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까지 10년여 동안 세 작품의 독립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다. 하지만 나만의 연출을 논하기에는 양껏 연출해보지 못했고, 지금까지는 배움을 위한 작품이었다고 말한다. 성보경 감독은 그렇게 작품마다 자신만의 목표를 하나씩 세우고 성취하며 지금에 도달했다. 이 다음 이야기는 또 뭘까? 가까운 시일 내는 아니겠지만, 반드시 다음 작품을 가지고 돌아올 거란 확신이 드는 성보경 감독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먼저 소개를 부탁한다. 애니메이션을 만들게 된 계기는?
독립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성보경이다. 대머리 마을 이발 사, Take a deep breath 등을 만들었다. 지금은 아이코닉스에서 재직하고 있으며 뽀롱뽀롱 뽀로로의 기획 등을 맡아 왔다. 대학에서는 디자인을 전공했고 한동안 디자인 분야의 일을 했다. 하지만 영 재미가 없었고 이 일을 평생 할수는 없겠다 싶었다.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생각해보니 움직이는 그림을 만드는 일이라면 재미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회사를 그만두고 한겨레 문화센터에서 애니메이션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이제는 어느새 독립 애니메이션을 만든지 10년 정도 됐다.
최근에 만든 <대머리 마을 이발사>는 어떤 작품인지 소개 해달라. 작품의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었는지?
대머리만 사는 마을의 이발사는 손님이 없어 파산 위기에 처한다. 그러던 어느 날 함께 사는 반려소 한우가 혀로 핥은 곳에서 머리가 자라난다는 것을 발견하며 벌어지는 일이 줄거리다. 아이디어는 나로부터 얻었다. 오래전 머리카락이 너무 많이 빠져서 스트레스를 받았던 적이 있다. 미용실에 가서 스트레스를 토로했더니, 헤어디자이너가 “모두들 그런 이야기를 한다” 며 위로해주는 것이었다. 그때 문득 대머리 마을의 이발사에 대한 이야기라면 재미있는 작품이 나올 수 있겠다 싶었다. 이후 자료를 잔뜩 찾아본 뒤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작품의 배경이 한국적인 것이 인상적이다. 실제로 참고한 장소가 있는지?
실제로 한 곳을 찍어서 모델로 삼지는 않았다. 다만 처음부터 ‘이발소’ 라는 장소와 단어를 떠올린 만큼 배경은 당연히 한국, 이발소가 있을 법한 시골이라고 생각했다. 어설프게 외국 느낌을 내는 것은 좋아하지 않는다. 독립 애니메이션은 외국에서 상영되는 경우도 많은데 외국인들이 봤을 때 어설프게 작업한 배경은 오히려 안 좋은 느낌을 줄 수도 있으니까. 내가 잘 아는 한국적인 배경이 한국인들에겐 친숙하게 다가가고 외국인들에게는 이국 적이고 참신하게 다가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초반에 대머리 총각을 배경음악으로 써서 옛 노래와 오래된 공간이 자아내는 이미지를 연출하고자 했다. 그런데 어린 친구 들은 대머리 총각이라는 노래 자체를 모르더라. 또 외국인도 이 노래를 모를 테고. 그래서 노래를 모르는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가 궁금하기도 하다.
<대머리 마을 이발사>는 익살스러운 제목과 달리 씁쓸한 여운이 남는 작품인데
엔딩에 대해서는 고민을 정말 많이 했다. 만약 상업용 애니메이션이었다면 무조건 해피엔딩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독립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것이니 내가 가지고 있던 목표에 좀 더 부합해도 될 것이었다. 이번 작품을 만들며 추구했던 목표들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관객들에게 내가 생각했던 감정을 전달함으로써 그들이 같은 감정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들겠다’ 는 것이었다. 이 작품을 만들며 전하고 싶었던 것은 이발사가 느끼는 후회의 감정이었다. 만약 해피엔딩으로 끝내면 그런 후회의 감정이 남아있지 않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작품 초반에 감초처럼 보여줬던 코믹한 전개가 관객들에게더 큰 인상을 줬던지, 결말에 대해 당황하는 분들도 있었다. 오랫동안 작업한 작품이지만 여전히 만족도에 대해서는 아쉬울 뿐이다.
