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범강의 웹툰 이야기 23] 웹툰 PD를 꿈꾸는 이들을 위한 가이드

서범강 회장 / 기사승인 : 2023-05-31 08: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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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이번 칼럼에서 예시로 든 아래의 내용은 웹툰 PD를 지원하는 이들이 실제 인터뷰에서 흔히 하는 말이다.
그들의 생각이나 대답이 모두 틀렸다고 할 순 없다. 중요한 건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모른다는 데 있다.
웹툰 PD가 하는 일에는 자신이 기대하는 긍정적인 면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웹툰 PD가 되려는 이유라면 여러 조건이나 상황을 기꺼이 감당하고 뛰어넘을 정도는 돼야 한다. 웹툰 PD 지망생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가이드를 제시해 본다.
 

“웹툰을 정말 많이 봐요. 제가 한 달에 결제하는 비용만 어마어마 하다니까요.”

 

웹툰 PD가 되려면 웹툰을 많이 봐야 하는 건 당연하다. 웹툰을 보지 않거나 관심이 없다면 지원하지도 않았을 게다. 즉 웹툰을 많이 보는 것은 어떤 자격이나 특별한 능력을 갖춘 게 아니라 기본 요건이다.
웹툰을 많이 본다는 것에는 함정이 숨어 있다. 어떤 특정 장르에만 관심이 있다거나 그중에서도 늘 보는 성향의 작품만 가려 볼 수 있다. 그러면 웹툰 PD로서의 역할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플랫폼에는 연재를 제안하는 작품이 쏟아진다. 작품이 특정 장르에만 국한되지 않을뿐더러 본인이 하고 싶은 작품만 골라 맡을 수도 없다.
물론 특정 장르에서 특별한 감각과 실력을 발휘해 인정받을 수 있다면 애기는 달라지겠지만 이 역시 단계적인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처음 회사를 정할 때 특정 장르에 특화된 플랫폼과 스튜디오를 알아봐야 한다.

 

“그림을 못 그려서 웹툰을 포기했는데, 웹툰 PD는 그림을 못 그려도 할 수 있잖아요.”


웹툰 PD가 되려면 꼭 그림을 잘 그려야 하는 건 아니다. 관련 학과 전공이 아니더라도 감점을 당하진 않는다. 관련 학과를 나왔다고 전부 그림을 잘 그리는 것도 아니고 학업을 통해 얻은 지식과 경험치, 그래픽 툴에 대한 숙련도 등이 비슷하면 별반 차이는 없다.
어떤 이는 “작가님이 바쁘실 때 대신 채색을 하거나 어시스트가 돼드릴 수 있다” 며 자신의 전공 이력을 장점으로 내세우기도 하는데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뭐든 아예 못하는 것보다 할 수 있는 게 낫고 사람의 일은 알 수 없기에 간혹 급하게 필요할 순 있겠다. 그럼에도 회사에서 웹툰 PD에게 바라는 역할은 보조가 아니다.
담당 작품이 여러 개라면 모든 작가들을 도울 수도 없다. 오히려 어느 한 명만 돕다가 정작 자신의 임무와 역할을 놓친다면 그만한 민폐도 없을 게다.
웹툰 PD에게 요구되는 건 그림을 그리는 게 아니라 그림을 볼 줄 아는 능력이다.
좋은 음악을 가려낼 줄 아는 이가 노래를 잘 부르는 것은 아니다. 전략, 전술에 능한 축구팀의 유능한 감독이 반드시 볼을 다루는 데 천부적인 재능을 갖고 있어야 하는 게 아닌 것과 같은 이치다.
웹툰 PD는 그림을 그릴 줄 모르더라도 작품 의도와 흐름을 해석하고 컷의 배치와 간격, 장면의 설계 등을 이용해 연출할 수 있으며 배경 구도와 인체 데생, 포즈 등을 가장 자연스러운 형태로 제시해 다듬을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작업 자체를 본인이 직접 하진 않겠으나 더 나은 이야기, 더 나은 연출, 더 나은 비주얼을 위해 방향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그저 작가와 작품을 사랑하는 독자 수준에 머무는 게 서로에게 좋을 수 있겠다.

 

“웹툰 PD가 되면 제가 좋아하는 작가들을 직접 만나고 또 친해질 수 있잖아요. 제가 좋아하는 작가를 섭외해서 함께 일하고 싶어요.”


전지적 참견 시점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유명 연예인과 동행하며 도움을 주는 매니저의 일상을 다루는 내용이다.
인기 연예인과 가족처럼 가까이 지내고 남들은 경험하기 힘든 방송이나 행사를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으니 부러운 일이다.
하지만 어디 일이라는 게 늘 좋은 일만 있겠으며 웃을 일만 이어지겠는가. 웹툰 PD가 되면 당연히 작가를 만날 일이 많고 함께 일하다 보면 친해지고 가까워질 수 있다.
웹툰 PD가 되려는 목적이 인기 작가와 인맥을 만드는 데 있어선 안 된다. 친하고 가까운 작가가 많아질수록 이로울 순 있지만 어디까지나 주된 임무는 작품의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책임지고 관리하며 프로듀싱하는 것이다.
좋은 작품을 기획하고 성공적으로 만들기 위해 작품과 가장 어울리는 작가를 찾아 섭외하는 건 마땅하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를 섭외하기 위해 그와 적합한 작품을 기획하고 만든다면 이는 책임감을 잃은 행동이다. 작가는 제대로 기획되고 준비되지 않은 작품에 전혀 반응하지 않는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웹툰 PD가 되면 매일매일 웹툰을 공짜로 볼 수 있는 거 아닌가요? 웹툰 보는 게 일이고 제가 보고 싶은 웹툰을 보는데 회사에서 돈을 내주니 정말 이상적인 일이에요.”


