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의도를 분석하기보다 그저 보고 느끼면 좋겠어요 _ 독립영화관 57 _ 민지혜 감독

장진구 기자 / 기사승인 : 2022-09-20 08: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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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프랑스 안시 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와 캐나다 판타지아영화제에서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만든 두 편의 단편 애니메이션을 공개해 주목받은 신예 민지혜 감독.
기존의 문법을 그대로 따르기보다 자신만의 독특한 시선과 방식을 추구하는 그녀는 경계가 불분명하면서도 세밀한 감정선과 작품의 메시지를 은유적, 비유적, 환유적으로 표현한다.

간략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린다 미디어디자인을 전공한 이후 한국예술종합학교로 진학해 애니메이션을 배웠다. 대학에서 실사 기반 영상언어를 배웠는데 교과서 같은 전형적인 틀을 벗어나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장르가 애니메이션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애니메이션을 잘 보지 않는다.(웃음) TV로 일일이 챙겨 보는게 성향에 맞지 않아 그나마 극장에서 상영하는 애니메이션을 보곤 하는데 이마저도 안 본 지 꽤 된 것 같다.(웃음)


 

굿바이 드라마(2022)란 작품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건?
이 작품은 어릴 적 “우리 강아지” 라고 불리며 부모의 기대를 한 몸에 받던 아이가 성인이 돼 그간 순종적이고 이상적인 자식의 모습을 연기해야 했던 과거의 자아를 버리고 진정한 모습을 찾아간다는 내용을 담았다. 지금까지 난 부모가 바라는 이상적인 ‘우리 강아지’ 의 모습을 연기했던 게 아닐까, 그럼 스스로 만든 드라마에서 벗어나보자란 의미를 부여했다. 이 작품을 만들 때 누군가에게 뭔가를 전하고 싶었던 건 아니다. 일기를 쓰듯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얘기가 이거라고 생각해 만들었다. 영상으로 만든 시(詩)라고나 할까. 시처럼 쓴 일기를 하나의 컷처럼 이어 붙인 이 작품을 보는 이들이 연출의도나 목적을 분석하기보다 그저 보고 느끼고 음미할 정도로만 소비했으면 좋겠다.

마네킹 토크쇼(2020)에서 반복되는 대사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극중에서 “좋다” 란 말이 반복되는데 이는 보이지 않는 폭력을 표현한 것이다. 마네킹 토크쇼는 학교나 직장 등 여러 사람이 모인 곳에서 폭력이 일어나는 과정과 현상을 보여주려고 기획한 작품이다. 상흔이 드러나는 물리적인 폭력이 아니라 잘 드러나지 않는 따돌림이나 교묘하고 은밀하게 공격을 가하는 폭력을 말한다. 원인을 콕 집어 말할 수 없는 불편한 느낌, 즉 싸한 기분이 반복될 때 듣는 사람은 말하는 사람으로부터 폭력성을 느낀다는 메시지를 표현했다. 그런데 피해자와 가해자의 경계가 모호하다. 상황이나 흐름에 따라 피해자가 가해자로 바뀌고 가해자가 피해자로 얼마든지 돌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상에서는 복제품인 마네킹을 통해 이런 의미를 표현했다. 마네킹 토크쇼는 대화로 가장된 혼란에 대한 담론이자 은밀한 언어폭력과 심리적 위축에 관한 이야기다.

 

주로 대사보다 상징적인 표현으로 메시지를 전하던데?사는 경제적으로 쓸 수 있는 연출의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주인공이 던지는 대사 한 마디에는 많은 정보가 담겨 있으며 극의 흐름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신중히 다뤄야 할 장치라고 본다. TV드라마는 이해가 쉽고 빨라야 하기 때문에 대사가 많이 쓰이지만 독립애니메이션은 시각적으로 받아들이기 좋은 영화관에서 상영되므로 영상에 더 몰입할 수 있도록 대사를 아낄 필요가 있다. 사실 대사의 활용 여부는 감독의 취향에 따라 달라진다. 난 한 마디의 대사라도 상징이나 의미가 부여돼야 하고 임팩트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므로 신중하게 쓰는 타입이다.


음향효과가 이채롭던데? 학창시절 아무리 노력해도 실력이 늘지 않았던 분야가 음악이었다.(웃음) 사운드 연출을 배울 때도 강의내용을 이해하는 건 쉽지 않았다. 그래서 예쁘게 잘 다듬어 아름답고 매끄러운 소리를 만들기보다 상징성을 부여해 내 마음대로 만들어보자고 결심했다. 실사 영상에 쓰이는 음향은 동시녹음이 가능했지만 애니메이션에서는 타자 치는 소리나 컵 놓는 소리 등 모든 걸 인위적으로 만들어야 하니 말이다. 그래서 어차피 만들어야 할 소리라면 더 의미 있고 극적 효과를 높일 수 있도록 만들려고 했다. 가령 굿바이 드라마에서의 천둥소리는 아버지가 호통치는 소리로 공포감을 표현했고, 마네킹 토크쇼에서 감정의 기복이 없는 저음의 기계 목소리는 은밀하게 반복적으로 가해지는 폭력을 상징한다.

 

애니메이션의 매력은? 애니메이션은 실험 가능성이 무한하게 열려 있는 표현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시공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드넓은 생각의 세계를 환상적이면서도 자유롭게 나타낼 수 있다. 여러 사람이나 장비 또는 장치 없이도 펜과 종이만 있다면 모든 게 가능하지 않은가. 실사영상보다 작품을 만들기 한결 수월하고 수정도 간편하다.


준비 중인 프로젝트가 있는가? 요즘 움직임이 없는 것, 정지된 상태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영상 속 움직임은 모두 분명한 의미를 담고 있다. 그래서 보는 이들은 사람이나 사물의 움직임을 보고 그 의미를 기호적으로 받아들이는데 만약 이들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어떤 느낌이 들지 궁금했다. 이를 떠올렸을 때 두려움, 죽음, 충격, 공포감이 들었는데 무척 자극적인 소재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가볍게 기록하며 생각을 가다듬고 있는데 언제 작품으로 완성될지는 아직 미지수다.(웃음)

 

 

 

 

아이러브캐릭터 / 장진구 기자 master@ilovecharac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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