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제작을 위해 투자받고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한 번은 듣게 되는 말이 타깃이라는 단어다. 만드는 이의 욕심은 누구나 볼 수 있는 영화를 만드는 것이지만 타깃이라는 말을 통해 관객을 한정하고 그 이유를 붙인다.
그렇다면 ‘3학년 2학기’는 누가 봐야 할까. 누구에게 이 영화를 보라고 해야 할까. 자신의 직업 태도와 동기에 대해 각성하게 하는 이 작품을, 영화의 주인공들처럼 ‘3학년 2학기’를 보내는 청소년들은 어떻게 바라볼까.
이 영화야말로 생존 편향을 넘어 진실한 대화를 나눌 수 있게 해주는 소중한 영화가 아닐까.
교복 위에 작업복을 걸친 예비 노동자 청소년들을 보며 생각했다. 과연 지금의 청소년들이 미래의 노동, 직업, 삶을 고민하며 이 작품을 볼 수 있을까. 혹은 정작 그 아이들과 부모님은 드라마 ‘스카이캐슬’처럼 특수한 계층과 상황의 이야기가 더 극적이고 자극적인 콘텐츠로서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을까.
나 또한 누군가에게 ‘뽑아달라’고 하던 시기를 지나 누군가를 채용해야 하다 보니 마음속에 불편함이 쌓여 왔다.
그래서인지 스튜디오를 찾아오는 청년들과 마주 앉을 때 이해라는 단어, 응원이라는 말, 도움이 된다라는 표현을 꺼낸다. “친절하라, 만나는 사람 모두가 힘든 싸움을 하고 있다”라는 문구를 적어두고 늘 최선을 다하지만 그 사람이 자리를 떠나고 난 뒤엔 늘 마음이 무거웠다.
꿈이라고 불러야 할지, 직업이라고 해야 할지, 목표라고 해야 할지. 무언가를 하긴 해야 하기에 고민하는 청소년들, 그리고 지금도 그 경계에 있는 직장인들. 그래서 생기는 일, 그리고 그 과정에서 놓치는 일을 생각하게 된다.
그렇기에 ‘3학년 2학기’는 지금 나에게 꼭 필요한 영화였다. 그렇기에 함께 보고 이야기하자고 건넬 수 있는 영화다. 스태프와 함께 보며 이 영화의 대사와 상황을 통해 앞으로 해야 할 일, 할 수 있는 일을 많은 사람과 얘기하고 내 직업의 마무리 또한 생각하게 된다.
영화는 직업계 고등학교 3학년 2학기를 배경으로 한다. 대학 진학을 포기한 학생의 3학년 2학기, 대학 입시를 앞둔 학생의 3학년 2학기.
이 작품이 제목으로 정한 이 말, 그리고 그 시기가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지 새삼 깨닫는다.
현장 실습을 통해 주어지는 것들이 있다. 병역 특례, 정규직, 대학 추천. 도제 시스템이 기본이 된 노동 환경 속에서 ‘다들 바쁜 것 같아서…’라는 이유로 궁금한 것을 묻지 못해 주인공 창우는 매번 혼이 난다. 나도 했던 말 같고 ‘지금 바빠서’라는 말로 위치가 바뀐 것도 같다.
그리고 안전 장비가 갖춰지지 않은 위험한 현장에 익숙한 노동자들은 “조심해라”라는 말을 습관처럼 가르친다.
영화를 보는 내내 이 “조심해라”라는 말이 마음을 졸이게 했다. 현장으로 아이들을 내보내는 선생님들도 그저 “조심해”라는 당부 외에는 해줄 말이 없고 너무 무심히 던지는 말 같지만 달리 어떻게 관여할 방법도 없다. 그렇게 익숙해지고, 그렇게 위험은 곁에 있다.
월급이 들어왔다며 일터에서 휴대폰으로 계좌를 확인하는 모습은 우리 삶이 그 돈을 벌기 위해 존재하는 것 같고, 노동의 대가는 찰나의 기쁨만 주고 사라질 것이고 길게 버거울 것임을 안다.
"위험한 일은 외주 업체에서 한다"는 관리자의 말. 그리고 그 일을 맡은 하청의 하청 공장은 늘 위험하다.
한편 어릴 때 아버지를 여읜 창우의 가족은 평범하다. 평범하다는 것은 작은 어려움이 끊임없이 있다는 뜻이다. 전셋집을 구해야 하고, 동생의 학원비가 부담되고, 어린 동생은 치킨조차 평범 이하를 선택해서 먹어야 한다.
그 어려움을 버티게 하는 건 ‘착함’이다. 모나지 않은 착함이라는 무기, 그 착함이 청소년을 이른 노동자로 만들었다.
상처가 나도 숨겨야 하고, 아무 요구도 하지 못하며 숙련된 동료 성민과 비교당하는 사이 창우는 용접 기술을 배우며 사수에게 인정받는 계기를 맞는다.
그리고 영화는 그렇게 위험한 현장에서 관객의 마음을 졸이게 하면서도 함부로 ‘다른 꿈을 꿔보라’고 말 건넬 틈조차 주지 않은 채 끝이 난다.
