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영화관 78] 박현지 감독, 생생히 기억해두면 언제든 타임머신을 탈 수 있어요

장진구 기자 / 기사승인 : 2024-06-27 08: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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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그 녀석과 친해지는 방법>


“누군가가 그러더라고요. ‘어느 순간을 생생하게 잘 기억해두면 언제든 다시 불러와 타임머신을 탈 수 있다’고. 이 말이 정말 마음에 와닿았어요. 그래서 일상의 한순간 한순간을 소중하게 생각해요.” 주인이 데려온 개구리에게 싸움을 거는 강아지의 좌충우돌 소동을 그린 슬랩스틱코미디 <그 녀석과 친해지는 방법>, 새 학기 첫날 새로운 만남과 우정이 싹트는 순간을 감각적인 작화로 상큼하게 담아낸 <핑거스프링>, 짝사랑에 빠진 마법 소녀의 엉뚱발랄 연애기 <소피의 마법일기>에는 박현지 감독 특유의 섬세한 관찰력이 묻어난다.

  


간략한 소개를 부탁드린다

말강(Malgang)이란 예명으로 활동 중인 애니메이션 감독이다. 2017년 웹시리즈 그 녀석과 친해지는 방법으로 데뷔했다. 2023년 11월부터 유튜브에 소피의 마법일기란 쇼트폼 애니메이션을 연재하고 있다. 조소과를 가려 했는데 진학에 실패했다. 진로를 고민하던 때 어느 감독님의 블로그에서 한국독립애니메이션협회가 창의인재동반사업을 진행한다는 글을 봤다. 평소 연습장에 이야기나 구성안을 끄적였고 혼자 영상을 만들어본 경험이 있어 지원해 봤는데 운 좋게도 한번에 붙었다. 이를 계기로 내 갈 길은 애니메이션이라고 결정했다.


웹애니메이션에 주목한 이유가 있나?

내가 가장 많이 찾는 미디어가 유튜브, 틱톡,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이다. 모바일이나 웹 환경에서 애니메이션을 보는 게 익숙하고 자연스럽다. 기존의 웹애니메이션을 분석하고 경험 많은 창작자와 멘토를 찾아 많은 얘기를 나누다‘애니메이션은 움직이는 그림 그 자체로 큰 힘을 갖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TV나 스크린을 넘어 더 넓은 세계에서 활동할 수 있는 게 애니메이션이더라. 제작 환경을 따져봐도 웹애니메이션이 지금의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장르라고 생각했다.

 

  

<소피의 마법일기>

 

유튜브에 연재하는 <소피의 마법일기>는 어디에서 영감을 얻었나?

유튜브에서 우연히 타로 카드로 미래를 점치는 영상을 보고 떠오른 캐릭터를 낙서처럼 그려본 게 시작이었다. 누군가와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란 공통된 감정을 다루고 싶었다. 오컬트 마술과 마법을 부리지만 성격이 소심해 친구를 사귀는 게 어려운 소녀 소피, 그녀를 돕는 천사 같은 요정 캐릭터 마루가 주인공이다. 소피의 짝사랑 이야기가 중심이다. 소피는 짝사랑남에게 다가가려 마법을 부리지만 항상 어긋난 결과로 이어진다. 하지만 소피와 짝사랑남이 어떻게든 조금씩 가까워지는 이야기를 보여주려 한다. 업로드 주기는 일정하지 않은데 그림이나 배경 채색 등의 난이도를 조절해 일주일에 하나씩은 꼭 올리려고 노력한다. 학창 시절의 추억, 또는 주위에 흔한 사람들에게 영감을 많이 얻는 편이다.


구독자가 50만 명을 넘었다. 인기 요인은 무엇일까?

이렇게까지 많아질 거라 생각 못 했는데 그저 감사하다. 콘텐츠를 구상하면서 기획한 포인트가 시청자에게 잘 들어맞은 것 같다. 누군가와 가까워지고 싶다는 감정은 문화가 달라도 공감하리라 생각했다. 대사가 없어 언어 장벽도 없다. 그래서 해외 구독자가 많다. 우리나라 구독자는 10%도 채 안 된다. 시청 연령대도 10∼50대로 폭넓다. 나이 드신 분들은 학창 시절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는 의견을 남기기도 한다. 틱톡처럼 쇼트폼 영상을 찾아보면서 요즘 세대가 즐기는 요소도 적절히 반영해 젊은층의 공감대를 높인 게 주효하지 않았나 싶다.


애니메이션을 만들면서 얻는 즐거움은 무엇인가? 

소피의 마법일기를 연재하면서 느끼는 감정은 초등학생 시절 쉬는 시간에 내가 그린 만화를 친구들에게 보여주던 때의 기분과 똑같다. 혼자 키득거리며 공책에 그린 걸 보여주면 친구들이 돌려보면서 맨 뒷장에 감상평을 남기곤 했다. 악플이든 선플이든 반응을 기대하는 게 무척 설렌다. 혼자 다 만들자니 힘들다. 하지만 팬들의 반응을 보면 피로가 싹 가신다.

 

  

<플리에, 리바운드>

 

준비 중인 차기작이 있나?

플리에, 리바운드란 작품이다. 오래 준비했다. 2021년 SBA의 지원을 받아 만들었으니 원래 소피의 마법일기보다 먼저 나와야 했다. 발레하는 여자가 농구하는 또래를 만나 같이 춤추고 공놀이하는 이야기인데 그림의 움직임 자체에 오롯이 집중한 작품이다. 발레와 농구의 만남을 다룬 만큼 자유롭고 섬세한 움직임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해 큰 스크린에서 보여주고 싶었다. 올해 서울인디애니페스트를 비롯해 여러 영화제에서 공개할 생각이다.
 

  

<핑거스프링>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보여주고 싶은가?

공감과 재미를 주는 이야기를 만들겠다.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내 친구도 이래’ 같은 이야기를 보여주고 싶다. 우리 주위에서, 일상에서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다.

 

아이러브캐릭터 / 장진구 기자 master@ilovecharac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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