맞는 말이다. 웹툰 PD가 되면 매일매일 공짜로 웹툰을 볼 수 있다. 유료 연재작 외에도 공개를 앞둔 따끈따끈한 신작이나 어디서도 볼 수 없는 기획작을 먼저 접할 기회가 많다.

하지만 내가 보고 싶은 작품만 골라 볼 순 없다. 작품 조사를 위해서도 선호도와 관계없이 다양한 작품을 많이 봐야 한다.

성공 또는 실패의 원인을 분석해야 하기에 실패한 작품도 일부러 찾아봐야 한다.
어디 이뿐이랴. 제안이 들어오는 작품 중 어떤 작품이 가능성이 있는지 판단하기 위해 어느 하나 놓치거나 대충 넘길 수 없다. 자신의 직업이 되는 순간 단순히 즐기는 걸 넘어 책임이 주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제가 생각한 웹툰을 기획해서 제작해보고 싶어요. 매일 보기만 하다가 좋아하는 작가님들과 웹툰을 직접 만들 수 있다니 얼마나 좋아요?”


웹툰 PD가 됐지만 ‘기획할 수 있는 기회는 안 주고 잡다한 일만 시키더라’ 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이런 경우 오래 버티지 못하고 그만두거나 다른 웹툰업체를 기웃거린다.
웹툰을 기획하는 건 웹툰 PD의 가장 큰 일이다. 웹툰 PD가 하는 일 중에서도 중요도나 난도 면에서 최고 수준이다. 그런 일을 이제 막 웹툰 PD에 도전하는 이들이 할 수도 없고 맡겨서도 안 된다.
우선 선임에게 가장 기본적이고 가벼운 일부터 차근차근 익히고 여러 역할을 경험해봐야 어떤 일을 잘하고 못하는지, 어느 역할에 적성이 있는지 판단할 수 있다.
단순히 재미있고 획기적인 아이디어라고 해서 만들면 무조건 좋은 작품이 되는 게 아니다. 웹툰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은 절대 단순하지 않다.
기획은 웹툰에 대한 모든 걸 익히고 이해해 인정받는 수준에 이르렀을 때 가능하다. 그래야 작품을 안정적으로 완성도 있게 설계하고 뼈대를 세워 성공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다른 건 몰라도 웹툰에 대한 열정 하나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다. 정말 잘할 수 있다니까요?”


다른 건 몰라도라니. 웹툰 PD가 웹툰을 좋아하는 열정만으로 될 수 있는 일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웹툰 PD는 열정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익혀야 할 스킬이 많고 난도가 높기에 그 역할을 인정받는다.
웹툰 PD가 되려는 이가 그 역량과 자격을 논하는 자리에서 오직 열정의 크기나 강도만을 강조한다면 난 그 열정을 거짓이거나 자신조차 깜빡 속은 최면 상태라 여길 것이다.
진정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열정이 있었다면 열정 말고는 내세울 것이 없는지 묻고 싶다. 웹툰에 뜻을 두고 단지 독자가 아닌 그 이상을 목표로 하는 이였다면 분명 필요한 역량을 찾아 자신을 단련했을 것이다.
웹툰 PD 지망생들이 자주 언급하거나 흔히 착각하는 경우를 예시로 들어 미리 알아두고 준비하면 좋은 일들을 간략히 정리했다. 장담하는데 위의 내용을 머릿속에 잘 담아둔다면 올바른 가이드가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웹툰 PD가 되기 위해서 반드시 고려해야 할 것이 몇 가지 있다.
첫째, 서비스 PD, 제작 PD, 전략 PD 등 자신에게 맞는 분야를 정한다. 그게 정해져야 학습 계획은 물론 플랫폼 기업으로 지원할지 제작사로 지원할지 결정할 수 있다.
둘째, 신입이면 무조건 규모, 인지도, 조건부터 따지는 경향이 있는데 그보다 어떤 업체가 자신의 성향과 목표에 적합한 역할과 경험을 제공할 수 있을지 충분히 검토한다.
셋째, 어떤 회사에 다녔는지보다 어떤 작품을 담당했는지가 더 중요하다. 이때 작품의 연재 여부, 연재처, 연재 성과 등도 중요 기준이 되지만 작품 하나를 완결까지 책임졌는지 여부가 가장 중요하다. 어느 곳을 선택했든, 어느 작품을 담당했든 끝까지 책임지는 경험을 쌓아야 한다.
넷째, 웹툰 PD는 결코 누군가를 돕는 역할을 해선 안 된다.
좋은 작품을 기획부터 제작, 유통에 이르기까지 핵심 역할을 하는 전문가이어야 한다.
웹툰 PD가 되고 싶은 모든 이를 응원한다. 이 글이 좋은 방향을 제시하는 나침반이 되길 바란다.

 

 

 

서범강
· 한국웹툰산업협회 회장
· 아이나무툰 대표

 

 

 

 

 

 

아이러브캐릭터 / 서범강 회장 master@ilovecharac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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