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즈 애니메이션 시대는 저무는가?

장진구 기자 / 기사승인 : 2024-09-03 08:00:49
  • -
  • +
  • 인쇄
Special Report

 

 

국산 TV 애니메이션의 시초는 1987년 5월 5일 KBS 1TV에서 방영한 떠돌이 까치다. 이후1990년대 초반까지 아기공룡 둘리, 독고탁과 비둘기합창, 달려라 하니, 2020 우주의 원더키디, 영심이, 날아라 슈퍼보드, 머털도사 등 출판 만화를 원작으로 하거나 순수 창작한 애니메이션이 대거쏟아져 나왔다. 1988년 서울올림픽 전후로 경제 성장과 함께 컬러 TV 보급이 확산하면서 극장에서 TV로 무대를 옮긴 국산 애니메이션은 전성기를 맞게 된다.

뽀로로 성공 이후 유·아동 타깃 작품 쏟아져
TV 애니메이션의 양상은 2003년 뽀롱뽀롱 뽀로로의 등장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뽀로로의 성공 이후 한 프레임씩 그려 여러장의 이미지를 연속해 영상을 만드는 2D 셀 애니메이션은 입체 모델링 기법의 3D 애니메이션으로 바뀌었고, 교육을 강조한 유·아동 타깃 애니메이션이 시장의 주류로 떠올랐다.


키즈 애니메이션이 대세가 될 수 있었던 건 우리나라 특유의 높은 교육열에서 비롯된다. 자녀에게 뭐 하나라도 더 배우게 하려는 부모들의 니즈가 에듀테인먼트 콘텐츠 소비를 촉진했다.

 

제작사 입장에서는 영상 판권료가 해외에 비해 턱없이 낮은 상황에서 캐릭터 완구 판매로 얻는 수익이 훨씬 크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었다. 일단 완구가 잘 팔리면 라이선싱 품목군을 확장할 수 있고 출판, 공연, 해외 진출 등으로 수익을 다변화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작사들은 기획할 때부터 자동차, 로봇, 공룡, 공주처럼 아이들이 흥미를 갖는 인기 소재의 상품화를 염두에 두고 작품을 만들었다.

 

 

완구 매출 감소에 제작사들 생존 기로
하지만 완구 시장 매출이 갈수록 줄면서 애니메이션계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완구 판매율 저하는 저출산 현상과 직결돼 있다. 장난감을 갖고 놀 타깃층의 감소는 곧 애니메이션 시청율 하락과 완구 소비 감소로 이어졌다.


완구업계 관계자는 “출산율이 떨어져 완구 수요가 줄고 일부 인기 상품에만 소비가 집중되는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며 “소비 인구 감소, 경기 침체로 인한 소비심리 위축, 저가 경쟁 상품 출시 등으로 소품종 대량 생산·판매가 어려워 수익성도 날로 악화되고 있다” 고 말했다.


더욱 근본적인 원인은 모바일 게임, 유튜브가 장난감의 자리를 밀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요즘은 아이들이 흥미를 느끼거나 부모가 사주고 싶은 대체아이템이 많아 꼭 완구에만 눈길을 주지 않는다.


한 관계자는 “우리나라 부모들은 장난감 하나를 사더라도 교육적 측면을 고려하는 인식이 유독 강하다” 며 “로봇 완구를 사느니 같은 값이면 레고처럼 창의력 향상에 도움을 줄 것 같은 품목에 눈을 돌리는 부모가 많아 기존 캐릭터 상품을 찾는 일이 부쩍 줄었다” 고 전했다.

 

 

“키즈 시장만 보기엔 이젠 한계”
키즈 애니메이션에 집중하던 제작사들은 이제 생존의 기로에 섰다.

 

시청층 감소→완구 판매 저조→제작비 환수 난망→투자 경색의 악순환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회사의 존폐를 걱정해야 할 처지에 내몰렸다.


A제작사 대표는 “당장 돈을 못 벌고, 앞으로도 못 벌 것 같으니 키즈 애니메이션은 더 이상 만들지 않을 생각” 이라며 “돈도 안 돌고 투자도 안되는 요즘에 오리지널 창작 애니메이션을 만든다는 건 불가능한 얘기” 라고 잘라 말했다.


B사 관계자는 “국내 시장의 주 수입원이었고 가장 빨리 수익을 낼 수 있는 품목이 완구라서 완구 시장을 겨냥한 애니메이션이 많이 나왔는데 이제는 굳이 그 큰돈을 들여 만든다는 게 의미가 없어졌다” 고 했다.


이어 “캐치 티니핑이나 브레드이발소처럼 성공한 작품도 있지만 키즈 시장만 바라보기엔 한계에 다다랐다” 며 “그나마 중국시장에 기대를 걸었으나 현지에서도 사양길에 접어들었다니 어디에서 살길을 찾아야 할지 그저 답답하다” 고 토로했다.

 

업계는 유·아동 애니메이션이 더 이상 비전이 없다고 보고 타깃층을 높인 새로운 장르에 눈을 돌리고 있으나 정부 지원에 기대는 것 외에는 뾰족한 수를 찾지 못하고 있다.

 

수익성이 없어 투자 유치가 어려운 것도 문제지만 키즈 애니메이션 제작 이력만으로 웹툰 플랫폼, OTT, 펀드 등 눈높이가 높은 대형투자사들의 투자를 끌어내기도 쉽지 않다.

 

C사 대표는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비 회수가 어렵다는 건 이제 투자사들도 잘 알고 있어서 솔직히 다음 작품을 기약하기가 어려운 상황” 이라며 “영상으로만 돈을 버는 구조가 아니고 이마저도 좁은 내수 시장에 한정되니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시청하는 세대와 방식, 문화가 바뀌면서 애니메이션의 패러다임도 전환되는 과정 한복판에 서 있는 것 같다” 며 “이제는 처음부터 정통 애니메이션을 기획하기보다 시청자가 쇼트폼 영상에 익숙하니 이들의 반응을 보고 제작 방향을 잡는 게 더 현실적” 이라고 덧붙였다.

 

 

아이러브캐릭터 / 장진구 기자 master@ilovecharacter.com 

[저작권자ⓒ 아이러브캐릭터.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뉴스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