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적인 팝아트 거장들의 작품을 한자리에 볼 수 있는 깔롱 드 팝아트전이 부산시 해운대구 영무파라드 호텔 피카프로젝트 해운대점에서 10월 31일까지 열린다. ‘깔롱’ 이란 단어는 폼 나게, 멋지게 등을 의미 하는 경상도 사투리로, 팝아트를 부산 시민들에게 보다 멋지게 보여주려는 뜻이 담겨 있다.
획일화된 정서를 넓히는 계기 제공
앤디 워홀(Andy Warhol), 장 샤를르 드 카스텔바작(Jean Charles de Castelbajac), 키스 해링(Keith Haring), 케니 샤프(Kenny Scharf), 장 미쉘 바스키아(Jean Michel Basquiat) 등 세계적인 팝아티스트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있는 이번 전시는 기존 전시와 달리 원화 위주로 구성됐다.
또 관람객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과 포토존, 예비 미술 컬렉터를 위한 미술 강의 등도 마련됐다.

1950년대에 등장한 팝아트(Pop Art)는 1960년대에 이르러 대중적으로 강력한 영향력을 갖는 미술 형태로 자리매김했다. 팝아트는 당시 추상표현주의란 엄숙함에 맞서 광고 등 대중적인 시각 이미지를 미술로 끌어들였다.
팝아트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는 소비문화와 매스미디어로 요약되는 현대문명이다. 팝아티스트들은 미술인이라면 반드시 갖춰야 했던 예술성, 형식에 대한 고민, 고상한 작품성으로부터 벗어나 영화, TV, 만화, 애니메이션, 신문, 잡지, 옥외광고물 등의 상업적 소재들을 적극적이면서도 폭넓게 수용했다. 이러한 팝아트의 이념은 인쇄매체와 영상매체에서 상징적 기호들로 나타났고 현대인의 대중적인 삶을 표현하는 보편적인 방식으로 인정받았다.
때문에 깔롱 드 팝아트전은 팝아트를 해석해 어떠한 담론을 찾아내기보다 팝아트를 느끼고 획일화된 지각과 정서를 넓힐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
대중문화에 기반한 친숙한 주제와 이미지
전시에 소개된 작가들의 면면은 팝아트란 장르를 이끌었던 세계적 거장인 만큼 매우 화려하다.

20세기 포스트모더니즘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미술가이자 미국의 팝아트를 대표하는 앤디 워홀은 어렸을 때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고 색칠하기, 종이 오리기, 만화나 화려한 할리우드 잡지에 흠뻑 빠져 있었다. 1945년 회화와 디자인으로 유명한 카네기멜론 대학(Carnegie Mellon University)에서 미술학사 학위를 받은 워홀은 내적 세계를 표출하는 주관적인 추상표현주의에 반기를 들고 자본주의의 속성인 대량생산 제품과 유명 인물의 이미지를 차용한 작업을 통해 유명세를 얻었다. 워홀은 코카콜라, 달러 기호, 식품, 구두, 잡화, 유명인, 신문 스크랩 등 당시 대중 문화와 연관 있는 친숙한 이미지와 주제로 20세기 미국의 문화적 정체성을 작품으로 표현하며 미국 문화의 가치를 상승시켰다. 대중들이 TV에서 보았던 그래픽디자인과 같은 형태를 선명한 색채로 구현하는 실크스크린 기법을 주로 사용했다.
1980년 미국 뉴욕 지하철역의 빈 광고판에 하얀 분필로 드로잉을 하기 시작한 키스 해링은 소비 장려를 목적으로 부착한 광고물들로 덮인 역에 소비문화와 자본주의사회에 대항하는 작품을 선보였다. 사람들은 픽토그램 같은 단순한 모양과 재치와 유머가 넘치는 그의 작품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후 해링은 대중과의 교감을 위해 ‘팝 숍(Pop Shop)’ 을 열어 자신의 캐릭터가 그려진 티셔츠, 포스터, 스티커, 자석 등을 팔았고 이들 상품은 해링과 그의 작품을 전 세계로 알리는 계기가 됐다.




그는 수많은 드로잉과 회화를 남겼을 뿐 아니라 자본주의에서 고급문화와 대중문화, 주류와 비주류의 상호의존적인 맥락을 허물고 예술로서 소통적 역할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1976년 미국 맨해튼의 도시학교(City-as-School)에서 낙서화가 알 디아즈(Al Diaz)를 만나 미술 공동제작에 나선장 미쉘 바스키아는 대중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소재와 주제로 도심의 벽에 스프레이로 ‘SAMO(Same Old Shit)’ 문구들을 써넣거나 80년대 미국의 핍박받는 흑인의 인물을 주제로 특유의 원시성과 거친 표현을 통해 저항심을 드러냈다.
1978년 낙서 미술계를 떠나 캔버스에 정착한 바스키아는 1981년 이탈리아 에밀리오 마졸리 화랑과 이듬해 독일 도큐멘타에서 미국의 신표현주의 작가들과 함께 작품을 전시 했고, 1983년 뉴욕 휘트니 미술관에서 비엔날레 표현전에 최연소 작가로 출품하는 등 거리의 미술인 그래피트 아트를 미술관으로 옮겨 오며 예술적으로, 경제적으로 성공한 작가로 인정받았다. <사진 제공: 피카프로젝트>
출처 : 월간 <아이러브캐릭터> 2020.10월호
<아이러브캐릭터 편집부> (master@ilovecharac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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