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배경을 소재로 한 저작물의 실질적 유사성 _ 사례로 풀어보는 캐릭터 저작권

장진구 기자 / 기사승인 : 2021-09-22 08: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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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사례

갑은 2014년 출간한 A라는 책의 저자다. 이 책은 세종이 신미대사에게 도움을 받아 훈민정음을 창제한다는 내용을 소재로 한다.
을은 영화제작사다. 세종이 신미대사의 도움을 받아 훈민정음을 창제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 B의 시나리오를 쓴 공동 저작자 중 1명이다.
영화가 공개된 후 갑은 “ 을의 시나리오가 내가 먼저 창작한 서적의 2차적저작물 작성권을 침해했다 ” 며 을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이에 을은 “ 내 시나리오와 갑의 책은 내용이 유사하지 않아 의거관계가 인정되지 않고 구체적인 표현형식도 실질적으로 비슷하지 않다. 따라서 시나리오는 책의 2차적저작물이 아니다 ” 라고 맞섰다.
법원은 어떻게 판단했을까.
(칼럼은 서울중앙지방법원 2021. 2. 5. 선고 2019가합541129 판결 내용을 사례화한 것이다)

 

해설

실질적 유사성 판단 법리
저작권침해가 성립하려면 우선 주관적 요건으로 양 저작물 사이에 의거관계가 있어야 하고 , 객관적 요건으로는 양 저작물 사이의 실질적 유사성이 인정돼야 한다.
선행 저작물이 대외적으로 널리 공표된 경우 , 후행 저작물과 선행 저작물이 실질적으로 유사하다면 의거관계가 추정 될 수 있으므로 실질적 유사성 여부가 주요 쟁점이 되는 사례가 많다.

실질적 유사성 판단을 비교하는 대상에 대해 법원의 판례는 “ 저작권의 보호 대상은 구체적으로 외부에 표현한 창작 형식이고 표현돼 있는 내용 , 즉 아이디어나 이론 등의 사상 및 감정 그 자체는 설사 그것이 독창성이나 신규성이 있다하더라도 원칙적으로 저작권의 보호 대상이 되지 않으므로 저작권침해 여부를 가리기 위해 두 저작물 사이에 실질적 유사성 여부를 판단하려면 창작적인 표현형식에 해당하는 것만을 갖고 비교해야 한다 ” (대법원 98다46259 판결 참조) , “ 소설 등에 있어 추상적인 인물의 유형 혹은 어떤 주제를 다루는 데 있어 전형적으로 수반되는 사건이나 배경 등은 아이디어의 영역에 속하는 것들로서 저작권법의 보호 대상이 아니다 ” (대법원 99다10813 판결 참조)라는 판단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위 사건에서는 세종이 신미대사의 도움으로 훈민정음을 창제한다는 동일한 소재로 양 저작물이 창작돼 인물관계와 다루는 주제가 상당히 유사한 점은 인정된다. 하지만 추상적인 인물의 유형이나 주제 등은 아이디어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므로 실질적 유사성의 비교 대상이 될 수 없다.
만약 저작권법이 이러한 아이디어의 영역을 보호해 선행 저작물에 대한 독점배타적인 저작권을 인정한다면 , 동일한 소재에 대한 다양한 창작적 표현활동을 억제해 결국 문화산업 발전의 저해를 초래할 것이며 저작권법 목적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다만 위 사건과 같은 어문저작물에 있어 실질적 유사성 판단에 대한 판례는 포괄적 , 비문언적 유사성과 부분적 , 문언적 유사성이란 개념을 통해 이들 중 어느 하나가 있다면 실질적 유사성을 인정하고 있다.

포괄적 , 비문언적 유사성은 작품 속의 근본적인 본질 또는 구조를 복제함으로써 전체적인 유사성이 인정되는 경우를 말한다. 부분적 , 문언적 유사성은 작품 속의 특정한 행이나 절 또는 기타 세부적인 부분이 복제됨으로써 양 저작물 사이에 문장 대 문장으로 대칭되는 유사성이 인정되는 것을 의미한다.
부분적 , 문언적 유사성이 인정되면 이는 복제의 수준이므로 창작적인 표현임을 전제로 한다면 상대적으로 손쉽게 유사성을 판단할 수 있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다툼은 포괄적 , 비문언적 유사성의 인정 여부를 놓고 벌어지는 것이다.
위 사건의 시나리오와 같은 극적 저작물은 등장인물과 작품 전개과정이 결합해 일정한 배경하에서 만들어내는 구체적인 사건들의 연속으로 이뤄진다. 이러한 연속적인 사건들이 유사하더라도 아이디어 영역인 주제 등을 다루는 데 있어 전형적으로 수반되는 사건 , 배경 , 필수 장면 등의 포괄적 , 비문언적 유사성은 인정되기 어렵다. 반면 아이디어 차원을 넘어선 표현형식 등이 유사하다면 포괄적 . 비문언적 유사성이 인정될 수 있다.

 

실질적 유사성 인정 여부
위 사건에서는 부분적 , 문언적 유사성에 해당하는 대칭적 문장의 존재는 인정되지 않았다.
포괄적 , 비문언적 유사성에 관해 법원은 “ 양 저작물의 소재 및 역사적 배경이 같지만 이는 아이디어의 영역으로 저작권보호 대상이 아니다 ” 고 판단했다.
또 줄거리 등 사건 전개의 유사성에 대해선 전체 줄거리를 대비했을 때 구체적인 표현형식이 유사하지 않고 , 세종이 신미대사를 만나게 된 경위에 대한 기술도 서로 다르며 , 훈민정음의 창제 과정의 전개도 다르다고 봤다.

등장인물 설정의 경우 세종, 신미대사 , 소현황후 등은 같지만 책은 신미대사의 일대기를 연대기적으로 나열한 반면 , 시나리오는 훈민정음 창제 과정에 집중해 주요 인물들의 개성이 갈등구조와 긴장감 속에서 드러남에 따라 양 저작물의 등장인물에 대한 구체적인 표현방법이 다르다고 결론 지었다.
즉 , 일부 등장인물이 같고 성격이 유사하게 표현된 것은 역사적 사실이나 설화에 기초한 공통의 인물 , 소재를 사용하는 것에 따른 자연적 귀결로서 훈민정음 창제라는 역사적 사실을 그리는 소재에서 수반되는 전형적이고 표준적인 표현에 불과해 저작권보호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법원은 “ 양 저작물은 아이디어의 영역에 속하는 소재 , 인물의 설정 등에서 일부 유사하나 이는 저작권법의 보호 대상이 아니며 구체적인 창작적 표현형식도 유사하지 않아 실질적 유사성이 있다고 볼 수 없다 ” 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시나리오는 책의 2차적저작물이 아니라 완전히 별개의 독립적인 저작물로 인정돼 갑의 저작권침해정지청구권 및 손해배상청구권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아이러브캐릭터 / 장진구 기자 master@ilovecharac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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