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영상을 멀쩡히 잘 만들다가 애니메이션을 해보겠다고 하니 주위에서 손사래를 쳤다. 우려 섞인 목소리에도 자신만의 콘텐츠를 열망했던 권이규 감독은 2020년 멍(Mark)이란 IP를 개발하면서 애니메이션 제작에 뛰어들었다. “그때부터 애니메이션을 매년 하나씩 만들어보자고 결심했어요. 잘한 건지 지금도 잘 모르겠어요. 하하! 그래도 성장통에 관한 이야기를 꾸준히 들려주고 싶어요.”
간략하게 자신을 소개해달라
M29란 프로덕션을 설립해 10년째 광고 영상을 만들고 있다. 애니메이션을 따로 배우진 않았는데 광고를 만들면서 게임 시네마틱, 풀 3D처럼 애니메이션 영상도 많이 제작해봤다. 외주 작업을 하다 보니 차츰 우리만의 콘텐츠를 개발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2020년 멍이란 IP를 개발해 주제곡을 만들었고 이듬해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제작 지원을 받아 첫 작품 마크를 선보였다. 올해는 멍, 풀구란 작품을 제19회 서울인디애니페스트에서 공개했다. 스토리텔링이 담긴 멍이란 친구를 영상으로 보여주려고 한다.
<멍, 풀구>란 작품은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나?
산책 중인한 소녀가 소년이 찬 공을 피하다 넘어진다. 그 충격으로 몸속 혈관이 터지고 적혈구들이 산소를 잃어 보라색으로 변한 채 피부층에 쌓이자 멍, 풀구가 등장한다. 그 순간 세균들이 몸속으로 침투하고 멍, 풀구와 백혈구, 혈소판 친구들은 긴장한다. 멍, 풀구는 성장 과정에서 생겨나는 멍을 캐릭터화해 다양한 관점으로 접근한 작품이다. 멍의 의학적인 생성 원인과 치료 방법을 포함해 친구와 생긴 사건과 생긴 위치, 우리들의 반응까지, 멍은 자연스레 찾아오는 성장의 일부분이며 치유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
작품의 모티브는 어디에서 얻었나?
딸이 갓난아기 시절에 자꾸 넘어지고 부딪히는 걸 보고 무던히도 걱정했던 때를 떠올렸다. 사실 모든 아이가 그런 과정을 거쳐 자라기 마련인데, 일단 넘어지거나 부딪히면 아이는 두려움을 느끼고 부모는 호들갑스러운 반응을 보이는 상황을 섬세하게 묘사해보자는 생각으로 작품을 만들었다. 두렵고 걱정되지만, 지나고 나면 아무 일도 아니지 않은가? 우리들의 이러한 성장통을 얘기하고 싶었다. 멍, 풀구는 마크란 작품의 속편이다. 2022년 선보인 마크는 운 좋게도 그해 10월 제17회 파리한국영화제 어린이 단편 부문에 공식 초청받아 상영되기도 했다.
스톱모션 기법이 힘들진 않았나?
퀄리티 높은 3D 애니메이션이 많은데 우리가 잘하면서도 조금 다른 톤의 애니메이션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아이가 넘어지고 다치는 걸 리얼 3D로 보여주기보다 종이나 인형처럼 포근한 재질로 표현하면 좀 더 부드럽게 보여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해 스톱모션에 2D, 3D 기법을 결합했다. 제작 시간을 줄이면서 각 기법이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했는데 잘 나온 것 같아 만족스럽다. 4∼6분짜리 영상에는 이런 기법을 쓰기에 괜찮은데 장편으로 만든다면 달라질 것이다.
애니메이션을 통해 얻는 즐거움은 무엇인가?
기획하고 콘티를 짜고 영상을 편집할 때 희열을 느낀다. 영상을 만드는 것 자체가 즐거운데 여기에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우리의 이야기를 마음 놓고 할 수 있으니 더 흥미를 느낀다. 애니메이션은 음악처럼 그 시절의 추억과 시간을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슬램덩크처럼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마음의 위로를 얻는 것처럼 말이다. 멍도 마찬가지다. 시간이 흘러 자신의 동생, 자녀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이야기가 되길 바란다.
앞으로 작품을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뭔지 궁금하다
성장통에 관한 이야기를 보여주겠다. 지금은 아이가 넘어지고 친구와 함께 사건사고로 발생한 이야기가 주된 흐름이라면, 앞으로는 아이의 몸 전체를 다루고, 성장 과정의 모든 걸 보여주는 시리즈 영상을 만들어보려고 한다. 여력이 된다면 장편물을 빨리 만들어보고 싶은데 어느 매체에 선보일지가 중요한 것 같다. 매체에 따라 타깃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처음엔 아이에게 유익하고 의학 정보도 주고 몸의 신비로움을 알려주고 싶었는데 타깃을 높여 마음의 멍으로 세계관을 넓혀보고도 싶다. 멍의 의미를 육체적 상처에서 심리적 상처로 넓혀 어른들을 위한 더 깊은 이야기를 다뤄보고 싶다.
아이러브캐릭터 / 장진구 기자 master@ilovecharac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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