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간 대학이 아니라 성우동아리를 다녔다고 봐야죠 _ 애니메이션 그 목소리 _ 성우 석승훈

장진구 기자 / 기사승인 : 2022-07-08 11: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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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단순 반복하는 걸 못해서 그런지 뭔가를 외우는 건 힘들었어요. 당연히 공직 시험도 준비했지만 책보다 대본을 연구하는 게 훨씬 좋았어요. 그래서 졸업 후 성우를 포기하고 남들처럼 직장에 다녔더라도 아마추어 성우 모임이나 극단 같은 곳에 나갔을 거예요.” 고위 공직자를 꿈꾸기보다 연기자의 길을 택했다. 애써 취미라고 치부했던 일을 결국 직업으로 선택한 이 남자, 성우 석승훈이다.

간략한 소개를 부탁드린다 2015년 KBS 40기 공채 출신 성우다. 어릴 때부터 만화책이나 애니메이션을 즐겨 봤고 게임도 오타쿠 수준으로 좋아한다. 소설책도 많이 보는데 책을 모으는 것이 취미일 정도다. 책장이 꽉 찬 모습을 보는 게 소소한 즐거움이다. 최근 이사했는데 추려보니 800 권 정도 소장하고 있더라.


성우라는 직업을 택한 계기가 있었나? 초등학생 때 게임을 하고 있었는데 자막과 함께 우리나라 사람의 목소리가 나오더라. ‘어제 저녁밥 먹을 때 봤던 만화에서 나오는 그 목소리와 똑같은데?’ 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때부터 성우의 매력에 푹 빠졌고 학창시절 한국어 더빙판 애니메이션, 영화 등을 빠짐없이 챙겨 보곤 했다. 대학 전공으로 행정학을 선택했는데 적성에 맞지 않아 고민이 깊어질 무렵 마침 전국 대학 중 두 번째로 결성된 성우동아리가 눈에 들어왔다.
군 제대 후에도 동아리에서 왕성하게 활동했지만 그때까지도 성우는 취미의 영역에 머물러 있었다. 그런데 길라영(KBS 38기), 김연우(대원방송 4기) 등 동아리 선배들이 진짜 성우가 된 모습을 보고 나도 결심하게 됐다. 본격적으로 준비한 지 1년 4개월여 만에 KBS에 합격했는데 동아리 활동이 많은 도움이 됐다. 라이브 더빙 공연을 준비하고 실연하는 과정에서 무대에 설 수 있는 자신감과 연기 실력이 늘었던 것 같다.
 

대표작을 소개해달라 애니메이션으로는 기동전사 건담에서 악역으로 나오는 장군 마 쿠베, 드래곤 퀘스트: 다이의 대모험에서 마법사 포프, 헬로카봇에서 스크류 붐바, 극장판 천재 추리 탐정 셜록홈즈에서 주인공 셜록 홈즈 등의 캐릭터를 연기했다. 실사 드라마로는 디즈니플러스의 하이 스쿨 뮤지컬 시리즈에서 무대연출가 칼로스, 게임에서는 쿠키런: 킹덤의 에클레어맛 쿠키를 맡기도 했다.

 


자신의 목소리가 어떤 캐릭터를 가장 잘 표현한다고 생각하나? 까불거리거나 주인공 옆에서 분위기를 띄우는 조연 캐릭터를 주로 맡았다. 실제로 그런 캐릭터를 연기하는 게 재미있다. 또 왠지 모르겠지만 동성애자 캐릭터 연기도 많이 했다.(웃음) 행동이 가볍고 까부는 연기는 목소리 톤을 넓게 쓸 수 있지만 진중한 연기는 상대적으로 좁다. 제한된 음역으로 여러 감정을 표현해야 하기에 연기의 난도가 높다고 할 수 있다.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할 수 있는 게 내 장점인데 평소 해보지 못한 역을 연기하고픈 갈망도 있다. 그래서 무게감 있고 차분하면서도 소름이 돋을 정도로 날카로운 목소리를 내는 악당 보스 같은 역할을 해보고 싶다.


가장 애착이 가는 캐릭터는? 판타지소설이 원작인 오디오 드라마 눈물을 마시는 새의 갈로텍과 주퀘도 역이다. 하나의 몸에서 2개의 영혼이 교차하는 캐릭터인데 1인 2역을 소화했다. 사실 원작자인 이영도 작가의 작품을 모두 소장할 정도로 팬이었는데 이러한 역이 내게 주어진 건 행운이 었다. 좋아하던 작품의 캐릭터를 맡으니 이입이 더 잘돼 애착이 많이 남더라.


성우가 갖춰야 할 중요한 요소? 성우는 소화해야 할 역할도 많고 할 수 있는 일도 다양하다. 그래서 성우 지망생들에게 애니메이션만 보지 말고 신문 사설이나 소설책 등도 읽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고 당부한다. 이를 하루에 1시간 정도 매일 꾸준히 반복하다 보면 식견이 넓어지고 생소한 분야도 낯설지 않게 느껴질 것이다. 성우가 되고 나서도 이런 꾸준함을 유지하면서 더욱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역할을 맡을지 모르기에 다방면으로 알고 있다면 주어진 역할에 적응하기 훨씬 수월하다. 예습을 하고 안 하고의 차이라고 보면 된다.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막 성우가 됐던 때였다. 단체 녹음 현장에는 성우들의 신장에 따라 높낮이가 다른 마이크 2대가 설치된다. 난 키가 큰 편이라 높은 마이크를 쓰려고 했지만 다른 선배들이 이미 차지하고 있던 탓에 낮은 마이크를 이용해야 했다. 그런데 녹음 도중 높이를 고정하는 나사가 꽉 채워지지 않아 마이크가 점점 내려가더라. 지금이라면 “마이크를 다시 세팅하고 진행할게요” 라고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지만 그때는 신입 아니었던가. 아무래도 주위 눈치를 살펴야 했던 때라서 슬슬 내려가던 마이크를 따라 몸을 숙이며 아무렇지도 않은 듯 녹음했던 때가 기억난다. 당시 현장에 있던 선배들이 나서서 말해줄 수도 있었던 상황이었지만 신입이 얘기치 못한 난처한 상황에 어떻게 대처하는지 보려고 일부러 내버려둔 것 같다.


석승훈에게 성우란?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였다. 당시 성우가 되길 결심하고 또 성우가 되지 않았다면 뭘 하고 있었을지 잘 모르겠다. 성우동아리 활동은 안개와 같았던 내 꿈을 선명하게 드러내게 해준 고맙고도 소중한 시간이었다. 대학을 다닌 게 아니라 동아리를 다녔다고 해도 될 듯하다.(웃음) 성우가 되지 않았다면 진정한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매일매일 재미있고 신나게 일할 수 있는 성우란 직업이 좋다.

 


 

아이러브캐릭터 / 장진구 기자 master@ilovecharac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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