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적인 게 어때서 _ 최유진의 애니잡수다 ❼

장진구 기자 / 기사승인 : 2021-10-27 08: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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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 실험적이다 ”
독립 애니메이션에 관해 이야기하면 곧잘 수식어처럼 붙는 말이다. 맞다. 독립 애니메이션은 실험적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어떤 의미로 이 말을 사용할까 생각해보면 조금 씁쓸하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 이해하기 어렵다 ’ 는 의미로 쓰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대체 실험적이라는 단어의 뜻은 무엇일까. 사전을 한번 찾아봤다. ‘ 실험적: 과정이나 결과를 실지로 관찰하고 기록하는 방법에 의한 것 , 새로운 방법이나 형식을 시험 삼아 해보는 것 ’ 사전 그 어디에도 어렵다는 의미는 없다. 오히려 뭔가를 직접 해보거나 새로운 방법을 시도해보는 의미에 가깝다. 물론 무엇이든 새로운 것을 해보려고 하면 두렵고 어렵다. 하지만 그러한 두려움을 넘는 시도들이 이어졌기에 지금 우리의 삶이 있는 것은 아닐까. 이제는 편안하게 극복해보자고 제안하고 싶다. 실험적인 게 어때서?

잊을 수 없던 ‘ 실험 ’ 들
가장 기억에 남는 과학실험이 있다. 초등학교 때 방학숙제로 과학실험을 해야 했다. 친구들과 간단한 화학실험을 끝내고 사용한 액체들을 치우기 위해 아무 생각 없이 한 그릇에 모았다. 그 순간 액체가 부글부글 끓더니 사방으로 흘러 넘치는 것이 아닌가. 방 안 가득 액체가 퍼지는 걸 보며 매우 당황했지만 액체가 분수처럼 솟던 그 순간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이후 화학물질이 서로 만나면 나타나는 반응이라는 것을 알게 됐지만 머릿속에는 과학적 사실을 배우게 된 것보다 그 장면이 더 강렬하게 남았다.

실험영화를 본 적이 있다.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실험영화의 거장으로 알려진 한 감독의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다. ‘ 그래도 특별전이니 한 편은 봐야지 ’ 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입장했다. 영화는 한 사람이 의자에 앉는 아주 간단한 내용이었다. 그런데 정말 아주 천천히 앉았다. 한 40분쯤 걸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얼마나 천천히 앉았을지 생각해보라. 사실 이 영화를 보다 살짝 눈을 감은 것 같은데 다시 눈을 떠도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이런 영화를 보고 굉장히 지루하고 재미없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아마 쉽게 잊혀지는 영화는 아닐 것이다. 나도 제목이나 감독의 이름은 잊었지만 의자 옆에 서 있다 천천히 앉던 그 인물의 이미지는 여전히 머릿속에 각인돼 있다.


우리는 매일매일 실험을 한다

사실 우리는 매일매일 실험을 한다. 출근길에 버스를 탈지 , 전철을 탈지 , 중간에 갈아타고 갈지를 정하는 것도 실험이다. 특히 늦게 나와 지각을 피해보려고 할 때 우리는 더 적극적으로 실험한다. 어차피 정해진 길로 가도 늦는다면 차라리 새로운 실험을 해보는 게 나으니 말이다. 그래서 실험은 도전적이고 적당한 긴장감과 스릴이 있다. 음식을 배달시킬 때도 마찬가지다. 앱을 들고 메뉴를 검색하면 수없이 많은 음식점들이 나온다. 잘 아는 곳도 있지만 모르는 곳도 있는데 결국 자신의 감과 순간의 선택으로 오늘의 한 끼를 실험하게 된다. 이처럼 실험은 다양한 선택이 있어 늘 새롭고 두근거림을 준다. 실패할 때도 있다. 그러면 다음에는 다른 길을 선택해볼 수 있다. 그렇게 새로운 실험이 다시 시작된다.

 

실험은 오히려 쉽고 재미있다

미디어아트 작품을 활용해 ‘ 실험 ’ 적인 체험형 전시를 한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인터랙티브 체험전이란 설명에 이목이 쏠린다. 그저 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이 작품을 체험한다는 것이 분명 실험적인데 즐거워 보인다.

실험은 문화예술뿐 아니라 놀이와도 결합한다. 한 도서관에서는 놀이와 과학실험을 결합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고 한다. 대상은 아이들이다. 실험이 어렵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아이들은 실험을 즐기면서 놀 줄 안다.

예전에 일본에서 열리는 한 상영회에 참석한 적이 있다. 아이들을 위한 섹션에 내러티브 없이 이미지와 음악으로만 구성된 실험작품이 포함된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프로그램을 기획한 분에게 물어보니 “ 실험이니까 아이들은 오히려 더 즐겁게 볼 수 있죠 ” 라는 답이 돌아왔다. 이해해야 할 내용이나 줄거리가 없고 이미지의 움직임과 음악만 들으면 되니 더 쉽다는 얘기다. 생각해보면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어느 상영회에서 실험작품을 틀었을 때 , 어른들은 이를 이해하기 위해 토론을 시작했지만 아이들은 변화하고 반복되는 영상을 그저 멍하니 몇 번이고 바라보고 있던 장면이 떠올랐다. 아이들은 작은 움직임과 리듬감만 있어도 그것을 충분히 자기방식대로 즐기고 있었던 것일 게다. 

 

편애하는 한 편의 실험 애니메이션을 꼽을 수 있길
독립 애니메이션 작품에서 만큼은 실험적이다란 말이 더이상 난해하다는 뜻으로 해석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양함이고 , 색다름이고 , 신선함이고 , 도전이고 , 적당한 긴장감과 스릴이라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어찌 보면 너무 일상적인 일이기 때문에 놓치고 있었던 근원과 본질을 건드려주는 것이 실험이라고 생각했으면 한다.
실험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감독들은 관객을 시험하기 위해 작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애니메이션이라는 형식이나 기법을 다양한 방식으로 실험하는 것이기 때문에 관객들은 감독들이 만들어낸 새로운 유희를 나름의 방식으로 편안하게 즐기면 된다.
우리가 저마다 좋아하는 음식이 다르듯이 다양한 실험 애니메이션을 모두 좋아할 순 없겠지만 두려워하지 말고 즐겁게 접근하다 보면 한 편쯤은 편애하게 될 것이다.

 

 


 

 

 

 

아이러브캐릭터 / 장진구 기자 master@ilovecharac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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