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프와 탯줄의 치열한 줄다리기 _ 독립영화관 _ 김혜미 감독

정주희 기자 / 기사승인 : 2021-08-18 08: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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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세계 클라이밍 대회를 앞두고 극도의 스트레스와 악몽에 시달리던 주인공 세현은 석 달 전 일어난 교통사고 때 고장난 휴대폰으로 걸려온 한 통의 전화를 받게 된다. 이후 휴대폰을 통해 다른 세계의 ‘ 나 ’ 와 연결되며 급기야 또 다른 세현의 임신이 자신에게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알게 된 후 그녀에게 기이한 일들이 일어난다. <클라이밍>은 김 감독이 임신을 통해 느꼈던 낯선 양가적 감정을 고스란히 녹여낸 작품으로 애니메이션계의 칸 영화제라 불리는 안시 국제애니메이션 페스티벌 장편 경쟁 콩트르샹(Contrcham) 부문에 공식 초청되기도 했다. 인터뷰로 만나본 그에게 클라이밍의 기획 의도부터 작품에 담긴 세세한 이야기들을 들어봤다.

 

 

 

독자들에게 소개를 부탁한다. 애니메이션을 만들게 된 계기는?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김혜미라고 한다. 원래는 대학교에서 미술을 전공했다. 어린 시절 뮤직비디오가 쏟아져 나오던 시기 뮤직비디오를 즐겨 봤다. 그때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미셀 공드리의 뮤직비디오와 라디오헤드의 작품을 좋아하게 되면서 창의적인 일을 하고 싶어졌고 자연스럽게 애니메이션을 하게 된 것 같다.

 

 


<클라이밍>작품에 대한 소개 부탁드린다 세계 클라이밍 대회를 앞두고 극도의 스트레스와 악몽에 시달리던 세현이 또 다른 자신으로부터 전화를 받게 되면서 벌어지는 미스터리 공포 3D 애니메이션이다.

 

주인공이 프로 클라이밍 선수다. 특별히 이 스포츠를 선택한 이유가 있는가? 임신했을 때 가장 제약이 많은 직군을 떠올렸다. 강한 신체를 필요로 함과 동시에 임신으로 인한 몸의 변화에 가장 민감한 클라이머들의 이미지가 마음에 들었다. 영화 속에서 자일(로프)이 중요한 상징으로 나온다. 클라이밍 선수들에게 자일이 생명줄이라면 태아에게 자일은 탯줄이다. 탯줄로 상징되는 자일을 놓고 아이와 엄마가 서로 양보할 수 없는 생존의 싸움을 한다는 설정이다.

그런 이미지가 영화에 직접적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클라이머가 직업군으로 소모되는 것만이 아니라 영화 속 주제와도 유기적으로 맞아떨어진다. 로프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는 모습이 주인공의 극적인 불안감을 잘 표현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자일(로프)이 매우 중요한 소재로 등장하는데 주인공의 직업을 가장 잘 나타내는 대표적 상징이 바로 로프다. 클라이밍 선수들은 로프를 자일이라고 부르는데 이들에겐 자일이 몸에서 끊어지면 생명의 위협을 느낄 수 있어 생명줄과도 같다. 탯줄 또한 태아에겐 생명줄이다. 이 생명줄을 양쪽에서 잡고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클라이머(엄마)와 아이의 이미지를 떠올렸다. 클라이머로서 완벽하게 자아실현을 하고 싶은 엄마와 반드시 태어나야 하는 아이에게는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싸움일 거라 생각했다. 놓치는 순간 둘 중 하나는 사라지게 될 테니까. 자일과 탯줄은 결국 상징성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의 생명줄인 자일과 탯줄을 놓고 필사적인 줄다리기를 하는 것 같이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이야기가 전개 된다.


자일이 끊어지는 장면이 매우 인상 깊었다 극적인 장면에서 로프가 끊어지면서 클라이밍 선수는 죽음과 같은 공포를 경험하게 된다. 그와 동시에 탯줄이 잘리며 아이는 태어나고 클라이머 세현은 엄마가 되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이처럼 큰 갈등과 시련을 겪지만 그 과정을 통해 엄마로서 더욱 단단히 완성된 자신을 찾게 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 과정이 모성의 첫 시작이 아닌가 한다. 모성은 타고난 본능이 아니라 고민과 갈등을 이겨내고 힘든 과정을 거쳐 마지막으로 생기는 본성 같은 거다.

