캐릭터·애니메이션산업

장진구 기자 / 기사승인 : 2023-12-04 08: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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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Report

올해 캐릭터·애니메이션산업에서 이목을 집중시킨 주요 이슈 중 하나는 바로 일본 콘텐츠의 강세였다. 새해벽두부터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극장가를 강타했고 산리오 캐릭터는 갖가지 콜라보레이션으로 유통가를 뒤덮었다. 한 해를 정리하는 12월을 맞아 주요 흐름을 돌아본다.

 

 

애니메이션 제작사 상장 움직임 활발
지난해 캐치! 티니핑을 만든 에스에이엠지엔터테인먼트가 코스닥에 입성하면서 애니메이션 제작사들의 증시 상장 움직임이 활발해졌다.
코라의 전설, 분덕스, 도타: 용의 피, 볼트론: 전설의 수호자, 위쳐: 늑대의 악몽 등을 만든 스튜디오미르가 코스닥에 상장했고 웹툰·무빙웹툰 전문 제작사 드림픽쳐스21도 기업공개(IPO)를 위한 주관사 계약을 맺고 상장 준비에 착수했다.
예전부터 IPO 준비에 나선 아이코닉스, 오콘, 투바앤에 이어 모꼬지도 2025년 IPO를 목표로 투자자 유치에 팔을 걷었고 더핑크퐁컴퍼니를 비롯해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2∼3곳이 상장 예비 심사를 위한 준비가 한창이란 얘기가 흘러나왔다.
코로나19, 뉴미디어 성장, 플랫폼 확대 등 시장 환경의 변화로 유·아동 콘텐츠의 잠재력에 대한 평가가 높아지면서 히트 IP를 앞세워 해외 진출에 나선 제작사를 중심으로 상장을 준비하는 기업이 늘고 있지만 이러한 시도가 곧바로 증시 입성으로 연결될지는 미지수다. 성장 잠재력을 입증하지 못하면 예비 심사의 문턱을 넘기 어렵다.
애니메이션은 유튜브, OTT 등을 통해 해외로 나가 팬을 형성한다는 점에서 다른 콘텐츠와 비슷하나 팬덤을 이용한 상품화로 수익을 올리는 사업 구조를 가진 것이 특징이다.
그러므로 해외에서 인기를 얻지 못하면 매출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또 소비층이 유·아동에 집중돼 성장에 한계가 있다는 부정적 시각도 있다. 이러한 우려를 잠재우려면 해외에서 IP가 흥행에 성공해 사업의 불확실성을 제거해야 한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매출 성장과 수익성 확보를 위해서는 보유 IP의 흥행 지속성 여부가 관건”이라며 “투자금을 회수하고 지속적으로 수익을 내려면 콘텐츠가 꾸준히 인기를 얻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극장가 강타한 재패니메이션
올 극장가에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열풍이 거세게 불었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붙인 불은 귀멸의 칼날: 상현집결 그리고 도공 마을로, 스즈메의 문단속으로 옮아가며 활활 타올랐다. 특히 스즈메의 문단속과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각각 554만 명, 472만 명의 관객을 동원해 역대 일본 영화흥행 1·2위에 나란히 이름을 올렸다.

이에 애니메이션 전문가들은 국산 히트작이 나오려면 관객을 흡인할 수 있는 진정성 있는 이야기를 만드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독특한 이야기 또는 대중이 관심을 갖는 흥미로운 주제, 대중적으로 검증받은 이야기가 필요하다는 것. 결국 성패의 핵심은 잘 짜인 시나리오라는 얘기와 맞닿아 있다.

