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애니메이션업계를 떠나는 이들이 늘고 있다. 불투명한 비전, 강도 높은 노동량, 낮은 처우 탓에 애니메이션의 길을 선택하는 이들도 줄고 있다. 그럼에도 어디선가 오늘도 묵묵히 구슬땀을 흘리며 작품을 만들기 위해 열성을 다하는 PD들이 있기에 한국 애니메이션의 미래는 여전히 밝다. 현장의 PD들을 만나 애니메이션을 향한 그들의 꿈과 열정, 그리고 장인정신의 의미를 되새겨본다.
간략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린다
애니메이션업계에 들어온 지 15년째를 맞는다. 컴퓨터 관련 학과를 나왔는데 애니메이션을 워낙 좋아해서 2005년 즈음 미국에 건너가 따로 배웠다. 픽사 스튜디오 출신들이 가르치는 아트스쿨을 마치고 돌아와 애니메이터로 일을 시작했다.
4∼5년 정도 애니메이터를 하다 보니 PD직에 끌렸다. 그러다 마침 좋은 기회를 얻어 좀비덤 시즌2의 제작을 이끌면서부터 PD로 일하고 있다.
지금까지 참여한 작품 중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은?
극장판 스쿠비 두, TV 시리즈 쿵푸팬더 등 여러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애니작에 온 이후에는 좀비덤, 시간여행자루크, 인:앱, 내 친구 반인반어, 꼬미마녀 라라, 스페이스 샤먼헌터 등 애니작이 만드는 모든 작품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고 있다. 이 중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을 꼽으라면 단연 좀비덤 시즌2다. 당시에는 PD가 뭘 하는지 잘 몰라 그저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이었는데 그때 정말 많은 걸 배웠다. 이정우 감독님이 무척 애쓰셨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걸 함께하며 알려주셨다. 밤을 새워가며 기획하고 스토리를 짜는 게 정말 즐거웠다. 몸이 힘든 줄 모를 정도로 모든 과정이 재미있었다. 힘들 땐 술도 많이 먹었다. 그래도 포기하려는 마음보다 문제를 해결하는 좋은 방법이 없을까에 대한 고민이 더 컸다. 지금도 그렇지만 좀비덤을 만드는 동안에는 작품에 거의 빠져 살았던 것 같다.
가장 뿌듯했던 순간, 그리고 아쉬운 순간을 떠올린다면?
작품이 인정받았을 때 가장 뿌듯하다. 애니작은 상복이 많은 회사다. 작품마다 여러 곳에서 상을 많이 받았다. 시상식을 보면 작품을 만든 제작진의 한 사람으로서 노력을 인정받는 것 같아 기쁘고 보람차다. 누구나 그렇지만 애니메이션을 만들 때 모든 걸 쏟아붓는다. 그런 작품이 대중의 관심을 받아 인기를 얻는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공든 작품이 폭발적인 인기를 얻지 못한 게 내심 아쉽다. 흥행이 기대에 못 미쳤다. 누구나 단박에 알 만한 인기작을 만들었다고 뽐내고 싶은 마음이 큰데 아직까지는 그런 작품을 탄생시키지 못해 아쉬움으로 남는다.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동력은 무엇인가?
애니메이션을 사랑하는 마음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가장이라는 무게감과 책임감이지 않을까.(웃음) 사실 애니메이터로 일할 땐 돈을 많이 주는 게임사로 가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런데 PD가 되고 나서 하나의 작품을 전체적으로 관리하고 하나하나 만들어나가는 일이 굉장히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기획하면서 전체적인 설계도를 그리고 뭔가를 끝까지 만들어내는 짜릿함을 즐기는 것 같다.
요즘 애니메이션업계를 바라보는 시선이 궁금하다
애니메이션을 하겠다고 온 젊은 친구들은 다른 업종에 비해 돈을 많이 받을 수 없다는 걸 이미 알고 있다. 이들은 애니메이션이 좋아서 이곳에 발을 들인다. 하지만 이들이 떠나는 이유는 뭘까. 일이 힘들어 못 버티는 경우도 있지만 자신이 생각했던 작품을 만나지 못한 데 따른 좌절감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여러 작품을 만들지만 다 비슷비슷하다 보니 따분하고 싫증 나는 거다. 완구 판매를 위한 영·유아용 애니메이션만 만들다 보니 이런 문제가 나타나는 것 같다. 좀비덤 같은 슬랩스틱 코믹물, 루크 같은 역사물 등 애니작처럼 다양한 주제로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만드는 곳은 많지 않다.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하는 회사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루크를 만들 때 애니메이터마다 이런 퀄리티와 이야기를 만드는 데 흥미를 느꼈다고 하더라. 즉 작품이 좋으면 젊은 친구들에게 큰 동기를 부여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완구와 결합하지 않고 작품 자체만으로 흥행한 작품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게 매우 안타깝다. 더핑크퐁컴퍼니의 숏폼 콘텐츠 씰룩의 유튜브 구독자가 200만 명을 넘었더라. 완구나 상품과는 상관없이 순수하게 콘텐츠만으로 단기간에 인기를 얻은 사례여서 부러울 정도였다. 애니메이션만으로 사랑을 듬뿍 받는 사례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앞으로 해보고 싶은 작품이 있나?
대중에게 사랑받는 작품을 하고 싶다. 굳이 선호하는 장르를 나누려고 하진 않겠다. 애니작에서 여러 장르의 작품을 만들어봤기 때문이다. 현재 시즌1의 시나리오가 나온 스페이스 샤먼헌터는 성인을 타깃으로 한 작품이다. 여태 해보지 않았던 거라 기대가 크고 의욕도 넘친다. 지금은 특정 장르를 고집하기보다 흥행작을 만들어보고 싶은 마음이 크다.
아이러브캐릭터 / 장진구 기자 master@ilovecharac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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