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포먼스 같은 애니메이팅의 순간들 _ 독립영화관 _ 송경원 감독

남주영 기자 / 기사승인 : 2021-05-18 16:2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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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만들고자 하는 것이 머리에 떠오르면 작업이 시작된다. 때로는 스톱모션이나 조에트로프로 , 때로는 그림을 그린 큐브를 돌리기도 하는 등 그 방식에는 제한이 없다. 애니메이팅을 위해 작업물을 테이블에 올리는 순간부터 할 일은 너무나 많지만 , 이를 가능하게 하기 위한 시도 하나하나가 마치 퍼포먼스 같아 즐겁다. 이런 과정들을 거쳐서 만들어진 송경원 감독의 작품들은 하나같이 독특하고 , 흥미롭다.





 

 

 

 

독자들에게 소개를 부탁한다. 애니메이션을 만들게 된 계기는? 송경원이라고 한다. 뭐라고 소개해야 할까? 애니메이션 감독이라고 하면 보통 극장이나 TV에서 방영되는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사람을 생각하는데 , 나는 그들과는 거리가 있다. 스톱모션 영상을 만들긴 하지만 믹스드 미디어스 등 미디어아트에 더 가깝다. 즉 내가 만든 영상들은 혼합된 매체 같은 것이다. 그러니 영상 아티스트에 가까울 것이다. 원래 전공은 동양화였지만 , 영상을 만들고 싶었다. 도시에 비해 문화활동이 비교적 적었던 제주도에서 자라서 애니메이션을 비롯한 영상매체가 내가 가장 쉽고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는 문화였다. 그래서인지 생각하는 것을 영상으로 표현하고 싶다는 열망이 컸다. 그래서 부전공으로 시각디자인을 배웠고 2D 애니메이션을 만들게 됐다. 할 일이 무척이나 많은 작업이었는데 , 그게 정말 재미있더라. 그후 미국의 칼아츠로 진학해 다시 애니메이션을 전공했다.

 

 

초기작인 < Principle of Cube > 와 < Neighbors > 를 소개해 달라
< Principle of Cube > 는 큐브에 그림을 그려 넣은 뒤 큐브를 돌려서 움직임을 만든 애니메이션이고 , 

< Neighbors > 는 블라인드에 그린 그림이 블라인드가 여닫 히면서 전환되는 애니메이션이다. 두 작품 모두 칼아츠에 입학하기 위한 포트폴리오로 만들었다. 처음에는 인더스트리 애니메이션을 준비하려고 했는데 잘 안 맞더라. 그래서 기획한 것이 애니메이션 기술을 쓰지 않는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것이었다. 재미있는 작업이었지만 , 이게 애니메이션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오히려 그 부분이 칼아츠 측에서는 흥미로웠나 보다. 

“ 이것도 애니메이션이라고 하면 애니메이션이지 ! ” 라는 느낌이랄까. 프레임은 다소 느슨하게 진행되지만 , 퍼포먼스 등이 내러티브와 결합됨으로써 애니메이션 콘셉트의 바운드리를 건드리는 작품이라는 평을 받기도 했다.

 

 

 

 

 


< Object Dream > 은 조에트로프 작업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 Object Dream > 은 대학원 과정에서 만든 첫 작품으로 , 자전거 바퀴 형태의 판에 부채꼴 모양으로 그려 넣은 이미지들이 돌아가며 애니메이션으로 전개되는 형태의 조에트로프 작업이다. 이미지가 어떻게 애니메이션이 되는지에 대해 배우고 고민하다 보니 실제 사물만으로 애니메이션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또 < Object Dream > 은 하나의 누드 골드버그 장치를 애니메이션으로 재해석한 작품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골드버그 장치를 정말 좋아한다. 어찌 보면 일부러 수많은 과정을 만들고 돌아가는 과정이 휴메니티와 창작성처럼 느껴진다. < Object Dream > 은 바퀴의 구심점을 출발점으로 삼았을 때 , 한 단계씩 움직임이 상승해 나가지만 맨 꼭대기에서는 결국 목표점과 같았던 공을 잡지 못하고 실패한다. 이런 장면들은 나 자신이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위해 매우 먼 길을 돌아가는 과정을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최근작인 < 제사 > 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작품의 기획 의도는?
< 제사 > 는 애니메이티드 다큐멘터리 작업으로 , ‘ 나 ’ 가 어른들이 해주는 설명을 듣고 제사상을 직접 차리는 과정을 묘사한 작품이다. 학생 시절 유엔 여성기구의 영상을 만드는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전 지구적인 여성 문제 중 하나를 택해서 1분 남짓의 영상으로 만드는 프로젝트를 학생들과 함께 진행하는 수업이었는데 이 작업을 하면서 내가 가진 여성으로서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핵가족인 우리 집은 가족끼리 있을 때에는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 제사 ’ 라는 이벤트에 먼 친척들이 모두 모이면 가족에게 각자의 전통적인 역할과 위치가 부여되고 , 지금까지의 균형이 미묘하게 어긋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구조적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것인데 , 제사를 통해 나타나는 이 지점이 무언가를 보여줄 거라고 생각했다.


