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장의 기획서
패트릭G.라일리(Patrick G. Riley)가 쓴 ‘원 페이지 프로 포절(THE ONE PAGE PROPOSAL)’ 의 표지에는 ‘강력하고 간결한 한 장의 기획서’ 라는 부제가 적혀 있다. 아주 오래전 이 책을 읽은 필자는 기획서나 제안서를 만들 때, 문서의 첫 페이지에는 항상 ‘제안의 핵심’ 이란 제목을 달아 요약 내용을 작성한다.
상대방이 내 제안에 관심을 갖고 시간을 할애해주는 행운이 있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대부분 바이어들은 로그라인 (Logline, 한 문장으로 요약된 줄거리)처럼 설명을 짧게 듣고 싶어 한다. 그 짧은 문장에서 흥미를 유발하면 그제서야 상대방은 이야기를 들을 준비를 한다.
투자를 제안할 때 투자심사위원회는 회의용으로 사용할 2 쪽 내외의 요약본을 요구하기도 하는데, 많은 페이지 분량의 제안서나 기획서가 소설이라면 1쪽으로 압축하는 기획 서나 제안서는 시(詩)로 비유하고 싶다. 20~30쪽 분량의 제안서 내용을 1∼2쪽으로 요약하는 일은 제안서를 읽을 상대방의 요구와 관심사를 분명히 파악하고 있어야 가능하 다. 또 프로젝트나 업무의 전체적인 흐름을 충분히 숙지하고 이해했을 때 할 수 있다. 이러한 연습을 하기에 가장 적합한 방법은 기안지 작성이 다. 필자는 경력직원의 업무 이해도나 업무 수준을 평가하는 척도로 종종 기안지 작성을 요구한다.
문서는 업무의 커뮤니케이션 언어
흔히 기안을 포함한 문서들을 ‘업무의 커뮤니케이션 언어’ 라고 표현한다. 이직과 입사가 반복되는 기업 구조상 직원이 퇴사하면, 업무를 넘겨받은 직원은 과거 업무의 정보와 단절돼 서버에서 과거 자료를 찾기 위해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심지어 퇴사한 직원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보는 경우도 허다하다. 만약 체계적으로 문서 시스템을 관리했다면 업무 효율은 훨씬 좋아질 것이라 생각한다.
기안은 신규 입사자의 오리엔테이션 자료로도 가치가 있다. 필자가 만나본 애니메이션 제작사 중에서는 별도의 OJT(On-the-Job Training) 자료가 없는 경우가 많았다. 회사 파트너나 입사 전 프로젝트에 대해 이해하지 못한 채회의에 참석한다면 회의에서 나오는 용어나 프로젝트명, 파트너사 이름이 생소해 회의 시간을 비효율적으로 보낼 확률이 높아진다. 그래서 예전에 필자는 신입사원이 들어 오면 우선 기안지 내용을 숙지하게 했다.
기안지 활용 사례
사례를 통해 활용 방법을 이야기해보자.
입사한 지 고작 2개월 된 신입사원은 외근 중인 김 과장에게 다급한 전화를 받았다. “미팅 10분 전입니다. 2019년 대박애니메이션과 맺은 ‘모야모지’ 파일럿 제작 계약서를 찾아 중도금 결재 금액을 알려주세요.”
마침 담당자는 오늘 연차휴가를 냈고 휴가 중인 담당자의 전화기는 꺼져 있다. 설령 담당자와 연락이 닿는다 하더라도 담당자가 계약 내용을 숙지하고 있다는 보장이 없다. 이제 시간은 10분 남았고 점심시간이라 사무실에는 혼자 남아 있다.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라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신입사원은 다시 김 과장의 연락을 받았다. “경영지원실 파일함에 있는 2019년 기안철을 찾아 확인해보세요. 5분 안에 답변주세요.” 기안철을 확인한 신입사원은 그제서야 안도하며 5분 안에 중도금 결재 금액을 김 과장에게 무사히 알려줄 수 있었다. 이 회사의 기안 시스템은 다음과 같다. <그림 참조>
먼저 신입사원은 문서 보관함에서 2019년 기안철을 꺼내 들었다. 첫 페이지를 넘기자 목차가 나왔고 문서번호를 확인했다. 문서번호로 2019년 8월에 작성된 문서이며, 2019년에 37번째로 작성된 것을 알 수 있었다.(문서번호는 각자 기업에 맞게 지정할 수 있다) 신입사원은 이제 앞페이지부터 순서대로 있을 기안지 사본에서 37번째 페이 지를 찾으면 된다. 또 다른 방법으로는 문서번호 외에 비고 란의 회사 이름을 통해 대박애니메이션을 학인하고 문서를 찾는 방법이 있다.
기안지 역시 회사마다 양식이 조금씩 다르겠지만, 필자가 ISO 교육을 받았던 때를 돌이켜보면 업무 전결 규정에 근거해 작성-검토-승인 결재란만 존재했다. 비교적 빠른 의사결정을 강점으로 생각하는 중소기업에 가장 효율적인 결재 단계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습관적으로 작성하는 기안지에도 분명 목적성을 갖고 있다. 좋은 기안지는 결재권자가 궁금증을 갖지 않도록 작성되는 것이 좋다. 개요(무엇을 이야기하는 것인가), 상세 내용(프로젝트명, 계약 상대방, 금액, 기간, 특이사항 등), 목적 및 기대효과, 첨부서류 등 기안의 성격에 따라 내용은 달라지겠지만 항상 목적성을 염두에 두고 작성해야 한다.
김중대 (콘텐츠 크리에이터)
현) 사이드9 기획이사
전) 잭스트리 이사
전) 콘즈 대표
전) 삼지애니메이션 사업 본부장
전) 컬리수 콘텐츠 사업 부서장
전) 바른손 캐릭터사업 팀장
전) 마이크로 상품기획실 팀장
전) 한국캐릭터문화산업협회 부회장 전) NCS 캐릭터 자문위원
이메일: jdkim612@naver.com
출처 : 월간 <아이러브캐릭터> 2020.12월호
출처 : <아이러브캐릭터 편집부> (master@ilovecharac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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