김선구 스튜디오에이콘 대표는 월간 <아이러브캐릭터>가 마련한 좌담회에서 “우리나라 애니메이션도 K-팝처럼 그림체나 연출 방식 등 새롭고 앞서나가는 방법을 적극 시도하고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주제 의식을 담아 완성도 높은 스토리텔링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웹툰과 영화는 매체를 즐기는 방식이나 재미와 감동을 느끼는 지점이 다름에도 웹툰을 활용한 애니메이션이 자꾸 나와야 성공 모델이 탄생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조경훈 스튜디오애니멀 대표는 “퀄리티나 기술적 부분은 부차적인 문제일 수도 있다”며“스토리텔링을 제대로 전할 수 있는 작품이라면 관객을 끌어 모을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일본에서는 제작위원회를 꾸려 예측 가능한 플랜을 작동시키는 것처럼 제작비를 확보해놓고 파이프라인을 짜서 끌고 가는 구조를 만들어야 성공작이 나올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지적했다.

 

 

생성형 AI 기술의 명암

생성형 AI 기술은 창작 환경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왔다. 생성형 AI는 수많은 데이터를 학습한 AI에 특정 지시를 내리면 글이나 그림으로 만들어주는 소프트웨어다.

기존 AI가 데이터와 패턴을 학습해 결과물을 내놨다면, 생성형 AI는 데이터와의 비교 학습을 통해 새로운 창작물을 만들어낸다.

생성형 AI가 대중화되면 짧은 시간에 소설, 웹툰, 캐릭터 등 다양한 장르의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게 된다.

생성형 AI를 활용한 콘텐츠 제작이 가장 활발한 분야는 웹툰이다. 네이버웹툰은 AI 팀을 꾸려 2021년 웹툰 AI 페인터 시스템을 도입했고 카카오도 이미지 생성형 AI 프로그램 칼로와 앱 비 디스커버의 활용을 유도하고 있다.  노동집약적 산업 구조로 만성 적자에 허덕이는 애니메이션업계에 서도 관심이 높다.

하지만 역기능에 대한 파장도 만만찮다. 당장 AI 창작물에 대한 소비자들의 거부감이 상당하다. AI가 내놓은 그림이 원작을 학습용 데이터로 무단 활용해 짜깁기한 ‘도둑질한 그림’에 불과하다는 인식이 강하다.

그 때문에 카카오웹툰 스튜디오는 6월 진행한 게릴라 공모전 ‘인간이 웹툰을 지배함’의 응모 자격을 “인간의 손으로 인간이 그린 작품만 받는다”고 명시했다. 네이버웹툰도 지상최대공모전의 2차 접수부터 생성형 AI 기술을 활용한 작품의 응모를 제한한다는 방침을 알렸다.

그럼에도 AI 기술의 활용은 피할 수 없는 흐름이자 대세란 의견이 지배적이다. 창작 업계는 노동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여 작업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수단이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디깅 문화 이끄는 랜덤형 상품

수많은 캐릭터 상품 중에서도 랜덤형 상품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인기가 여전했다.

랜덤형 상품은 편의점을 중심으로 유통이 확산된 점이 특징이다. 아이들이 주로 보호자와 함께 가는 백화점, 마트, 쇼핑몰과 달리 편의점은 초등학생부터 20∼30대까지 편하게 찾는 쇼핑 공간이기 때문. MZ세대의 놀이터인 편의점에 영·유아 타깃 캐릭터보다 폭넓은 세대를 아우르는 캐릭터의 랜덤형 상품이 많은 이유다.

이처럼 일상에 가까운 공간에서 접하기 쉬운 랜덤형 상품은 가격이 부담스럽지 않고 뽑기 방식의 흥미와 수집욕을 자극해 캐릭터 소비를 유인하는 효과가 있다.

캐릭터 소비의 빈도를 늘리고 적은 돈으로 캐릭터와의 접촉을 꾸준히 늘리는 방식이기에 랜덤형 캐릭터 상품은 팬덤 확장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수단으로 꼽힌다.
특히 캐릭터 소비가 소수의 취미를 넘어 보다 일반적인 어른들의 문화로 확장되고 있다는 점에서 볼 때 랜덤형 상품은 MZ세대를 비롯한 키덜트의 디깅(digging, 집중해 파고 듦) 경향과 맞닿아 있다. 랜덤형 상품 수집을 통해 콘텐츠와 캐릭터를 소비하는 모습이 디깅의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구매력을 갖춘 이들이 상품을 지속적으로, 그리고 적극적으로 구매하면서 콘텐츠에도 깊게 파고드는 것이다.

