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아티아에서 지난 6월 초 개최된 2019 자그레브 국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의 공식 경쟁부문에 국내 작품으로는 유일하게 탁도연 감독의 ‘여우소년’이 진출했다. 가상공간에 갇혀 있던 한 소년의 기이한 모험을 통해 성장과정을 그린 이 영화는 작가의식과 세계관이 잘 담겨 있는 작품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지난 3월부터 강원대 영상디자인학과 교수로 출강하고 있는 탁도연 감독을 만나 ‘여우소년’을 연출하게 된 계기와 언론을 통해 미처 밝히지 못한 작품 속 메시지 등에 대해 들어보았다.

애니메이션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20대 전반에는 애니메이션 회사에서 3D 모델러로 일했다. 애니메이션 회사에서는 기술적인 면을 중요시하는 제작 업무를 담당했다. 따라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로 기획하고 연출하는 일에 대한 욕심이 생겼고, 30대에 영화전문학교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첫 연출 작품을 만들게 되면서 지금까지 애니메이션 작업을 해오고 있다.
데뷔작 ‘지금, 여기에’를 소개하면?
‘여우소년’이 관계에 대해 조금은 현실적이고 어두운 이야기라면 ‘지금, 여기에’는 관계에 대해 조금은 더 긍정적이고 밝게 풀어간 이야기다. 사람들 속에서 항상 혼자라고 느끼는 한 아이의 이야기를 ‘사물로 변하는 아이’라는 이미지로 풀어보았다. 결국에는 주변에 항상 누군가 있었고 자신이 먼저 손을 내밀면 된다는 긍정적인 메시지가 담겨 있다. ‘지금, 여기에’는 첫 연출작이자 처음 펜 드로잉으로 작업했던 작품이다. 모두 수작업으로 한 장씩 스캔해가면서 고생했던 추억과 내가 상상했던 이미지가 움직이는 영상으로 구현되었을 때의 느낌이 아직도 생생하다. 지금 보면 기술적인 면에서 부족한 부분들이 많이 보여 아쉽지만 첫 작품에 대한 날것의 느낌이 그대로 남아 있어 좋다. 세련되지 못하고 어설픈 부분들도 있지만, 이로 인해 오히려 독특한 느낌도 든다.






<지금 여기에>
‘여우소년’을 연출하게 된 계기와 작품에 담긴 메시지는?
‘여우소년’은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이 모티브가 됐다. 놀이기구를 타고 있는 아이들의 집단에 새로운 아이가 나타나 적응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 아이를 주인공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아이가 부모의 곁을 벗어나 놀이터라는 공간에 첫발을 딛고,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는 이야기를 더 흥미로운 방식으로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놀이터라는 작은 공간은 마치 우리가 타인과 지속적인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사회의 한 조각 같았다. 이야기의 극적인 표현을 위해 살아남기 위한 더 경쟁적인 공간을 설정하고, 그곳에 오게 된 아이는 어떤 변화를 맞을까 하는 방향성을 잡았다. 자신만의 견고한 세계에 갇혀 있던 아이가 여우소년들의 세상으로 나와 그들과 관계를 맺고 어떻게 동화돼가는지 판타지 세상 속에서 보여주고 싶었다.
‘여우소년’이 자그레브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 진출한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보는지?
자그레브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은 대중적인 작품보다는 독창적이고 작가주의 세계관을 더 선호하는 영화제다. 그래서 공식 경쟁부문에 진출했다는 사실이 작가로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내 작품도 그들이 제시하는 기준점에 어느 정도 맞아 들어갔다는 생각이 들어 다음 작품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다. 항상 단순히 내가 하고 싶은 일이니까 작품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가끔 의지가 흔들릴 때가 있었다. 작업 과정이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워 ‘왜 이것을 만드는 걸까’하고 스스로에게 물을 때가 많았다. 요즘은 내 작품을 좋아해주는 사람들이 조금씩 생기고 있다. 단순히 내가 하고 싶다는 이유 외에 또 다른 이유가 생긴 것 같다. 내 작품을 인정해주고 좋아해주는 누군가가 있어 이제는 조금 더 자신감을 가지고 다음 작품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여우소년>
‘여우소년’에 나오는 ‘파랑나방’의 의미가 궁금하다
파랑나방과 아이의 관계를 보면 아이가 여우소년에 의해 어떻게 변화하는지 알 수 있다. 처음 아이의 방에서는 파랑나방과 참 좋은 친구처럼 보이기도 하고, 반려동물 같은 존재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아이를 방 밖으로 나오게 하는 중요한 존재이기도 하다. 하지만 여우소년과 관계를 맺어가면서 파랑나방의 존재는 점점 희미해진다. 엔딩 장면에서는 그토록 찾아 헤매던 파랑나방이 눈앞에 있지만 소년은 여우소년들의 무리에게로 간다. 아이가 살아남기 위해 자신에게 무엇이 더 필요한지 깨닫게 되는 순간이다. 더 이상 파랑나방은 아이에게 중요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국내외에서 평가가 좋은 것으로 알고 있다
평가가 어떤 형식으로 드러나는지 잘 모르겠지만, 영화제에 많이 참가하는 것이 그 지표라고 본다면 결국 이야기를 드러내는 방식이 작가 고유의 세계관과 개성을 잘 표현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작품을 연출할 때 특별히 관심을 두는 것이 있다면?
나는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사람이기 때문에 어떻게 이미지화할 것인가에 대해 깊이 고민한다. 애니메이션은 이미지화하는 과정이 실사영화보다 자유롭고 작가주의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데 유용하다. 애니메이션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이야기들에 더 집중하고 그래서 비유와 상징, 그림이 만들어낼 수 있는 움직임, 변형, 왜곡, 과장하는 표현법을 중요하게 여긴다.
향후 계획과 작품에 담고 싶은 주제는?
다음 작품을 기획 중인데 기존의 제작방식과는 다른 파이프라인으로 제작을 준비 중이다. 엔진을 이용해 애니메이션을 제작할 예정이고, VR과 시네마틱의 버전으로 이렇게 두 버전이 결과물로 나올 것 같다. 주제에 대해 말하자면, 나는 항상 나의 내면에서 이야기를 찾는다. 내가 느꼈던 감정과 생각에서 시작해 어떻게 하면 영상 언어로 확장시킬까를 고민한다. 그래서 지금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귀 기울인다. 또 예전처럼 관계에서의 고독, 외로움, 우울함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기보다 유머가 있고, 풍자적인 화법으로 말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 다음 작품은 이런 방향성을 가지고 만들어나갈 생각이다.

탁도연 감독
ㆍ <지금 여기에> 2011
ㆍ <여우소년> 2018
출처 : 월간 <아이러브캐릭터> 2019.09월호
<남주영 기자> (master@ilovecharac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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