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역배우로 영화판에 발을 들이고 조감독, 조명 조감독, 카메라맨 그리고 애니메이션 촬영감독에 이르기까지 한국 영화와 애니메이션 제작 일선에서 종횡무진하던 이가 있다. 바로 애니메이션 촬영감독 1세대인 조민철 감독이다. 조민철 감독은 1965년부터 국내 애니메이션 역사의 길을 걷게 됐다.
단역 아역배우에서 제1 촬영감독이 되기까지
국산 극장판 애니메이션의 시작인 홍길동이 조민철 감독의 첫 작품이었다. 고 이문백 촬영감독 아래서 애니메이션 촬영을 배워 홍길동 제작에 참여했다. 그는 애니메이션에 입문하기 전 어린 시절 아역배우를 했으며 영화 조감독, 조명 조감독, 카메라맨에 이르기까지 영화 제작 최전선에서 일해왔다.
“단역도, 조수도 아닌 오직 제1감독이 되고 싶다는 열망 하나로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일하게 됐어요. 초등학교 시절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한 것을 시작으로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됐어요. 애니메이션 또한 영화인이 되기 위한 영역의 확장으로 발을 들이게 된 건데 이문백 감독님의 조수가 되면서 애니메이션 촬영감독이 됐죠. 애니메이션 문외한이 촬영을 어찌 하나 싶었는데 그동안 살아온 시간들이 도움이 되었어요.”
조민철 감독은 자신이 지나온 시간을 모두 기억할 수 없지만, 홍길동을 통해 자신이 애니메이션 촬영감독이 되겠다고 결심하던 순간만큼은 또렷이 기억난다고 했다. 홍길동이 변신술을 통해 허구를 만들어내고, 백운도사 밑에서 수련하는 시간을 표현하는 등 클라이막스 부분을 촬영하며 거쳐 온 시간과 경험들이 밑거름이 됐다. 당시 애니메이션 제작에 있어 극적인 표현을 할 수 있는 이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극영화 쪽에서는 인물과 스토리의 기승전결을 표현하기 위해 다양한 카메라 기법을 사용하는데 애니메이션 쪽에서는 그 기술이 전무했어요. 촬영하면 할수록 연구할 점이 많은 것이 만화영화더라고요. 영화판에만 있다가 잘 알지도 못하는 만화영화 찍고 있으니 자신감도, 재미도 없어 그만 둘까 했어요. 그런데 신동헌 선생님의 요청으로 줌인, 클로즈업 등 카메라를 고정해서 피사체에 초점을 맞추는 극영화 요소를 애니메이션 제작에 사용하니 참 재미있더라고요. 알고 보니 애니메이션도 극영화의 촬영 기법과 효과 표현이 필요했던 거예요. 애니메이션 촬영이야말로 오랜 시간을 거쳐 다다른, 정말 내가 해야 할 것이었던 거죠.”
1967년 1월 7일을 회상
홍길동은 1967년 1월 7일 대한극장에서 개봉됐다. 조민철 감독은 당시를 회상하며“ 오전 9시가 1회 상영인데, 아침 6시까지 촬영한 필름을 현상소에 맡기고 난 뒤 스태프들이 극장 맞은편 2층 식당에 모여 개봉을 기다렸다”고 했다.
“말도 안 되는 제작 상황이었죠. 마치 쪽대본으로 제작을 하듯 상영 중간에 뒤늦게 완성된 필름을 영사기에 거는 초유의 사태였어요. 그런 와중에 필름을 현상소에 맡기고 대한극장 맞은편 2층 식당에서 밖을 바라봤던 그때를 잊을 수가 없어요. 대한극장 앞을 가득 메우고도 근처 골목에서 줄을 서야 했어요. 당시 관객 수가 5만 명만 돼도 대단한 거였는데 19일 동안 25만 명이 홍길동을 관람했을 정도니까요.”
자동차 극장 국내 도입
조민철 감독은 홍길동을 시작으로 호피와 차돌바위의 촬영을 맡았다. 이후 독수리 5형제, 하이디 등 알아주는 애니메이션 촬영감독으로 유니버설아트, 윤성실업 등을 거쳤다.
그러던 1991년 어느 날 미국 출장길에서 ‘드라이빙 시어터’를 보게 된다. 지금의 자동차 영화관의 원형을 먼저 확인하고 국내 도입을 추진, 촬영감독의 일을 접고 본격적으로 안산 화랑유원지에 자동차 극장을 운영하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안산에 문을 열었죠. 청소년관람불가 영화 상영 불가, 규모에 맞는 스크린 제작, 컨테이너 박스 영사실 마련 등의 난관을 뚫고 92년부터 준비한 자동차 극장을 3년 뒤 비로소 선보일 수 있었어요. 자동차 극장을 통해 다시 한 번 국산 애니메이션의 붐도 기대했어요. 그래서 안산시와 손잡고 안산 애니메이션센터 건립과 운영, 협업에도 참여했어요. 그곳에서 제작하고 KBS에서 방영된 그린캅스가 저의 마지막 촬영 작품이었지요.”
19년 전 작품 활동을 끝으로 여든에 가까운 나이가 된 조민철 감독은 영화 그리고 애니메이션과 함께한 지난 시간 을 “영화배우를 꿈꾸던 아이가 (만화)영화를 만들었다”고 추억했다.
“‘제가 어떻게 하면 제1조수가 될 수 있겠습니까’ 라는 질문에 꾸중만 들었던 내가 애니메이션 촬영감독으로 지금 이 자리까지 왔네요. 이제는 애니메이션 업계의 선배로서 국산 애니메이션이 다시 부흥하는 날을 고대하는, 응원자가 되겠습니다.”
출처 : 월간 <아이러브캐릭터> 2020.1월호
<김민선 편집장> (master@ilovecharac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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