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나와 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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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아영 감독의 신작 <나와 승자>는 본인과 어머니의 이야기를 담백하고 유머러스하게 보여주고 있다. 때로는 이런 담백함이 사람들의 마음에 스며드는지, 나와 승자는 보는 이들의 웃음과 눈물을 다양하게 불러 낸다. 이 작품과 함께 많은 감정과 생각의 변화를 받아들인 김 감독은 앞으로 더욱 자신 안으로 깊이깊이 파고들고 싶다고 말한다. 그 안에서 무엇이 나올지, 자신이 가장 궁금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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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애니메이션을 만들게 된 계기는?
단편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김아영이다. 애니메이션 관련 프로젝트에 참여하거나 다양한 외주 작업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독립출판으로 책을 냈다.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미술 계통으로 진로를 잡아왔다. 그중에서도 애니메이션의 매력은 살아 움직 인다는 것이었다. 내가 만든 캐릭터가 눈을 깜박거리고, 머리카락을 휘날리고, 걸을 수 있다는 점이 좋다. 그런 매력에 빠져 계속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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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나와 승자>를 소개해달라
나와 승자의 ‘승자’ 는 엄마의 이름으로, 즉 나와 엄마에 관한 이야기다. 좀 더 나이가 든 나와 엄마가 주인공이며 실제로 있었던 일들, 그리고 일어나기 바라는 일들을 모아 만든 일상담이다. 나와 승자의 이야기는 어느 날 밤 홀로 잠에서 깼을 때 갑자기 든 생각에서 시작됐다. 밑도 끝도 없이 ‘엄마가 돌아가시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고, 엄청난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그 후 가족상담, 집단상담 등을 받았고, 두려움의 원인이 부모로부터 정서적 독립을 하지 못한 데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엄마에 대해 기록하기 시작했다. 엄마의 감정을 찾아준다면 나의 감정도 찾을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와 승자가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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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적인 작품인 <나와 승자>를 만듦으로써 얻은 것이 있다면?
내 안의 많은 것이 정리됐다. 붕 떠 있던 혼란스러운 감정과 생각들이 정리되자 나를 회복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이런 개인적인 이야기가 작품이 될 수있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됐다는 것. 물론 내 이야기를 작품으로 털어놓기까지의 결심이나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한번은 우연히 나와 승자를 본 사람의 리뷰를 읽었는데, 그는 내 작품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내 개인적인 이야기가 남에게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이 조금 겁이 났다. 가장 가까운 가족이 아니라, 모르는 사람이 나를 이해 한다는 것이 낯설고 슬펐던 것 같다. 그렇지만 창작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공개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여러모로 나와 승자는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해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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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승자>는 소재의 선택, 스토리텔링 등에 있어 전작과 많은 변화가 느껴지는데?
사실 나와 승자를 만들고 나서 생각보다 많은 영화제에서 불러주고, 또 많은 사람들이 작품을 좋게 봐줘서 놀라웠다. 그전까지 나는 애니메이션을 만들 때 줄곧 대단한 작품을 만들어야만 한다고 생각해왔 다. 응당 사람들에게 큰 울림을 주는 메시지를 포함해야 한다고, 깨달음 같은 것을 줘야 한다고 여겼고, 그것을 위해 이야기를 만들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일상에서 발견한 소소한 주제를 담았고, 만드는 내내 되도록 단순하게, 밝은 분위기를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이런 변화에 계기가 있었
다면 우연히 독립출판에 대해 알게 된 것이었다. 최근 각광 받고 있는 독립출판은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펼쳐놓게 해준다. 그저 자신에게 가치 있는 것이면 되는 것이다. 이런 출판이 가능하다면 나도 나와 엄마의 이야기를 할수 있을 것이다, 아니 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됐다. 나와 승자는 먼저 독립출판을 통해 책으로 발간됐다. 독립출판을 알게 돼서 정말 다행이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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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카페>와 <당신을 초대하고 싶습니다>의 결말은 해피 엔딩일까, 베드 엔딩일까?