 


유통가 뒤덮은 일본 캐릭터
올해 유통가는 일본 캐릭터가 휩쓸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헬로 키티를 비롯한 산리오 캐릭터, 포켓몬스터, 짱구는 못말려, 치이카와(먼작귀), 도라에몽, 슈퍼마리오 등 일본 IP를 향한 유통업계의 협업 구애가 뜨거웠다.
대중적이고 오랜 팬덤을 가진 일본 캐릭터는 안정적인 매출을 예상할 수 있고 기성세대에게 추억과 향수를, 젊은이들에게는 익숙함과 재미를 선사해 보다 폭넓은 소비자에게 다가갈 수 있는 마케팅 수단으로 각광받았다.
특히 일본이 촉발한 무역 갈등으로 냉각된 한일 관계에 온기가 돌면서 이른바 노재팬(no-Japan, 일본 제품 불매운동) 분위기가 누그러지고, 소비층이 과거사나 노재팬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는 10∼30대로 집중된 것도 영향을 미쳤다.
라이선스업계 한 관계자는 “헬로키티, 도라에몽, 짱구는 못말려 등은 1980∼1990년대부터 보고 자란 기성세대와 1990∼2000년대에 태어난 젊은 세대에게 모두 익숙한 캐릭터”라며 “레트로 디자인이나 상품을 통해 추억과 재미를 얻고 유행이나 대세를 따르는 소비자들의 움직임에 대응하기 위해 오래도록 사랑받는 일본 캐릭터를 찾는 곳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나고 일본 여행이 활기를 띠고 경직된 한일 관계도 풀리면서 노재팬 캠페인으로 위축된 구매 심리가 살아났다”며 “현지 유망 콘텐츠를 들여오려는 곳이 많아지고 그간 소극적이었던 일본 캐릭터의 IP 사업을 재개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고 전했다.

 

 

가상 캐릭터 속속 등장
메타버스, 모션 캡처, VR(가상현실) 기술의 발전으로 등장한 버추얼 아이돌, 버추얼 유튜버, 버추얼 인플루언서, 버추얼 휴먼 등 가상 캐릭터의 활약도 두드러졌다. 유명 스트리머 우왁굳이 기획한 대표적인 버추얼 아이돌 이세계아이돌은 버추얼 아티스트로는 최초로 음원 플랫폼
멜론이 선정하는 멜론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SNS 등에서 팬덤을 쌓은 버추얼 인플루언서를 오프라인에서 만나는 기회도 늘고 있다. 세계적으로 3,000만 팔로어를 보유한 버추얼 인플루언서 노바디 소시지(Nobody Sausage)는 롯데면세점과 협업해 Everybody Sogong 1st Ave 전시를 열었다.
버추얼 캐릭터 팬덤이 커지면서 가상 엔터테인먼트 분야로 진출하려는 기업들의 움직임도 바빠졌다. 완구 기업 오로라월드는 트위터와 유튜브 등을 통해 윤(Yoon), 아민(Min), 혜규(Q), 세계(Kei), 비한(Han) 등 5명의 멤버로 구성된 버튜버 보이 그룹 이진법소년들의 오리지널 음원 ‘순간으로 그려진 너와 나의(Designer)’ 뮤직비디오를 공개하며 버추얼 캐릭터 IP 사업 진출을 선언했다. 라이선스 에이전시 케이비젼도 버추얼 싱어 하츠네 미쿠(Hatsune Miku) 사업의 본격 전개를 알렸고 시나몬컴퍼니도 4인조 남성 가상 아이돌 그룹 리버티(Liberty)를 론칭했다.