작품마다 목표를 세워 작업하는 듯한데, 두 번째 작품인 Take a deep breath는 어떤 목표 안에서 만들었는지?
돌이켜 보면 지금까지의 세 작품은 나를 성장시키기 위해 만들었던 것 같다. Take a deep breath는 한국영화 아카데미에 다닐 때 만든 작품이다. 당시의 나는 움직이는 그림이 좋아서 애니메이션을 시작했지만, 내가 어떤 스타일의 작품을 잘 만들 수 있는 사람인지 알지 못하는 상태였다. 그래서 하나의 콘셉트를 가지고 여러 번에 걸쳐서 다른 스타일의 스토리를 거듭 썼고, 또 중간에 평가하는 시점까지도 중심을 잡지 못해서 악평을 들었던 게 기억난다. 그러다가 완전히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우선 한 장면을 그렸고, 거기서 이어지는 다음 장면을 하나씩 그려나가다가 마침내 마지막 장면까지 그리고 나서야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렇게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는지를 알게 해준 작품이 Take a deep breath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 작품까지는 2D 작업이었는데, 세 번째 작품에서 3D 작업을 선택한 이유는? 우선 당시 대부분의 상업 애니메이션이 3D로 만들어지고 있었다. 또 연출에 대한 욕구가 커진 상태였는데, 3D 애니메이션은 2D 애니메이션에 비해 카메라 연출이 자연스럽다는 점에서 매력적이었다.
예를 들어 영화에서 카메라로 훑고 나아가는 듯한 카메라 워크 같은 것이 3D 애니메이션에서는 일일이 그리지 않아도 가능하지 않은가. 3D를 배워서 툴에 구애받지 않으며 내가 연출하고 싶은 장면을 편하게 표현하고 싶었다. 그 후로 많은 시간이 흘러서 지금은 또 다른 툴과 기술들이 주목 받고 있다. 요즘에는 게임엔진을 많이 쓰는 양상이다. 이전에 비해 작업 시간도 많이 단축됐다. 개인적으로는 VR 기술에도 관심이 간다. 적절한 소재를 찾는다면 VR 기술을 적용해 독립 애니메이션도 만들어보고 싶다.






독립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일은 감독님께 어떤 의미인지?
독립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일은 나 자신을 자유롭게 해주고 스스로를 실현시켜주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온전히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야기를 발전시켜나갈 수 있고,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 있다면 내 뜻대로 시간과 노력을 더 기울일수 있으니까. 예전에 애니메이션 자체가 마냥 좋기만 했던 때가 있다. 보는 것도, 만드는 것도, 만드느라 고민하는 것도 모든 것이 다 좋았다. 그런데 어느새 애니메이션을 한지 10년이 지났다. 그때처럼 설레고 좋기만 했던 느낌은 아니지만 그냥 자연스러워졌다고 할까. 선망했던 대상이 이제는 삶의 일부가 된 듯하다.

향후 작품 계획에 대해 말해달라
우선은 3D로 작품 하나를 더 만들고 싶다. 사실 한두 달 전까지만 해도 이제는 그만 만들어야지, 생각했던 것 같은데 조금 쉬고 나니 또 하고 싶어졌다. <대머리 마을 이발사>를 만들며 익힌 것이 아깝기도 하고.(웃음) 다음 작품으로 어떤 이야기를 할지 고르는 단계다. 사람들이 재미있어할 것 같은 소재는 있는데, 내 생각을 담아야 할 알맹이는 아직 없는 느낌이다. 조바심 내지 않고 제대로 할 생각이다. 다음에는 지금까지보다 성숙한 작품을 하고 싶다는 목표가 있다. 가끔은 앞으로 몇편의 애니메이션을 더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시간의 제한이 있는 만큼 좀 더 신중해지고 진짜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야 할 것이다. 바라는 것이 있다면 내가 만든 작품이 보는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처음 애니메이션을 해야겠다고 결정 했을 때, 이거라면 앞으로 재밌게 계속할 수 있겠다는 믿음 에서 이 길을 택했다. 그 마음 그대로 꾸준히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다.
성보경 감독
·<리싸댄스> 2009
·
·<대머리 마을 이발사> 2019
출처 : 월간 <아이러브캐릭터> 2020.5월호
<아이러브캐릭터 편집부> (master@ilovecharac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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