그 카페의 주인공은 마지막에 등장한 한 여성이 내민 차 한 잔을 카페가 아니라 숲속에서 마시게 된다. 그것은 1년 번 돈을 들여야만 갈 수 있는 카페에서가 아니라, 일상 어디에서든 마음만 먹으면 그렇게 원하던 차 한 잔을 마실 수 있음을 깨닫는 장면이다. 당신을 초대하고 싶습니다에서도 여성은 다시 갑갑한 집으로 돌아오지만, 그전에 남성의 초대를 받아 환상적인 여행을 경험했고 그로부터 무언가를 마음속에 간직하게 됐기 때문에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 것이다. 사람이 살면서 처한 환경을 바꾸기는 참 어렵다. 특히 개인의 힘만으로 환경을 바꾸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나 자신이 지금까지 추구 했던 것이 잘못됐다는 것을 깨닫고 이전의 모습과 달라지는 것은 누구나 가능하다. 그 순간 우리를 감싸고 있는 환경은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띠게 된다. 그런 점에서두 작품 속에서 주인공들의 내면에는 변화가 생겼고, 그게 바로 해피 엔딩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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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플한 선으로 이루어진 작화가 매력적인데, 작업 과정이 궁금하다
종이에 그림을 그리고 스캔을 떠서 만드는 페이퍼 애니메이션을 계속하고 있다. 딱 하나, 그 카페는 디지털 컷아웃 애니메이션으로 먼저 종이에 그림을 그리고 각부분을 움직이며 만들었는데, 그 역시 종이에 그린 건 마찬 가지다. 워낙 종이를 좋아하고, 그래서 종이 위에 직접 스케치하는 것을 즐긴다. 특히 종이 위에서 연필이 내는 사각 사각 소리가 나를 설레게 한다. 종이에 단순한 선을 그려나 가다 보면 원하던 그림이 완성된다는 게 마음에 든다. 물론 디지털 작업에도 장점이 있다. 한때는 디지털 작업을 잘해 내지 못하는 나를 미워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결국 내가 수작업을 매우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앞으 로도 계속 페이퍼 애니메이션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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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애니메이션 시장에 바라는 것이 있다면?
독립출판에 대해 알게 되고 독립출판물을 접하게 되면서 생각보다 독립출판물에 대한 수요가 크다는 점이 매우 놀라웠다. 이런 개인적이거나 소소한 이야기들을 원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단편 애니메이션을 접할 수 있는 창구가 늘어 난다면 수요가 더 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면 지역 단위로 열리는 작은 영화제라든지 말이다. 한편 지금도 세상에는 많은 콘텐츠가 존재하는데, ‘ 왜 영화제를 일부러 찾아가는 수고를 들여가면서 단편 애니메이션을 봐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할지도 모르겠다. 거기에 대해 나는 단편 애니메이션의 안에는 다양한 위로가 있다고 대답 하고 싶다. 예를 들어 인기 있는 일러스트레이터가 있는데그 사람은 자신의 그림을 매주 인스타그램에 업데이트하고, 많은 이들이 새롭게 올라온 그림을 보기 위해 찾아온다. 그런데 일러스트레이터가 사흘을 들여 그린 작품이라고 해도 사람들이 보는 시간은 고작 2, 3초 정도다. 그런데도 이 일이 가치가 있는 것은 짧은 시간이지만 그 작품을 통해 사람들이 위로받고 다양한 감정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단편 애니메이션을 비롯해 모든 장르의 예술작품 안에는 다양한 위로가 들어 있다. 그러니까 봐달라고 말하고 싶다. 당신의 영혼을 위로해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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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의 계획은?
우선 지금 작업하고 있는 차기작 두꺼운 옷을 입은 여자와 채찍을 든 남자를 3월까지 마무리하려고 한다. 그리고 나와 승자의 마지막 세 번째 책을 출판하고, 후속작으로 나와 아빠의 이야기를 다룬‘나와 재일’도 단편 애니메이션으로 만들 계획이다.‘ 그 카페’는 장편 애니 메이션으로 만들기 위해 기획 중이다. 여전히 그리고 싶은 장면들, 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장기적인 목표는 앞으로 죽을 때까지 그림을 그리기 위해 건강관리를 하는 것이다. 계속 그리고 싶다. 내 안에 있는 생각의 끝, 감정의 끝, 표현의 끝까지 파헤쳐보고 싶다. 그러니까 자유롭게, 마음의 심해 끝까지 가보자 하는 마음이다. 과연 내가 어떤 것을 만들어낼지, 나 자신이 가장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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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아영 감독
· <나와 승자> 2020
· <그 카페> 2017
· <상상치도 못한 일> 2007
· <당신을 초대하고 싶습니다> 2003
출처 : 월간 <아이러브캐릭터> 2021.2월호
<아이러브캐릭터 편집부> (master@ilovecharac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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