버추얼 캐릭터가 마니아층의 전유물이란 인식을 넘어 이제는 콘텐츠산업의 주류로 떠오르면서 IP 비즈니스계에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업계 관계자는 “버추얼 캐릭터는 실제 스타처럼, 그리고 아트워크와 그래픽 기반의 캐릭터로도 활용할 수 있어 확장성이 매우 크다”며 “타깃층이 좋아할 만한 개성이나 캐릭터성을 갖췄다면 접목할 수 있는 IP 사업 분야도 무궁무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애니메이션계에 부는 칼바람
지난해 서울경제진흥원(SBA)의 애니메이션 지원금 삭감 조치에 이어 올해 영화진흥위원회의 애니메이션 종합지원 사업 폐지 논의가 불거지면서 다양하고 실험적인 애니메이션 창작을 위한 사다리가 사라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기획재정부는 2024년도 예산을 수립하면서 영진위의 애니메이션 종합지원사업 예산을 전액 삭감키로 방향을 정했다. 애니메이션 기획 개발 및 제작 지원사업의 경우 영진위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중복 지원하고 있어 행정력 낭비뿐 아니라 업계에서도 양 기관에 각각 신청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영진위는 올해 중편 제작 지원, 장편 초기 개발 제작 지원, 본편(장편) 제작 지원으로 나눠 30억여 원을 편성, 제작자가 작품을 체계적으로 만들어보는 기회를 제공하는 시스템을 운영해왔다. 이 제도는 업계와 오랜 시간 여러 논의를 거쳐 확립한 것으로, 기획부터 제작까지 오리지널 극장판 애니메이션을 위한 일관된 지원사업으로 의미가 컸다.
애니메이션계는 이 같은 결정에 “마지막 산소호흡기를 떼고 장편 애니메이션에 사망 선고를 내린 것”이라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애니메이션계는 “영진위의 지원사업 폐지는 애니메이션 창작의 씨를 말리는 졸속 결정”이라고 맹비난하면서 폐지철회를 요구했다. 장편 애니메이션을 제작한 감독들은 공동 성명서를 내고 “창작과 다양성이란 가치가 보존돼야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나갈 수 있다”며“지원사업 폐지에단호히 맞설 것”을 다짐했다.



오아시스에서 신기루로 전락한 메타버스

새로운 오아시스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메타버스(metaverse)가 신기루로 전락했다. 메타버스는 가상, 추상을 뜻하는 메타(meta)와 현실 세계를 의미하는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로, 가상현실이 진화한 형태의 3차원 가상 세계다. 가상과 현실의 경계가 사라진 공간에서 플랫폼 개념인 메타버스의 도래는 코로나19로 더욱 앞당겨졌다.
특히 비대면 상호작용이 이뤄지던 온라인 가상공간에서 이용자들의 소통과 교류, 엔터테인먼트의 유통이 대중화되는 양상을 띠자 증강현실, 인공지능, 3D 영상 제작 등의 기술을 활용해 새로운 콘텐츠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하려는 발걸음도 빨라졌다.
이에 메타버스 시장 확대로 캐릭터와 스토리를 담은 애니메이션 IP와 제작 기술이 더욱 주목받을 것이란 기대 섞인 전망이 쏟아졌지만 뚜렷한 수익 모델을 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
때문에 콘텐츠와 이용자 없이 공간만 덩그라니 남은 메타버스의 인기와 주목도는 곤두박질쳤다. 구글 트렌드 데이터에 따르면 메타버스 검색량은 지난해 최대치인 100에 달했지만 코로나 엔데믹 단계로 접어든 올해에는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결국 메타버스에 앞다퉈 진출했던 주요 기업들은 관련 사업을 축소하거나 아예 정리하는 수순을 밟고 있다.

 

 

아이러브캐릭터 / 장진구 기자 master@ilovecharac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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