예체능을 꿈꾸는 이들은 근사한 사인을 먼저 만드는 경우가 있다. 언젠가 자신의 가치를 표시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창우는 사인이 없다며 언제나 자신의 이름을 적는다. 수많은 선택의 순간을 지나 지금 이 일을 해오고 있다. 그러다 문득 노동 현장에 있던 시절로 돌아가 질문을 던진다.
“저를 좋게 봐줄까요?”
창우가 무심히 던진 이 말은 우리 모두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것임을 이야기하는 듯했다.
영혼 없는 칭찬은 아이들도 눈치챈다. 어린 시절 내가 노동 현장을 떠난 이유는 어떤 칭찬이 진심이었기 때문이었다.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는 일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굳은살 가득한 노동자의 손에서 건네진 진심 때문이었다.
창우에게 전해진 합격이라는 말은 너무 무심하다. 청소년의 첫 번째 직업이 농담처럼 건넨 그 한마디로 결정된 것이다. 비록 의도 없는 말이었을지라도, 어른의 말에는 예의와 의도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의도 앞에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
또 청소년 노동자 다혜. "사람이 일하다가 죽을 수 있다니"라는 대사를 말하는 배우 김소완의 연기는 아이가 바라보는 납득할 수 없는 직업의 모습을 잘 표현하였다.
마지막까지 “누군가 다치지 않을까”하는 이 조바심은 작업 편의를 이유로 안전 펜스를 설치하지 않은 작업장에서 무심한 표정으로 서 있는 창우의 모습과 맞물려 더 무겁고 답답하게 다가왔다. 이 감정의 깊이는 배우 유이하의 연기였기에 가능했다.
창우 어머니 역할 또한 특별하다. 현실적인 영화 속에서 오히려 가장 현실적이지 않게 느껴져서 고마운 엄마라고 해야 할까. 영상물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극단적인 어머니와 달리 노동에 편견이 없고 구성원으로서 대하는 어머니는 과연 좋은 분일까, 아니면 무심한 분일까.
학생들의 모습은 담담하고 고요하다. 어른들 또한 소리를 높이지 않는다. 이 모든 게 정말 일상처럼 흘러간다. 누구 하나 외치지 않기에, 오히려 영화를 본 관객과 각 현장에서 책임의 위치에 있는 이들이 각성하고 목소리를 내길 바라는 듯하다.
진로에 대한 깊은 고민 속에서 불안과 아쉬움, 그럼에도 어른으로 가는 길목에서 자신의 역할을 하고 싶은 학생들의 마음이 느껴진다.
이들을 통해 사회에 첫걸음을 내딛는 학생들에게 그동안 내가 건넨 말들은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 되묻게 된다.
대한민국을 들썩이게 하는 대학수학능력시험. 어디를 가도 보이는 현수막과 방송, 재능을 일찍 발견해 뒷받침받고 기회를 얻는 이들, TV 속 아이돌마저 이른바 금수저라는 배경이 부러움과 능력으로 여겨지는 환경. 그리고 그 밖에서, 고졸 취업으로 벌써 노동이 일상이 되어버린 아이들이 있다.
이들은 한 번 실패하면 그대로 끝이라는 현실 속에서 “될대로 되겠지”라는 말조차 사치로 느껴진다. 학교마다 자랑스럽게 걸린 ‘○○대학 합격 ○명’이라는 현수막이 늘 보기 불편하다.
커다란 체육관에서 도화지를 펼쳐 그림을 그리는 학생들. 그 모습을 경쟁률로 자랑하는 학교의 태도가 싫다. 그리고 그 불편한 풍경 속에, 나도 그림 그리며 긴장해 방해가 될까 숨소리도 조심하는 기분을 느낀다.
그 아이들에게 마음을 건네고 사회적 제도를 통해 행복의 가치를 올려주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이 영화는 바로 그런 세상의 사람들, 그런 세상을 꿈꾸는 이들을 타깃으로 한다.
“부모를 잘 만나지 못해도, 공부를 못해도, 타고난 재능을 찾지 못해도, 꿈이 없어도, 엄청난 노력을 하지 않아도, 빛나는 성취를 이루지 못해도, 운이 좋지 못해도, 노동하며 살아가는 사람 대부분이 누구나 인간으로서 평등한 권리를 인정받으며 살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특출한 면이 없으면 벌 받듯 사는 걸 스스로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는 것 같아요. 극소수만 행복을 누릴 자격이 있는 것처럼 되어가는 게 마음이 아프고 아이들이 그걸 견뎌야 한다는 게 가슴 아픈 현실인 것 같아요. 그런 생각을 하며 영화를 만들었던 것 같아요.”
감독 이란희
안재훈 감독
<소중한 날의 꿈>, <아가미>와 한국 단편 문학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메일꽃·운수 좋은 날 그리고 봄봄>, <소나기>, <무녀도>를 개봉했다. 현재 장편 애니메이션 <영웅본색2>, <시작하는 나의 세계> 연출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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