< 제사 > 는 부조리를 다루면서도 등장인물의 목소리와 극의톤 등이 편안하게 느껴진다 

내가 비판하고자 했던 것은 한국의 현대 여성으로서 보는 전통이었다.
미국에서 거주하는 동안 아시안으로서 나의 전통을 알고 수행하는 것이 미국 주류사회에 동화되지 않겠다는 하나의 저항처럼 느껴졌다. 타국에 있었기 때문에 , 그곳에서 제사를 지내는 행위 자체가 가부장제를 벗어나 진정한 의미의 전통을 되찾아오는 행위가 될 수 있었다. 즉 내가 그랬던 것처럼 이 영상을 보는 이들도 제사를 다양한 입장에서 봤으면 했다. < 제사 > 는 가부장제를 비판하는 작품이지만 , 가부장의 역할에 속하는 아버지를 악마화하고 싶지 않았다. 너무 단순 해져버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웃음을 줌으로써 엄숙함과 형식적인 부분을 타파하고자 했다. 

결국 < 제사 > 는 부조리를 다루되 부조리의 반대 입장에 서는 것은 지양하고 부조리에 대해 다양하게 얘기하고자 하는 시도였다.


다양한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을 작업했는데 스톱모션의 어떤 점에 매력을 느끼는지? 어찌 보면 2D 애니메이션은 종이와 펜만 있으면 세상의 물리법칙이나 정해진 형태로부터 자유로워지는 , 상상력만으로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작업이다. 그에 비해 스톱모션은 그렇게 할 수 있긴 할 테지만 , 그것을 가능하게 하기까지는 많은 제약이 있다. 그러다 보니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 많은 것을 시도해야 한다. ‘ 안 되네 , 그럼 이걸 이렇게 해볼까 , 저렇게 해볼까 ’ 하는 게 재미있다. 그리고 무척 즉흥적이어야 한다는 점도 마음에 든다. 계획을 모두 세워뒀다 해도 막상 작업을 시작하면 계획대로 되지 않는 부분이 있는데 , 그럴 때에는 즉흥적인 대처로 융통성 있게 해야만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보니 애니메이팅을 하는 순간이 마치 퍼포먼스를 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런게 모두 재미있다.

 

 

 

 

< Object Dream >

 

< 도깨비 >

 

 

 

한국의 독립 애니메이션 시장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아직 많은 작품을 만들지 못했고 , 경험도 적어서 뭐라 말하기 힘든 것 같다. 다만보다 다양한 이야기가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타국에서 작업한 경험이 있어서인지 , 한국에 돌아와보니 한국 사람만이 만들 수 있는 작품들이 많이 눈에 띄더라. 좋은 작품도 많았지만 , 흐름 같은 것이 바로 읽히기도 한다. 때로는 너무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것만 같아서 아쉽다. 비슷한 소재를 다루더라도 시선이라든지 , 사건을 바라보는 방향을 조금만 달리하면 더 신선했을텐데 하는 부분들이 있었다. 앞으로 내용적으로도 , 테크닉적으로도 다양한 작품을 만날 수 있었으면 한다.


향후 작품 계획은? 흥미롭게 생각하고 있는 것들이 몇 가지 있다. 예를들어 , < 제사 > 를 만드는 동안 음식을 다루는 스톱모션 작업이 많다 보니 음식쓰레기가 어마어마하게 많이 나왔다. 이게 과연 지속가능한 애니메이션 방법인가 고민됐다. 스톱모션 작업을 하되 , 제로 웨이스트에 도전할 수있을까 , 그게 가능할까 싶다. 아마 하게 된다면 재미있는 작업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러 가지 생각을 하고 있지만 아직 다음 작품으로 뭘 해야겠다고 정한 것은 없다. 다만 할 수 있으면 계속 작업하면 좋겠다. 또 작업하면서 재미있는 사람들을 만나왔는데 , 앞으로도 계속 새로운 사람들 , 재미있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싶다. 아무튼 작업을 계속하면서 행복하게 살 수 있으면 좋겠다. 독립 작가로서 살아지는 대로 힘닿는데까지 한번 해보겠다. 안 되면? 제주도로 돌아가서 농사지어야지. (웃음)

 

 

 

 

 

 


 

 

 

 

 

 

 

 

 

 

아이러브캐릭터 / 남주영 기자 master@ilovecharac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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