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에 남은 고우영 화백의 DNA를 꼭 기억하세요, 주식회사 고우영 신명환 대표

장진구 기자 / 기사승인 : 2023-11-07 08: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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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2005년 별세한 한국 만화사의 거목 고우영 화백의 독특한 작품 세계를 보전하고 알리기 위한 활동이 시작된다. 만화가이자 설치미술가로서 다방면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신명환 작가는 고 화백의 아들 고성언 씨와 함께 ‘주식회사 고우영’을 설립, 작품에 남은 거장의 DNA를 후세가 기억하고 이어갈 수 있도록 하는 다채로운 사업을 추진한다.

 


고인과 인연이 특별했나?

어릴 적부터 좋아하던 만화가였는데 사실 그렇게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다. 굿데이란 스포츠신문이 창간할 때 함께 만화를 연재한 적이 있었다. 1년 정도 연재하는 동안 직접 뵌 적은 없으나 격려와 응원 메시지를 받았던 기억이 있다. 항상 그분의 만화를 즐겨 봤고 존경했기에 얼굴을 맞대고 있지 않아도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회사를 만들기로 결심한 배경이 궁금하다

평소 친분이 있던 홍승우 작가의 소개로 고인의 저작권을 관리하며 화실을 운영하던 고성언 씨를 알게 됐다. 아버지의 작품으로 전시회를 열고 싶어 이를 맡아줄 적임자를 찾던 차에 날 만나게 됐다고 하더라. 그래서 2015년 부천시 한국만화박물관에서 열린 고우영 작가 특별전의 큐레이터를 맡으면서 그와 인연을 맺게 됐다. 이전부터 신문수, 이정문, 이두호, 이상무 화백 등 원로 만화가 전시회를 많이 해봤는데 작품 관리나 보존이 허술하다는 걸 느꼈다. 그래서 고우영 화백의 작품 세계를 대외적으로 널리 알리고 체계적으로 사업을 이끌 공식 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여러 논의 끝에 회사를 꾸리게 됐다.

 


이런 시도는 만화계에서 처음 아닌가?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이다. 벨기에를 대표하는 만화 스머프는 극장판 3D 애니메이션과 실사 영상으로도 나왔다. 국내에도 스머프의 전시 판권을 사 온 곳이 있다더라. 계속 새로운 콘텐츠가 나오면서 수십 년 전에 등장한 캐릭터가 현재에도 여전히 생명력을 갖고 부활하고 있다. 프랑스의 오래된 만화 행사인 앙굴렘 국제만화페스티벌에서도 해마다 원로 작가를 초대해 전시회를 열고 동판이나 기념 도록도 만든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고 화백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만화가로서 해외에 초대받을 만한데도 제대로 된 번역본 하나 없는 게 현실이다. 일본 등 외국에 가보면 유명한 작가의 자료가 잘 보존되고 작품을 연구하는 사례도 많은데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아 걱정이 앞섰다. 작품을 활용해 장사가 잘되길 바라기보다 작품을 지키고 보전해야 한다는 생각이 컸다. 그래서 원로 작가나 작품이 우리 곁에 오래오래 살아 숨 쉴 수 있도록 해외 사례를 참고해 여러 사업을 펼쳐보려고 한다. 

 

 

가장 높이 평가받는 고인의 업적은 무엇인가?

필체는 물론이거니와 원전을 나름의 방식으로 재해석한 각색의 묘미다. 해학적인 스토리텔링이 일품이다. 해외에서도 유사 사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독보적이라 할 수 있다. 십팔사략이란 작품을 보면 원전의 이름만 빌려왔을 뿐 스토리나 설정을 새롭게 각색했기에 고우영표 만화라는 걸 누구나 단박에 알 수 있지 않은가. 그림과 이야기가 차별화됐다. 1978년 일간스포츠에 연재한 삼국지가 지금까지 출간돼 나오는 건 유행을 타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만큼 어느 시대에나 통하는 독특함이 묻어 있어 고인의 작품이 예나 지금이나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어떤 프로젝트를 추진할 계획인가?

당장 돈을 벌려고 회사를 차린 건 아니다. 작품의 가치와 고인의 존재를 유지시켜나가는 게 주목적인 만큼 요즘 세대에게 고 화백을 알릴 수 있는 복합 문화 공간을 마련해보려고 한다. 무엇보다 요즘 친구들이 고 화백과 그의 작품을 못 본다는 게 가장 안타깝다. 고우영이란 브랜드 가치를 이어가게 하는 게 목표다. 자신만의 정체성이 뚜렷한 고우영을 장르화해 보려고 한다. 생물학적 DNA는 자식에게 있지만, 그가 남긴 작품의 DNA를 우리 만화계에 심어주고 싶다. 기념관이 아니라 생명체로 계속 이어가게 하는 것이다. 작품 복간은 출판사가 이미 진행하고 있으니 2차적 상품을 다변화해 고인을 만나고 감상하는 문화를 만들어가겠다. 이 사업이 성공하면 제2, 제3의 성공 사례가 나올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2025년은 고인이 떠난 지 20년 되는 해다. 이를 위해 자료를 디지털화해 정리하고 기념 전시도 준비하겠다. 유럽, 영미권 나라와 함께 기념집을 만들어 세계 독자들에게도 알려야겠다는 생각도 있다.
 

후세가 고우영 화백을 기억해야 할 이유를 꼽는다면?

독특한 시각의 작품이 나오려면 적잖은 시간이 필요하다. 수십 번을 고치고 다시 그려야 비로소 탄생한다. 요즘 같은 제작 환경이나 만화를 대하는 시선을 보면 앞으로 이와 같은 작품이 또 나올 수 있을까란 생각이 든다. 고 화백이 작품을 바라보는 생각과 만드는 태도를 후세가 기억하면 좋겠다. 그의 작품을 보고 우리나라에 이런 만화가가 있었다는 걸 알고,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창작자를 떠나 지금을 사는 현대인들이 그분의 감수성을 이해하고 살았으면 좋겠다.

 

 

아이러브캐릭터 / 장진구 기자 master@ilovecharac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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