 

언제 처음 작품을 구상했나? 임신하면서 내가 느꼈던 낯선 감정들로부터 이 이야기를 떠올리게 됐다. 임신 당시 많은 축복 속에서도 마냥 기쁘거나 즐겁지만은 않아 ‘ 왜 나는 남들과 같지 않을까 ’ 라는 생각에 죄책감이 들 때도 많았다.
하지만 죄책감으로만 치부해버리기에는 마음속에 분명히 존재하는 감정들이었기에 외면하고 감추고 싶지만은 않았다. 스스로 받아들이고 적나라하게 펼쳐서 바라보고 싶었다. 내가 느낀 부정적인 감정을 들여다보면서 진짜 내 마음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싶었다. 임신에 관해 긍정적인 이야기를 다룬 영화들은 많은 반면 그 반대의 영화는 드물다.
그래서 산모의 어두운 내면을 전면적으로 드러내고 임신의 다양한 측면을 입체적으로 표현해보고 싶었다.


공포라는 장르를 선택한 이유가 있는지? 처음부터 공포스릴러를 만들 생각은 아니었다. 주인공의 내적변화를 따라가며 산모의 불안정한 심리를 극적으로 과장되게 표현하다보니 자연스럽게 공포스릴러라고 정의된 것 같다. 주인공을 현실과 평행세계 두 차원에 설정한 것은 임신으로 인한 심리 변화를 극명하게 드러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클라이밍의 작화가 인상적이다 카툰 렌더링 방식으로 3D지만 2D 애니메이션처럼 보이게 작업했다. 캐릭터의 신체 비율을 비현실적으로 한 것도 실제와 비슷하게 하면 어색함이 두드러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기존의 3D 애니메이션과 비슷한 캐릭터라면 관객들이 그만큼의 퀼리티를 기대할 수도 있는데 , 독립 장편 애니메이션이라는 한계가 분명했기에 최선의 현실적인 판단을 할 수밖에 없었던 면도 있었다. 제작비와 기술에 한계가 있으니 이런 제약을 ‘ 클라이밍 ’ 만의 개성 있는 스타일로 받아들이도록 비주얼을 가져갔다. 클라이머라는 직업에 어울리는 근육질에 마른 체형을 그림체에 담으려고 했고 내용에 맞춰 불안 , 공포 , 혼란 등을 최대한 전달하기 위해 근육과 눈의 아우트라인을 더 강조했다.

 


가장 공들인 장면이 있다면? 세현의 클라이밍 신들이다.
다양한 카메라 앵글을 통해 보다 역동적으로 담아야 했기 때문에 3D 작업이 중요했다. 일상적인 동작이 아니다 보니 나나 애니메이터들도 처음 접해보는 것들이었고 , 클라이밍 선수의 움직임에 대한 정확한 이해도가 없으면 자칫 우스꽝스럽게 그려질 수도 있어서 고민을 많이 했다. 유튜브 영상을 참고하거나 암장에 가보기도 했다. 이 중 전문적인 부분은 2000년부터 3D 작업을 시작해 TV시리즈 , 증강현실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해온 정지신 감독을 주축으로 많은 베테랑 전문가들이 참여해 완성도를 높여줬다. 생각보다 결과물이 잘 나와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안시 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되기도 하고 국내에서도 여러 상을 받은 것으로 안다 일단 너무 감사하다. 이 작품을 완성한 뒤 처음 든 생각은 장편 애니메이션을 잘 끝냈다 하는 안도감이었다. 장편 3D 애니메이션 제작이 처음인 만큼 이 작품을 제대로 완성해낼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는데 의도한 대로 작품이 잘 완성되었고 결과적으로도 많은 분들이 인정해 주셔서 무척 감사했다. 이번 작품을 통해 새로운 작업을 시도할 때 표현하고 싶은 주제의식이나 연출 의도만 명확하다면 뭐든 할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클라이밍은 해피 엔딩일까 새드 엔딩일까? 당연히 해피 엔딩이다. 고민과 갈등에 깊숙이 빠졌을 때 한 치 앞도 알 수 없어 허우적거리면서도 도망가지 않고 그 안에서 치열하게 고민한 경험을 통해 내면적으로 더욱 성장한 주인공이 엄마로서의 새로운 자신을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용기와 믿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계획은? 현재 만들고 있는 단편 애니메이션을 올해 안에 마무리하고 , 내년엔 장편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위한 시나리오를 구상할 예정이다. 어찌 보면 클라이밍의 연장선상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아이를 낳아 양육하고 이 아이가 성장해 어른이 되기까지 한 가족 이야기를 나만의 방식으로 그려내보고자 한다.

 

 

 

 

아이러브캐릭터 / 정주희 기자 mater@ilovecharac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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